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어둠
조승리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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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나는 이 책을 받자마자 펼쳐 읽었다. 작가에 대한 설명은 간결했고, 그래서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었다. 그리고 네 번째 이자 마지막에 실린 에세이인 <소설가가 되었다>를 읽고 나서야 조승리 작가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연작소설들이 모두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는 걸을 알게 되었다.

<네가 없는 시작>

첫 문장은 "너는 내 한 해 선배였다"로 시작된다. 중학교 2학년인 어린 소녀는 한 소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고, 선배의 좋지 못한 가정사와 아픔을 알게 된다. 하지만 밤에만 잘 보이지 않던 소녀의 눈은 점차 보이지 않는 것이 많아졌다.

"너는 지금의 상황이 곱씹을수록 분하고 처참하다고 했다. 나는 너의 불우한 환경이, 외로운 삶이 계속되길 바랐다. 더 망가지고 부서지길 원했다. 그래야만 내가 네 곁에 언제까지나 머무를 수 있을 테니까. 19p."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떤 의미일까? 예민한 사춘기 시절, 따스한 봄에 살랑 부는 바람처럼 찾아온 첫사랑. 그리고 점점 보이지 않게 된 눈. 나라면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너무 억울해서 미칠 것 같지만 "시작"은 "네가 없다." 마치, 장애를 이제 혼자서 헤쳐나가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안의 검은 새>

시력을 잃은 성희는 아버지와 갈등관계다. 어머니는 무능력한 아버지 대신 농사일이며, 살림을 하며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모진 말과 행동에 뭔가를 보여주려 친구의 회사로 향한다. 말로만 듣던 다단계. 하지만 용기 있게 박차고 도망친다.

"내 새끼...... 나 살아 있는 한은 내가 네 눈이여." 84p.

그리고. 엄마. 엄마라는 존재는 그 무엇도 품는 따스함이다. 나도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브라자는 왜 해야 해?>

이제 특수학교에 다니는 나의 생활. 맹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다. 부희언니는 중복 장애가 있었고, 속옷을 안 입고 나오기 일쑤였다. 늘 "브라자는 왜 해야 하냐"라고 묻는 일곱 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언니. 언니의 사연을 알게 된다.

<나의 어린 어둠>

농촌에 살며 엄마의 농사일도 제법 잘 돕고, 자전거도 잘 타는 성희. 눈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고 병원에서 영영 시력을 잃을 거란 이야길 듣는다.
모녀는 서로를 위해 속없는 척 연기를 하고, 엄마는 성희를 위해 호박 부침개를 해준다.

장마와 부침개. 이제 곧 시작될 장마. 나는 장마가 시작되면 호박 부침개를 부치며 성희와 성희의 엄마가 생각날 것 같다.

<소설가가 되었다>

작가의 에세이. 하지만 앞서 읽었던 소설의 내용들과 이어진 느낌이다. 시각장애 선고를 받아도 책을 계속 읽었으며, 장애인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안마사 생활을 시작한 후 우연한 계기로 만난 스승 덕에 작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소설은 재밌다. 연작소설이라 내용에 쉽게 빠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흡입력이 뛰어나서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끝까지 한 번에 다 읽었다. 이렇게 한 번에 다 읽는 책은 참 오랜만이다.
소설 속엔 든든한 엄마가 존재했다. 늘 따뜻하게 품어주는 엄마. 나도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엄마의 존재란 과연 무엇일까.
소설을 읽고 나니 작가의 산문집이 몹시 궁금해졌다. 제목도 멋지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꼭 읽어봐야지.


"한낮 땡볕에 서 있어도 나는 더위를 느낄 수 없었다. 마음이 서늘한 탓이었다. 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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