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수신인이 불분명한 여러 편지들을 모은 책이다. 진짜 편지라기보다 편지 형식을 빌려 작가의 느낌과 생각을 수려하게 담아 엮었다는것이 훨씬 친절한 설명일 것이다. 수신인도 불분명하고 계절, 날짜 등의 시간상 순서도 없다. 그때 그때 작가의 마음이 길게 느껴질 뿐이다. 하나의 편지(?)를 읽고나면, 그 고요함이 내 안을 조용히 울린다. 조용한 울림.. 햇볕이 따스하게 비치는 곳에서 커피한잔을 마시며, 조용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다. 조용한 울림은 곧 따뜻함을 전한다. 폰트가 일반서적과는 다른데, 마치 작가의 말투를 그대로 옮긴듯한 모습이다. 만년필로 미색의 종이에다 꾹꾹담아 쓴 편지같다. 모난 돌멩이가 조약돌이 되듯 고치고 또 고쳐서 조각한 단어가 쓰여있는 시 같다.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뱉는 나의 불행을 궁금해하던 건 당신이 처음이었어요. 모두가 손톱만 한 나의 다행에 집중하며 옅은 격려를 건네는 사이, 나는 자주 외로워졌거든요. 거친 바닷속을 맨몸으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나무판자에 몸을 실었다고 해서 당장에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15p.모두가 돌아가고 나면 커다란 벽에 홀로 기대어 가만히 읊조릴 뿐이에요. 나를 언제 알았다고, 나를 얼마나 안다고,내가 무어라고. 그러다보면 별안간 커다란 슬픔이 밀려와요. 도무지 갚을 길 없음을 짐작한 빚쟁이의 슬픔이. 84p.이 마음을 어디에도 전송하지 못한 채 흩어 놓아야 한다는 게 나의 절망이자 절실함이에요. 망연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머리맡에 놓인 노트를 펼쳐 미련하게 몇 줄 적어 놓는 일이 전부예요. 이것만이 나의 고요하고 서글픈 아침의 유일한 증거가 될 테죠. 이토록 가난한 문장을 읽는 당신은 유일한 목격자가 될 테고요. 121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