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 평전 - 광기에 맞선 이성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 / 원더박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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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실리적으로 경영하라, 철저한 전문 외교관 마키아벨리 vs 평화주의적 인류애 중시자 에라스무스

에라스무스가 인류애를 후대 사람들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나려는 순간, 마키아벨리의 악명 높은 [군주론]이 출간된다.

모든 군주와 국가의 권력 의지, 힘의 의지를 최상위 목표로 승격시킨 마키아벨리, 그에게 정치는 도덕과 관계 없는, 철저히 독자적인 학문이다.

이에 반해 에라스무스에게 정치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토마스 아퀴나스를 잇는 윤리적인 것이다. 따라서 군주와 국가 지도자는 신의 종이어야 하고 도덕 이념의 대표자여야 한다.

힘의 원칙을 찬미하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이후 유럽 모든 민족의 열정적인 '대립'을 이끌어 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마키아벨리식 군주와 국가 지도자는 인류와 인류애 사상에 몰입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감상을 완전히 배제하고 인간의 약점과 심리적 긴장을 철저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에라스무스의 사상은 무엇인가?

인간을 더 사랑하고 더 정신적이 되어야 하며 더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인류의 가장 숭고한 과제이다.

모든 종교와 신화가 갖고 있는 '인류의 교화'라는 원초적 꿈, 공정한 이성이 승리하는 희망에 가득한 꿈,

이런 꿈을 꾸는자, 그가 에라스무스라고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는 말한다.

중세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로테로다무스

그가 누구인지 모르고 이 책을 읽는 것은 어렵기 이전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위적이고 부패에 빠진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우신 예찬] 썼다는 것 외에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나의 얕은 지식으로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고향도 없고 가족도 없는, 진공의 공간에서 태어나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에라스무스

에라스무스 로테로다무스, 이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필명이다.

출생 연도 1446년도 확실한 것이 아니며 정식 혼인 관계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생아이다.

네델란드에서 태어났지만 평생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프랑스와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활동했다.

신앙심이 강해서가 아니라 단지 도서관이 있다는 이유로 수도권에 들어가 서품을 받고 사제가 된다.

하지만 그는 사제로 기억되기 바라지 않은 것 같다. 교황으로부터 신부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특별 면제를 받아냈고

수도원을 나온 뒤에는 상관의 간청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수도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어느 것에도, 누구에게도 구속되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본성의 강요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자 했고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으려고 했다. 궁정에도 대학에도 수도원에도 의무감을 느끼지 않고 자기 정신의 자유를 지켰다.

사제가 되었으나 교황과 수도원에 아무 의무감을 느끼지 않고 불타는 신앙심도 없었다는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갈등을 혐오하고, 권력과 권력자에 대한 불필요한 저항을 기피했다. 그들과 타협하기보다 그저 자신의 독립이 중요했다.

수도원의 침실은 건강에 해롭고 삭막하게 회칠한 벽은 얼음처럼 차서 거의 변소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달걀과 고기에서는 썩은 냄새가 나고 포도주는 시어 빠졌다.

에라스무스, 그는 청년 시절을 수도원에 수감되어 보낸 '죄수'였다. 그는 호시탐탐 '탈출'을 꿈꿨고 성공했다.

중세 최고의 지성 에라스무스와 그의 사상을 한번에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루터와의 첨예한 대립보다 인간 에라스무스의 인생을 먼저 알고 싶었다.

수도원에서 나와 자유로운 여행자로 또 최고의 학자로 살았지만 가난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철저한 신분주의 시대에 가난한 학자가 후원자를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했을까?

때로는 아첨하고 때로는 비굴해야 했다.

뛰어난 전기 작가로 알려진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를 통해 자신을 보았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치가 자신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자 그는 영국으로 망명한다. 망명 직전 펴낸 책이 바로 [에라스무스 평전]이다.

평화를 사랑하고 인류애를 그 무엇보다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에라스무스를 통해 혼돈과 광란의 시대를 고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먼저 세상에 이별을 고한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부인과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에라스무스는 인류를 사랑한 평화주의적 인문학자이면서 동시에 용기 있게 시대에 맞서지 못한 나약한 지식인이라는

이중적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는 것 같다. 루터와 모든 면에서 비교되는 에라스무스.

비단 학문적 성과와 정신적인 면뿐 아니라 신체적인 조건에서도 루터와 그는 상반된다.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가 평생 잃지 않았던 삶의 자세, 곧 중립의 자세를 유지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정신과 이념에서는 승리했으나 현실에서는 패배자로 남은 에라스무스.

그는 이상에 빠진 나약한 관념주의자인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적 사상에 더 가까운 나는 어느 한 편에 결코 붙지 않는 중립적인 에라스무스의 자세와

1차,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저자의 태도가 매우 안타깝다.

저자는 에라스무스를 '최초의 의식 있는 세계주의자이자 유럽인'이라고 불렀다. 이 책을 번역한 정민영 교수의 말로 마무리를 할까 한다.

"우리의 주변은 정치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극한 대립과 분열, 갈등에 싸여 있다. 일방적인 자기주장과 증오만 난무할 뿐인 우리 사회의

모습은 천박함 그 자체로 보인다. 에라스무스의 시선으로 보자면 우리는 여전히 '광신의 격류'를 견뎌 내야 하는 시대다. 올바른 판단과

존중의 정신, 인내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274~275쪽)

해당 도서는 원더박스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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