동사책 - 사람과 사람 사이를 헤엄치는
정철 지음 / 김영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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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 : 사물의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품사. 형용사, 서술격 조사와 함께 활용하며, 그 뜻과 쓰임에 따라 본동사와 보조 동사, 성질에 따라 자동사와 타동사, 어미의 변화 여부에 따라 규칙 동사와 불규칙 동사로 나뉜다.' 사전에서 만난 동사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네요. 품사를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많지 않지만, 그나마 관심을 가졌던 것은 명사예요. 아이들과 하는 끝말잇기에서도 보통 명사가 활용되니까요. 세상에 많은 품사 중 저자는 왜 동사에 관심을 가졌을까요? 움직임이 느껴지는 데다 그 방향이 어딘가로 향한다는 생각을 가져서였을까요?


카피라이터 정철의 첫 산문집인 '동사책'. 톡톡 튀는 글이 담긴 정철 작가의 책을 몇 권 읽어봤기에 이 책도 기대가 되었어요. '사람이 먼저다',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습니다' 등 짧지만 강렬한 카피를 써오신 분의 산문집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이 세상 많은 동사 중에 60가지 동사를 저자만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풀어냈어요.

📍 속이다 : 솔직한 거짓말

저자의 딸 담이가 서너 살 때, 일찍 퇴근한 저자를 발견하고 놀이터에서 놀다 아빠 품으로 달려왔어요. 감격스러운 부녀상봉을 한 후 경비실 앞을 통과하는데 경비아저씨가 담이를 '다혜'라고 불렀어요. 저자는 순간 귀를 의심했는데, 딸이 담이라는 이름이 싫어서 다혜라고 자신을 소개한 것임을 알고 떼굴떼굴 웃었다고 해요. 남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배우지만 담이의 거짓말은 어쩌면 가장 솔직한 귀여운 거짓말이라는 저자. 싫은데 좋은 척하지 않았으니까요.

"우리는 늘 싫은데 좋은 척, 좋은데 싫은 척하고 산다. 많이 가졌는데 없는 척, 가진 게 없는데 있는 척하고 산다. 척하고 사는 건 내가 나를 속이는 짓이다. 척하고 살다 보면 나도 내가 누구인지, 내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헷갈릴 수 있다. 내가 나를 다 분실할 수도 있다." (P. 27)

📍 비우다 : 비우면 비로소 보이는 것

"글자를 비웠더니 비로소 종이가 보였다. 종이의 질감이 보였다." (P. 104~105)

여백으로 가득한 비우다 동사의 자리. 삶을 살다 보면 비워야 하는 순간이 찾아와요. 여유, 여백, 비움이란 단어를 좋아하는데, 제 삶에는 '비우다'라는 단어가 들어올 자리를 마련해 두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하루를 빽빽이 채우고, 머릿속도 빽빽이 채우려고만 하지 않았는지... 비워야 새로운 것도 들어오는데 말이에요. 열심히 살되 잘 비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비워야 제대로 보이는 것들이 꽤 있다는 것도 알거든요.

📍 가다 : 가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인생은 가는 것. 누군가 내게 다가올 때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가는 것. 뚜벅뚜벅 가는 것. 성큼성큼 가는 것. 때론 뜨거운 속도로 가는 것. 가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세상 모든 목마름은 물이 아니라 발이 치유한다." (P. 192)

인생이 제게 오기만을 기다렸던 적이 있어요. 가만히 서서 언젠가 오겠지 하면서요. 오지 않더라고요.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제가 가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가야만 가는 방향대로 길이 생기고 흔적이 남더라고요. 그 흔적이 모여 조그마한 선이 되는 과정인 것 같아요. 희미한 모양이라도 갖추려면 한참의 시간이 지나야겠지만, 뚜벅뚜벅, 성큼성큼, 때론 어슬렁어슬렁 가보려고요. 제가 직접 가서 만들었기에 단단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 사람하다 :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말

우리가 익히 아는 동사만 등장하는 이 책에 저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말을 하나 슬그머니 집어넣어요. '사람하다'라는 말을요. 사람으로 태어나 마땅히 해야 할 노릇을 하며 산다는 말을 '사람하다'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고 해요. 염려하고 위로하고 배려하고 안아주고 믿어주고 도와주고 힘내라고 용기도 북돋아주는 행위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 사람이라는 문제는 결국 사람이라는 답으로 풀어야 하기에 '사람하자'라고 이야기해요.

'사람하자'라는 동사, 마음에 드시나요?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계속 발음하고 뜻을 마음속에 새기다 보니 따스함이 올라오는 것 같아요. 사람으로 태어나 마땅히 해야 할 노릇을 하며 산다는 것은 참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요. 사람이 필요한 순간이 참 많으니까요. 사람하며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궁금해지네요.

동사 하나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입힌 저자의 글을 따라가면서 단어 하나라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어요. 읽고 그냥 지나쳐 버렸던 많은 동사의 쓰임새를 깨달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저자의 글에 살며시 제 생각도 곁들어서 책을 읽으니 한결 더 재밌었어요. 짧지만 그 속에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아직 갖추지 못했기에 저자의 글이 더 와닿았는지도 몰라요. 결국 동사라는 품사도 사람을 향할 때 향기가 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아요. 주변에 보이는 많은 것들을 향한다면 그 향기가 더 진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봐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동사 중 저자가 건드린 동사는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면서 뒤는 독자에게 맡긴다고 해요. 저는 어떤 동사에 어떤 향기를 입힐 수 있을까요. 되도록 따스함을 입히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따스한 사람이 되어야겠죠.

60가지 동사의 맛깔난 표현이 궁금한 분께 추천해 드려요. 감사합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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