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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평점 :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원숙하고 싶다면? 지나간 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축복 속에서 젊게 살아가고 싶다면? 철학을 해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에피쿠로스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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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젊다고 철학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도 안 되고, 늙었다고 해서 철학하는 것을 싫증 내서도 안 된다.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데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은 나이는 없기 때문이다. (중략) 따라서 젊었든 늙었든 철학을 해야 한다. 젊은 사람은 비록 나이가 젊더라도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두려움 없이 나이 든 사람처럼 원숙하기 위해 철학을 해야 하고, 늙은 사람은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지나간 일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축복 속에서 젊게 살아가기 위해 철학을 해야 한다. 행복하다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고,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할 것이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을 해야 한다. (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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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인용한 구절은 매우 유명한 구절로 에피쿠로스가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낸 서신의 일부이다. 젊든 늙었든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나? 나는 안타깝게도 후자에 해당된다. 비록 나이 들었지만 이렇게 에피쿠로스를 읽을 수 있으니, 그것도 국내 최초로 에피쿠로스의 현존 원고 8편 모두를 그리스어를 완역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무척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많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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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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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그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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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그는 누구인가? 에피쿠로스 하면 바로 '쾌락주의'가 떠오를 것이다.
'쾌락'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게 쾌락하면 육체적 쾌락, 즉 성적인 쾌락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쾌락은 에피쿠로스의 쾌락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기에 꼭 읽어보고 싶었다.
현대지성에서 에피쿠로스 그리스어 완역본을 본 순간 바로 서평단 신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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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행복한 삶'이란 "몸의 건강과 평정심"을 말한다. '몸의 건강'은 '몸의 평정'과 동일한 뜻이다. 몸과 마음의 평정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몸과 마음에 비정상적 이상 반응이 나타난다. 따라서 "몸의 건강과 평정심"을 얻기 위해 우리는 모든 선택과 회피를 제대로 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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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는 고통이 없는 상태를 위한 쾌락을 행복한 삶의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고통이 존재하지 않을 때는 우리가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 듯이 헤맬 필요가 없다. 고통이 없기 때문에 내 몸과 마음에 좋은 그 무엇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리하여 쾌락이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한다. 쾌락이야말로 가장 으뜸가는 선이자, 모든 선택과 회피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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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택"과 "회피"에 대해서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쾌락이라고 해서 다 선택하지는 않는다. 더 큰 괴로움을 가져다 주는 쾌락이라면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겪은 큰 고통을 인내한 후에 더 큰 쾌락이 주어진다면, 그 고통이 쾌락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즉, 모든 쾌락이 선택할 만한 것은 아니며 모든 고통은 나쁘지만 고통이 항상 회피를 낳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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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부재를 위한 쾌락으로부터 "선택"과 "회피"라는 윤리적 판단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윤리적인 판단은 무엇인가?
결국 선이냐 악이냐 하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곧 "쾌락"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해득실을 따져보고 비교하여 모든 것을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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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는 그래서 "자족"을 큰 선이라고 생각한다. 자족은 항상 적은 것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적은 것으로도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결핍으로 인한 고통이 없다면, 소박한 음식은 사치스러운 음식과 같은 크기의 쾌락을 줄 수 있다. 빵과 물은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어졌을 때만 가장 큰 쾌락을 줄 수 있다. 이 말은 내가 이해하기에, 가난하여 소박하게 먹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소박하게 먹고 그것을 즐긴다면, 또 사는 데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사치품을 사지 않고 꼭 필요한 물건만 산다면, 이런 사람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진실로 완전한 "자족" 상태에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인 것 같다. 이것이 '안분지족'의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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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그의 쾌락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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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의 쾌락은 그에게 적대적인 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방탕한 자들이 추구하는 그런 쾌락이 아니다. 술 마시고 흥청거리는 그런 방탕한 쾌락이 아니다. 동성애나 이성애를 통해 애욕을 즐기는 것도 아니다. 매끼 진수성찬을 즐기는 것도 아니다. 몸과 마음에 고통이나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맑은 정신으로 이성적으로 추론하여 "선택과 회피"에 대한 근거를 찾는 것이다. 마음을 혼란시키는 잘못된 생각을 깨끗하게 몰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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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 에피쿠로스의 쾌락을 오해하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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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나 그때나 이 "쾌락" 때문에 많은 오해와 비방이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자신이 추구하는 쾌락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렇게 자세하게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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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학파의 최대 선은 "사려 깊음"이다. 사려 깊다는 것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사려 깊음에서 다른 모든 미덕이 생긴다. 사려 깊고 아름답고 정의로운 삶 없이는 쾌락의 삶도 없다. 쾌락의 삶 없이는 사려 깊고 아름답고 정의로운 삶도 없다. 쾌락은 미덕과 분리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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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려 깊음은 그리스어로 '프로네시스'라고 하는데 어떤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따져 옮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 능력이 왜 필요할까?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쾌락을 선택하고 고통은 회피해야 한다. 쾌락과 고통의 많고 적음을 계산해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올바른 선택을 하는 판단 능력, 프로네시스가 있어야 행복에 이를 수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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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으로 보자면,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프로네시스는 보다 구체적인 선택 능력을 말하는 것 같다. 실제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과 상황 속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철학자들의 사변적 지혜인 '소피아'보다 오히려 인간에게 훨씬 중요한 능력인 것이다. 우리 인생은 사실 선택의 연속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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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이런 철학서를 서평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애써 이해하려 했으나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에피쿠로스, 그의 철학을 이렇게 한 번 읽었다고 다 이해할 수 없겠지. 다음 서평에서 그에 대해 더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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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도서는 현대지성의 서평단으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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