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
채도운 지음 / 삶의직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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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강낭콩
채도운
삶의 직조

이 책은 '강낭콩'과 '식물뿌리'라는 2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 강낭콩
강낭콩을 낳은 스물다섯의 미혼. 김솔아의 이야기.

첫 문장이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만큼이나 충격적이다.

"나는 강낭콩을 낳은 적이 있다. 15p."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강낭콩이 뭘 의미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내 알게 되었다. 스물다섯 살 김솔아의 뱃속에 있던 태아였다. 16주도 안되어 '시신'으로 인정될 수 없어 의료폐기물로 분류되는 태아.

태아는 정말 작다. 임신을 알았을 때 내 뱃속에서 2cm 정도의 아기집에 있는 조그마한 점부터 봐왔기 때문이다. 16주도 안된 태아라면 강낭콩처럼 작을 것이다. 아마도.

정규직이 분명했지만 혼전임신으로 퇴사를 결정한 스물다섯 살의 인턴 김솔아. 김솔아의 엄마. 김솔아 남자친구의 엄마.
여기선 여러 화자가 나오지만 단연 김솔아의 시점이 우세하다.
김솔아는 자신이 낳은 강낭콩을 화분에 심어주려고 했다. 그 작은 강낭콩을 키워보려고 말이다.

소설에선 묻는다.
법적으로 태아가 될 수도 없고 시신으로 여겨지지도 않는 그 작은 '강낭콩'에 대해서 말이다.

"스물다섯의 남자와 여자. 네 그렇죠 뭐.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할 나이, 사회적 쓸모를 다해야 살 나이... 우리는 아이를 지우기로 합의했어요. 39p."

사회적 쓸모.
정말 쓸쓸한 단어다.


● 식물뿌리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 진석을 7년동안 간병한 지영과 진석의 아내 미선의 이야기.

진석은 식물이다. 사회적 쓸모를 증명할 수 없는 식물인간.

지영이 집에서 키우는 다 죽은 몬스테라는 진석을 상징한다. 다 죽었음에도 고집스럽게 화분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미선과 지영이 매일 지속되는 절망감에서 벗어나려 연명 치료 거부 의사를 밝힌다. 하지만 인공호흡기를 떼도 진석은 자가호흡을 한다. 마치 다 죽었어도 화분 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나오기를 거부하는 몬스테라처럼 말이다.


"한 사람과의 추억은 돌봄의 대가가 된다. 추억이 소진되고 고갈되면 돌봄도 끝난다. 지영은 더 이상 간병을 지속할 수 없었다. 진석이 식물인간이 된 이후로 지영과 진석 사이의 추억은 유한한 한계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63p"

추억이 돌봄의 대가라는 말이, 가족으로서 해 줄 수 있는 한계를 정한 듯한 말도 되는 것 같아 씁쓸했다. 이제 추억이 다 소진되어 더 이상 비용을 낼 수 없는 진석이 더 이상 아빠일 수 없다는 말도.

"산다는 것은 돌봄의 연속이다. 68p."

미래를 꿈꾼다는 건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미래가 자신의 인생은 없는 누군가의 돌봄의 연속이라면. 그렇다면 끔찍할 것이다.
돌봄. 참으로 무서운 단어다.


두 이야기엔 인간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사람들이 나온다. 10주도 안돼서 사망했을 때 의료폐기물이 된 태아. 식물인간.

도대체 인간의 조건은 무엇일까.
사회적 쓸모가 있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사회적 쓸모라는 건 무엇일까.
나의 사회적 쓸모는 무엇일까.
쓸쓸한 사회의 단면을 바라본 기분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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