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서서 가만히 - 유물 앞에 오래 서 있는 사람은 뭐가 좋을까
정명희 지음 / 어크로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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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는 유물이 있을 것이다! 유물 앞에서 오래 머무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설렌다는 정명희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멈춰서서 가만히] 한 점 유물에 귀를 기울여보자.

박물관에 가 본 지가 참 오래되었다. 박물관에는 아주 많은 유물들이 있다. 관람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에는 한 가지를 오래 보고 싶어도 짧게 보고 지나치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생각해 보았다. 박물관에서 내 마음을 끌었던, 나에게 말을 걸었던 유물이 있었던가?

  

저자 정명희 큐레이터는 말한다. 한 점의 유물 앞에서 우리의 시간은 과거로 향하기도 하고 내가 가 보지 않았던 길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멈춰서서 가만히 유물이 건네는 이야기를 듣고 그와 대화를 나누는 정명희 큐레이터를 따라 여행을 떠나보자. 유물과 대화를 나누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는 기적과 같은 순간을 나도 경험하고 싶다면!

  

고려 시대를 가르치다 보면 반드시 고려 청자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 책에는 '청자 상감 모란 구름 학 무늬 베개'가 소개된다. 자기의 종류와 만들어진 방법, 그리고 어떤 무늬인지가 차례대로 이름에 드러나기 때문에 유물의 이름이 꽤 길게 지어진다. 이것은 청자이면서 상감 기법으로 만들어진, 모란과 구름, 학 무늬가 있는 베개이다. 이게 베개라고 하면 아이들은 매우 놀란다. 이런 것을 베고 어떻게 잘 수 있을까? 그런데 자세히 보면 측면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베개에 웬 구멍일까?

  

고려의 문인 이규보의 시에 '한단침(한단의 베개)'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당나라 때 지어져 송나라 때 유행한 베개 이야기인 [침중기]에 나오는 번화했던 도시 이름이 한단이다. 과거 시험에 계속 낙방하여 상심한 청년 노생은 여옹이라는 도사가 건네준 베개를 보게 된다. 베개 양끝의 구멍을 바라보자 구멍은 점점 커지고 환해져서 노생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후 노생은 과거에 합격하고 명문가 규수와 결혼을 하고 재상까지 된다. 그러나 모함에 빠져 죽을 위기를 넘기고 부귀영화를 누리다 여든 살이 되어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 잠에서 깼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베개의 구멍을 따라 들어간 세상에서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그저 한낮의 꿈일뿐이었다.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의 '한단지몽'으로 불린다. 고려 시대 만들어진 약 100여 점의 청자 베개 중 85퍼센트에 이런 구멍이 있다고 한다. 고려인들은 왜 청자 베개에 이런 구멍을 뚫어 놓았을까? '한단지몽'의 노생처럼 구멍을 통해 인간의 모든 욕망이 다 덧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코로나로 인해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이 많이 제한되었다. 하지만 꼭 물리적으로 떠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어딘가 멋진 외국에 갈 때는 대부분 더 많은 곳을 가 보고 싶어서 빠듯한 일정 속에서 움직일 때가 많지 않은가? 한 곳에서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더라도 다른 곳도 가 봐야 한다는 생각에 그럴 수 없었던 적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더 많은 곳을 다니기 보다는 내가 정말 머무르고 싶은 한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정명희 큐레이터처럼 매일 박물관에 가서 유물과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이 책 [멈춰서서 가만히]를 읽고 나니 나도 이제 박물관에 간다면, 한 가지 나의 마음을 진하게 끄는 유물 앞에 가만히 멈춰서고 싶다. 그 유물이 고려 청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천마총에서 나온 유리잔일 수도 있을 것이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신라의 금관일 수도 있고 가야의 집 모양 토기일 수도 있다. 가만히 멈춰서서 조용히 귀를 기울여보자. 어떤 유물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지 모른다. 아니면 내가 먼저 유물에게 말을 건넬 수도 있겠지. 혹시 알겠는가? '한단지몽'의 노생처럼 어떤 마법의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 인생의 부귀영화를 다 겪고 돌아오게 될지!

해당 도서는 어크로스 출판사의 ABC북클럽 3기로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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