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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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저자는 이주민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정체성과 갈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소설집에선 미국 뉴욕(보선), 스페인(코마로프), 일본 에도시대(역참에서), 영국 런던(크로머), 러시아 극동지방(고려인), 한국전쟁 직후 남한의 외딴 시골(달의 골짜기), 19세기 연해주의 고려인 정착지(벌집과 꿀) 등 여러 지역과 여러 시간대를 통해 한국계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하고 있다.

"디아스포라
특정 민족이 자의적 또는 타의적으로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집단을 형성하는 것"

나에게 디아스포라는 이제 더 이상 낯선 장르가 아니다. 전에 읽었던 <해방자들>에선 낯설었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그 혹독함을, 그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낯선 곳에서 사는 이주민의 삶은 녹슨 철에서 나는 소리처럼 삐걱거린다. 하지만 삐걱거려도 자기 소임을 다하는 물체처럼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들은 누군가에겐 포악하다(보선)는 말로 소개돼야 하는 신세가 되기도 하고, 북한에서 태어나 탈북 후 영국에서 살지만, 평생 '빨갱이'라는 낙인으로 살아가기도(크로머) 한다. 그리고 정치적인 이유로 이용되기도 하며(코마로프), 아무런 보호 없이 낯선 이국땅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하기도(벌집과 꿀) 한다. 그리고 처음 본 사이지만 기꺼이 이주민들끼리 돕는 모습(크로머, 고려인)도 보인다.

"그거 아니? 그자들이 하는 일이라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야. 세상은 달라지는데, 그리고 언제나 달라질 텐데, 그자들은 언제나 똑같을 거야. 왜 그런지 아니? 고집 센 바보들이니까. 239p."

그들은 뿌리 없는 수중식물 같았다. 언제 어디로든 떠날 수 있어 보이지만 정작 어디에서든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긴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사람(고려인)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러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이야기가 나온<벌집과 꿀>. 이주민이 이주민을 돕는 내용이 나오는<크로머>가 좋았다.

<벌집과 꿀>은 러시아 사람들은 살 수 없어 포기한 땅에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모습이 나온다. 법도 치안도 없이 척박한 곳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려고 노력하는 모습 말이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치 않다. 그들은 그들의 법대로 살인을 저지르고 정당화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과 같은 이주민(고아)을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곳 치안을 위해 파견된 안드레이 불라빈에게 되려, 그가 오기 전까지 모든 것이 좋았다고, 비명을 지르지만 떠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비명을 지르지만 떠날 수 없는 삶은 벌집과 꿀이 있는 곳으로 간 고아가 된 소녀와 대비된다.

"그래요, 우린 비명을 지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잠을 못 자고요. 그럼에도 내일이란 게 있지 않겠습니까?
199p."

<크로머>는 영국에 살고 있는 해리와 그레이스가 나온다. 해리와 그레이스의 아버지는 함께 북한을 탈출했고, 영국에 있는 한인공동체에 들어와 살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수없는 드잡이와 '빨갱이'라는 낙인으로 힘겹게 살아왔다. 해리와 그레이스는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고, 서로 섬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가족이 없어지자 그들은 가게 창문 밖의 삶으로 부터도, 서로로부터도 더욱 고립되었다. 147p."

그러다 기억을 잃고 "크로머"에 살았다는 한국인 소년을 도와주고, 그가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크로머에 간다.

이 소설들은 서정적이다. 화려한 기교나 내밀한 묘사는 없다. 담담하게 배경 속에 녹아들기 원하는 이주민의 삶을 그려낸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결국은 돌아갈 수 없거나, 고향마저도 낯선 곳인 이방인들의 삶. 나 또한 타지에서 몇 년을 살았던지라 감히 그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머리색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곳에서의 하루하루를. 내가 그런 곳에 산다면, 내가 지금껏 살아온 시간보다 그곳에서의 삶의 시간이 더 길다면, 그렇다면 나의 정체성은 어떻게 될까. 그런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지는 삶에 대해 말이다.

작가가 여러 상을 받았던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시공간을 지나도 여전히 이방인이었던, 영원히 이방인인 사람들의 마음을 잘 녹여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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