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숲 양조장집
도다 준코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평점 :
품절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모두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엄청난 비밀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은 비밀을 감추기 위한 거짓을 덧입는다.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가족사 소설입니다."라고 [모방범], [화차]의 저자 미야베 미유키가 강력 추천했다고 한다. 하지만 "재미있게"라는 표현이 좀 거슬린다. [대나무 숲 양조장 집]이라는 제목만으로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웠던 이 소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묵직한 가족사를 다룬 이야기이다.

일본에 가면 몇 대째 대를 이어 하고 있다는 음식점이나 가게 등을 볼 수 있다. 가업을 잇는 것이다. 일본 문화에서 가업을 잇는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임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메밀 국수 가게를 해 왔으면 나도 메밀 국수 가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은 전수 받으면 된다. 하지만 만약 내가 메밀 국수를 만들고 싶지 않고 화가가 되고 싶다면?

넓은 대나무 숲이 병풍처럼 펼쳐진 양조장, 간장 냄새가 난다. 무려 150년 가까이 대대로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양조장이다. 아들에게 물려주지만 아들이 없다면 데릴사위라도 들여서 가업을 이어야 한다. 주인공인 어린 소녀 긴카, 긴카의 아버지는 가업을 잇기 위해 양조장으로 돌아오지만 화가의 미련을 버릴 수 없다. 미인이고 음식 솜씨도 매우 훌륭하지만 도벽이 있는 어머니 미노리를 중심으로 모든 등장인물이 저마다 비밀을 가지고 있다.

저자 도다 준코는 [눈의 소철나무]로 한국에 알려졌다고 한다. 저자는 옛날 술 양조장을 다룬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고 나중에 소설가가 되면 꼭 양조장 관련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마음 먹었다고 한다. 여성 양조 기술자가 있는 간장 양조장을 알게 되고 취재하여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여성인 저자는 그동안 남자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써 왔다고 한다. 소설가가 된 지 무려 11년 만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물론 도다 준코의 다른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흥미가 생긴다.

가족사 소설이자 성장 소설이지만 마치 미스터리 소설과 같은 치밀함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도입부의 양조장 공사 현장에서 어린아이 크기의 백골이 발견되는 점, 양조장에 살면서 당주에게만 보인다는 좌부동자 전설, 모든 등장인물이 엄청난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소설은 제163회 나오키상 후보작으로 올랐는데, 한 심사 위원의 말대로 전체적으로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는데 독자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흥미진진한 전개와 흡입력이 일품이다.

이 소설의 번역자도 도다 준코의 작품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가장 궁극적인 목적인 '재미'가 보장된다고 썼다. 하지만 이런 내용에 '재미가 있다'는 표현이 과연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도다 준코의 다른 소설에 비해 주인공이 가장 고생을 덜하는 일명 '순한 맛' 소설이라고도 했다. 이 정도가 '순한 맛'이라니.

가업을 잇는다는 것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소설 [대나무 숲 양조장 집]이다. 가업이라는 것은 나를 과거에 붙들어 매어 놓는 덫인가? 아니면 과거를 껴안고 마주해야 할 미래가 될 것인가? 누구나 비밀을 안고 살지만 누구에게 털어 놓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비밀이 있다는 말도 맞고,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말도 맞다. 이 모순된 진리를 깨닫게 하는 소설 [대나무 숲 양조장 집]이다.

해당 도서는 소미미디어의 소미랑2기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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