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산들 작가는 원래 수술실 간호사로 일했다. 간호사 중에서도 수술실 간호사는 매우 긴장도가 높기 때문에 훨씬 힘들다고 한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찜통더위 속에 '우주복' 같은 방호복을 입고 응급실에서 열심히 일을 했다. 우연히 보게 된 숙소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뺏기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곧바로 남해로 향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간호사 이산들과 남해의 첫 만남이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아무 예정도 아무 계획도 없는 만남이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다만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남해가 좋아서 남해의 그 모든 아름다운 모습들을 남기고 싶어서 직업까지 바꾸게 될 줄은 말이다. 인생은 때로는 계획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이런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 보통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진다. 간호사를 하면서 틈틈이 사진을 배우고 남해를 갈 때마다 직접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당장 남해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남해, 아주 오래전에 가 본 적이 있다. 아마 5월이나 6월 초쯤이었을 것이다. 독일마을이 정말 아름다워서 마치 유럽의 한 마을에 온 것 같았지.
사실 이산들 작가의 말처럼 남해는 그렇게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자차로 가든 다른 교통수단으로 가든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아마 작가는 남해로 가면서도 서울로 오면서도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직은 사람이 손이 많이 타지 않은 듯한 곳, 카메라를 내려놓고 손가락 프레임으로만 봐도 아름다운 곳, 마치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 같은 곳...... 남해다.
매일 전쟁터 같은 수술실에서 한바탕 일을 하고 나면 항상 몸과 마음이 지치고, 그런 날에는 따뜻한 남해가 떠올랐다. 변했을까 걱정했지만 변하지 않고 그대로 똑같이 나를 맞아주는 남해, 이곳에 오면 행복해져야 할 이유를 굳이 찾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행복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이라 정말 멋진 사진이 많았다. 사진만 보고 있어도 마치 내가 남해 어느 한곳에 있는 것 같았다. 남해의 봄, 남해의 여름, 남해의 가을, 남해의 겨울,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다. 어딜 가나 탐스럽게 피어있는 벚꽃을 보고 있노라니 [빨강 머리 앤]에 나온 벚꽃길이 떠올랐다. 앤은 '눈의 여왕'이라고 이름을 붙였지. 나는 특히 남해의 바다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햇빛을 받아 출렁이는 물결, 에메랄드빛 바다 위로 별빛이 쏟아지는 것 같은 그런 찬란함...... 하염없이 바라만 봐도 좋은 그런 남해의 바다.
책의 곳곳에서 '작가가 알려주는 사진 찍는 팁'을 볼 수 있다. 멋진 사진을 찍고 싶은 건 모두의 바람 아닐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리개는 몇으로 맞추고 감도는 몇으로 맞추고 하는 말을 나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작가가 찍은 별 사진과 저녁노을에 잠겨 있는 남해 대교의 사진을 보니 옛 추억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놓치지 아까운 순간들을 사진으로 포착하고, 그 찰나의 셔터를 누르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과정들, 생각들을 이렇게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 그렇게 [생각이 많은 날에는 남해에 갑니다]가 탄생했다.
'사진에 미친 여자' 이산들, 그녀가 부러웠다. 무엇에 미쳐본 적이 언제였지? 사진이 뭐가 그렇게 좋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작가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진은 한순간을 여러 번 살아볼 수 있으니까." 그녀는 곧 과거가 되어버릴 현재의 시간들을 선명하게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사진에 미쳐있는 중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 무엇에 미쳐있는 중일까?
해당 도서는 도서출판 푸른향기의 서포터즈6기로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