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어둠
렌조 미키히코 저자, 양윤옥 역자 / 모모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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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게이코가 신주쿠에 있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호텔에서 살해되었다니......

게이코라면 바로 방금 전까지 이 카펫 위에 쓰러져 있었다. 내가 죽였다. 이 손으로, 침실에서 내가 죽였다. (11쪽)

내 손으로 죽인 와이프가 시내 한 호텔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게 되는데......

작가 렌조 미키히코는 '장르적 재미'와 '문학적 예술성'으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동시대 작가들에게 경외에 찬 질시를 받았던 작가라고 한다. 작품 [백광]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이 있다고 한다. 아직 [백광]은 읽어보지 못했고 이 단편집을 처음으로 렌조 미키히코를 알게 되었다.

작가의 키워드는 단연 '욕망'이다. 인간이 가진 '욕망', 그 끝이 어디까지인가를 확실하고 처절하게 보여 주는 소설이다. "가질 수 없으면 부서뜨리고, 믿을 수 없으면 속여넘기고, 살릴 수 없으면 죽여버리는, 뜨거운 정념과 차가운 복수를 넘나드는 가식 없는 욕망으로의 초대!" - 책 뒤표지에 있는 말인데 누가 썼는지 매우 멋지다!

모든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 욕망을 채워가는 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그 욕망을 채우는 데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이 누구라도 제거할 수밖에 없는가. 그것이 아내라도, 남편이라도, 내 자식이라도. 욕망을 자극하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절제된 문체가 계속 빨려 들게 만들었다.

작품이 1980년대에 쓰여져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최근 인터넷 트렌드가 반영된 미스터리 소설과는 매우 다르게 다가왔다. 특히 '네온사인'이라는 단어가 매 작품마다 눈에 띄었다.

시라이는 말을 마치고 어둠에 떠오른 네온 불빛의 알록달록한 색깔을 바라보았다. 그 아름다운 색깔이 어젯밤까지의 악몽을 모조리 씻어주는 것 같았다. <화석의 열쇠> 127쪽

하지만 강 선배의 뒷모습이 사라진 한밤중의 텅 빈 플랫폼이 차창 밖으로 미끄러져가고 이윽고 도쿄의 밤에 마지막 네온 불빛이 번져갈 때, 이제 이곳도 마지막이구나, 두 번 다시 도쿄에 돌아올 일도 없을 테니, 라는 감상에 젖어 들면서 퍼뜩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과거에서 온 목소리> 61쪽

8시에 나는 이 집에 없었으므로 당연히 이 집에서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그 시각에 신주쿠의, 아마도 극채색의 천박한 네온사인 거리 한 귀퉁이에서 방금 전화한 남자를 만나 알리바이 증명을 부탁했으리라. <두 개의 얼굴> 44쪽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멈춰선 나를 두고 강 선배는 혼자 경찰서를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뒷골목 주점의 네온사인 불빛에 평소보다 어깨가 축 처진 채 사건을 향해 뛰어드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강 선배는 누구보다 신이치를 걱정하고 있구나, 라고 새삼 느꼈습니다. <과거에서 온 목소리> 77쪽

이 책 [열린 어둠]은 렌조 미키히코의 단편 아홉 편을 모은 것으로 1980년대에 처음 출간되었고 2014년에 복간이 이루어졌다. 당시 '복간 희망, 환상의 명작 베스트텐' 1위로 꼽혔다고 하니 얼마나 팬층이 두터웠는지도 알 것 같다.

최근 읽은 미스터리 소설은 SNS상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살인자로 몰리게 된 이야기였다. 최근 사회 문제도 담고 있고 인터넷과 SNS의 문제점도 반영되어 있는 소설이었다. 반면 렌조 미키히코의 이 단편집은 1980년대 작품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면모는 없다. 하지만 오히려 정통 추리물의 향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고 생각된다.

화려하지만 동시에 추잡한 인간의 욕망과 화려한 네온사인의 불빛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다.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의 알록달록한 색깔은 때로는 추잡한 더러움을 씻겨줄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감상에 젖어들게 만든다. 뒷골목 주점의 네온사인 불빛은 쓸쓸하게 사라져가는 인생의 고독을 느끼게 해 준다. 렌조 미키히코의 이 단편소설집에서 내가 건져올린 단어 '네온사인'은 나에게 글감이 되어 주었다.

정말 재미있다. 강렬하게 자극적이다. 렌조 미키히코, 왜 천재 작가로 불렸는지 알 것 같다. 이런 추리물을 읽으면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고 느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해당 도서는 모모출판사의 서평단으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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