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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평점 :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야기사와 사토시
서혜영 옮김
다산북스
238p.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이다. 나에게 '서점'이란 단어는 새 책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냄새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사람의 흔적이 있는 '헌책방'은 서점과는 달리 따뜻함이 있다. 게다가 비가 그친 오후다.
주인공은 스물다섯의 '다카코'다. 다카코는 비밀리에 사내 연예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회사도 그만두고 집 안에만 틀어박히게 된다. 이때 손을 내민 건 외삼촌 '사토루'다. 외삼촌은 도쿄 진보초 고서점 거리에 있는 '모리사키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오전에 잠깐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서점 2층에 와서 지낼 것을 제안한다.
다카코는 그렇게 떠밀리듯 모리사키 서점에서 생활하게 된다. 10여 년 만에 본 외삼촌은 어색하고, 다카코가 지낼 방은 책들이 탑처럼 쌓여있고, 곰팡내가 가득하다.
다카코는 그곳에서 오전에 잠깐 일을 하곤, 삼촌이 오면 2층에 들어가서 잠만 잔다. 하지만 이윽고 삼촌과 함께 카페 '스보루'에가고, 단골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인생은 변하기 시작한다.
외삼촌은 다카코의 든든한 편이 되어주었다. 다카코를 페인으로 만든 전 남자친구인 히데아키의 집에 함께 찾아가 다카코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외삼촌의 부탁으로 집을 나간 지 5년 만에 돌아온 모모코 외숙모의 의중을 알기 위해 다카코도 노력한다.
외삼촌과 사이가 좋았던 외숙모는 왜 갑자기 집을 나갔고, 어째서 다시 돌아온 걸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모리사와 이키오의 <에밀리의 작은 부엌칼>이 생각났다. 세상에 치친 주인공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준 가족이 있고, 그런 가족이 있기에 시련 속에서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긴 주인공들의 모습이 비슷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가족 말이다. 하지만 말없이 떠났다 5년 만에 돌아와선 또다시 사라진 외숙모 '모모코'를 또다시 받아준 외삼촌 '사토루'의 마음을 이해하진 못하겠다.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너무 일방적인 사람 아닌가. 그런 존재를 어떻게 계속 기다리고 받아줄 수 있단 말인가.
소설의 배경은 도쿄 진보초 고서점 거리에 있는 '모리사키 서점'이다. 내가 사는 곳은 헌책방 거리가 없어서,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이, 그 헌책방에서 살며 하루 종일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이 책은 이례적으로 첫 출간으로부터 13년이 지나서 영미권에 번역 출간되었다. 그리고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영국 출판계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올해의 영국 도서상'의 '소설 데뷔작' 부문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뒤늦게 다시금 주목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자신을 믿어줄 단 한사람 말이다. 그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 헌책방에서 지내는 다카코를 보며
"쓸데없는 것은 하나도 없고 손만 뻗으면 책이 바로 잡힌다. 최고 아니예요? 68p. by 도모짱
"좋겠네요, 재충전. 더구나 그걸 헌책방에서 하다니 참 호사스러운 일이었네요. 아, 정말 부럽다." 146p. by 와다
-> 나도 이렇게 재충전 하고 싶다. 부럽다.
● 이러면 안 돼.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았다. 60p.
-> 다카코는 결국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질식할 것 같다는 표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질식할 것 같을 때 다른 무엇이 아닌 책이 바로 손 닿을 거리에 있다는 것이 다카코에게 행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통해 멋진 체험을 하고, 왠지 지금까지 인생을 손해 보며 산 것 같은 기분(64p.)이라는 문장도 와닿았다. 나 또한 책을 읽지 않고 보낸 세월이 손해 본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그저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아. 인생은 가끔 멈춰서 보는 것도 중요해. 지금 네가 이러는 건 인생이라는 긴 여행 중에 갖는 짧은 휴식 같은 거지. 여기는 항구고 너라는 배는 잠시 여기 닻을 내리고 있는 것일 뿐이야. 그러니 잘 쉬고 나서 또 출항하면 돼." 56~57P.
● 그래, 그건 마음의 문제야.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자신의 마음에 진솔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내가 있을 장소야. 그걸 깨닫는 동안 내 인생의 전반부가 지나갔다고 해야겠지. 그리고 나는 이제 가장 마음에 드는 항구로 돌아와 여기에 닻을 내리기로 결정한 거야. 나에게 이곳은 신성한 곳이고 가장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장소야." 88~89P.
● "오랫동안 인생의 휴가를 즐겼어요. 저도 슬슬 제가 있을 장소를 찾아 여행을 떠나야지요.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로 끝나버릴 거예요." 11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