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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지배 - 디지털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ㅣ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평점 :
우리의 감각과 인지 체계를 분열시키는 정보체제, 그것은 소통과 담론과 정치 같은 민주주의적 과정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정보체제 내에서 민주주의(Demokratie 데모크라시)를 대체하고 있는 새로운 지배 형태인 '인포크라시 (Infokratie)'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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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강조하는 사회가 되었다. 정치에서도 SNS에서도 사람들은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가 흔히 콘텐츠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에 머물지 말고 생산하는 콘텐츠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콘텐츠를 만들면 소비자들과 소통을 해야 한다. 그래야 콘텐츠를 더 널리 퍼뜨릴 수 있을 테니까. 저자는 이러한 소통이 중독적이고 강박적으로 변해 가고 있으며, 이러한 '소통 도취'가 사람들을 새로운 미성숙 상태에 가둔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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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왜 정보가 민주주의적 과정의 기반을 무너뜨린다고 했을까? 정보는 '놀라운 일이 주는 흥분'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보는 시간적으로 안정적일 수가 없다. 새로운 일이 터지고 더 자극적인 일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흥분한다. 흥분된 정보를 사람들이 실어 나른다. SNS 상에서 말이다. 내가 이해하기로 이런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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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었던 일본 미스터리 소설 [내 것이 아닌 잘못]이 떠올랐다. SNS 상에 떠다니는 정보가 전부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보의 이런 성질 때문에 음모론과 가짜 뉴스가 떠돌아다니고 이는 종족주의와 정체성 정치의 강화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내 것이 아닌 잘못]에서 주인공은 트위터에 올라온 가짜 정보 때문에 순식간에 살인자로 몰리게 된다.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만을 근거로 한 사람을 살인자로 지목하고 전국의 사람들이 법의 정의를 직접 심판하려고 나선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정보에 광분하며 휘둘리고 이성을 잃는 대중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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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자신이 인터넷 상에서 보는 정보를 사실이라고 믿고 또 그것을 퍼나르기까지 한다. 그것이 맞는 정보이든 틀린 정보이든 어느 순간 관계 없는 때가 찾아온다. 아무 여과 없이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믿고 퍼뜨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가짜가 진짜가 된다. 저자는 이것이 정보의 속성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정보란 놀라운 일이 주는 흥분'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연속적으로 창조되어야 하는 이야기에 대중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새롭고 빠르게 전파되는 강력한 약물 같은 정보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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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정치는 진실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데이터 주도의 시스템 관리로 대체된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결정들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통해 내려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챗GPT 앞에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무기력함이 대두되는 이 시점에 우리는 어떻게 진실을 찾고 소통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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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상하는 콘텐츠를 잘 생산해 내는 일부 스마트한 인플루언서들에 의해 대중은 콘텐츠 '소비 가축'으로 길들여진다. 스마트한 인플루언서들의 의견에 맞장구를 치는 것은 진정한 소통 행위로 볼 수 없다. 소통도 없고 담론도 없는 이러한 형태의 합리성을 저자는 '디지털 합리성'이라고 부른다. 이 디지털 합리성은 담론을 이끄는 '소통적 합리성'과 대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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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철학자라는 한병철 교수의 책이다. 번역자가 있어 의아했다. 아마 독일어로 책을 쓰고 번역을 한 것 같다. [피로사회], [투명사회], [심리정치], [리추얼의 종말] 등 저서가 많은데 예리하고 독창적인 사회 비평서를 많이 낸다고 한다. 겨우 100페이지 정도의 아주 얇은 책인데 정말 읽기 어려웠다. 단어의 조합이 추상적이라고 할까? 한 문단을 읽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매우 어려웠다. 절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 읽으면 뭔가 머릿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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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도서는 김영사의 서포터즈 16기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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