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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음도 언젠가 잊혀질 거야
스미노 요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평점 :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했던가! 매일 아침밥을 먹고 등교해서 정해진 교실의 정해진 자리에 앉아 있다가 하교를 한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저 아무것도 아닌 학생들이 있다. 자신을 포함해 단 한 명도 특별한 인간이 없는 이 시시함이란! 인생이 즐겁다고 누가 말했나. 인생은 그저 형편없이 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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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너무 시시하고 따분하고 지루한 스즈키 카야. 카야는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너무 시시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들과 다른 점이 딱 하나 있다고 믿는다. 바로 자신이 '시시하다'라는 점을 똑똑히 기억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인간은 모두 인생을 채색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색으로 인생을 색칠하고 나름 특별하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카야는 분노한다. 그들이 역겹다. 그들은 모두 하.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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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야의 시시함 속으로 불쑥 찾아온 치카. 그토록 간절하게 특별함을 갈구했는데, 어느 날 역대급 특별함이 카야를 찾아왔다. 분명 그녀는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카야가 볼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두 눈과 손발톱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빛난다. 아주 밝고 찬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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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낡은 버스 정류장. 카야와 치카의 은밀한 만남의 장소. 아름답게 빛나는 그녀에게 카야는 '치카'라고 이름 붙인다. 치카는 카야에게, 카야는 치카에게 매우 소중한, 그리고 아주 특별한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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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 다른 세계의 어떤 미지의 존재일 그녀는 카야의 시시한 인생에 한 줄기 강한 빛으로 찾아왔다. 강렬하지만 부드럽게 휘감아 카야를 감싼다. 그들은 서로의 세계에 대해 탐색한다. 이상하지만 그들이 세계는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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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지루한 인생을 끝장내 줄 그 무엇을 치카에게 기대했던 카야는 서서히 그저 치카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그토록 강렬했던 사랑은 정말로 죽어버릴 것 같은 감정으로 변한다. 그녀는 사라졌고 카야는 감정으로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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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야가 사랑했던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치카에 대한 그 강렬했던 마음은 시간과 함께 사라지고 그녀와 함께 했던 사실만이 남았다. 그녀가 자신의 특별한 전부라는 '그 마음'이 없으면 카야는 살 수 없다. '그 마음'이 바로 카야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되었고 카야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느껴지지 않으면 치카는 거짓말이 된다. 치카의 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그는 치카의 무엇이었을까? 깨달음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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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같은 격정을 경험한다.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한다. 아무리 뜨겁게 타올라 절대 꺼지지 않을 것 같은 열정도, 사랑도 언젠가는 잊혀진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또한 삶이다. 그 격정이 식어 내 양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모래와 같을지라도, 그것은 거짓말이 될 수 없다. 잊는다 해도 전부 거짓이 되지 않는다. 괜찮다. 잊어도. 괜찮다. 인생은 강렬하고 특별하게 타올라야만 한다고 믿던 카야가 나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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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도서는 소미미디어의 소미랑2기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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