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고전에서 역사를 읽다 - 삶의 변곡점에 선 사람들을 위한 색다른 고전 읽기
최봉수 지음 / 가디언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고전에 미처 담지 못한 그 사람의 내면의 목소리를 상상해본다. '그는 왜 그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이 책은 고전을 타고 그 상황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상황을 먼저 공유하고 해석한다. 그의 상황 인식을 분석하고, 그의 선택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그의 그릇을 상상한다. 이 추적과 상상이야말로 이 책을 써나가는 즐거움이다. 16쪽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는 여러 면에서 서로 비교되는 고전이다. [삼국사기]는 새로운 우리의 역사책을 써 보라는 인종의 준엄한 명령을 받아 쓴 정사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정사라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대주의적 역사서'로 평가절하되었다. [삼국사기]는 그 책 자체보다 저자 김부식의 평가에 의해 평가되었다는 말이다.

김부식은 누구인가. 그는 당시 최고의 문벌귀족이었다. 태조 왕건의 정략결혼을 통해 세력을 얻은 지방 호족 출신이 아니다. 그의 다섯 형제 모두가 과거에 급제해 천재 가문으로 이름을 날리면서 중앙 정계에 등장했다. 형제 중 한 명은 승려가 되었다. 당시 승려는 과거 시험인 승과에 합격해야만 하는 지배층의 하나였다.

당시 왕이었던 인종은 누구인가. 태조 왕건은 지방 호족 세력의 규합을 목적으로 부인을 29명이나 두었고 그 자녀들은 어머니가 다르면 서로 혼인까지 했다. 배다른 형제끼리 혼인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최고의 권력가인 이자겸은 인종의 외할아버지이면서 동시에 장인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인종의 어머니가 이자겸의 딸이며, 인종은 그의 두 이모들과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자겸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인종은 당연히 이자겸을 제거하려 했고 가만히 있을 이자겸이 아니었다.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에게 감금당한 인종은 포기하지 않고 왕권 회복을 꾀하고 척준경을 동원하여 드디어 이자겸을 제거한다. 그리고 다시 서경파 정지상을 이용해 척준경도 제거한다. 권력 앞에서는 부모 자식도 없는 것 아니겠는가.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욕심으로 점철된 것이 역사가 아닌가 말이다.

이제 묘청이 나올 차례다. 묘청이란 승려는 서경 천도, 칭제 건원, 북벌을 주장했다. 수도 개경의 기반을 둔 문벌 귀족들의 세력 약화를 원했던 인종은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정지상으로 대표되는 서경 출신의 신진 세력을 대거 등용한다. 어느 순간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비롯한 주장이 진보적 자주독립의 사상으로 실제보다 더 과장되게 포장되었다. 신채호가 [조산사연구초]에서 "묘청의 난이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는 1천 년 사이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는 부분만 발췌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묘청은 서경 천도 과정에서 조작된 사건을 벌이고 신채호도 이런 묘청의 행동에 대해 '제멋대로 날뛰고 설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신채호 논문에서 이런 부분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묘청의 난이 고려의 자주 정신의 꽃인 양 포장되었다.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로 폄하하고 그의 역사적 시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사관이라고 한다. 같은 사건을 보면서 서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전체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채호 논문 전체를 관통하는 시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치 신채호가 김부식을 허황된 사대주의자로 폄하하고 묘청을 자주독립의 가치를 내세운 선지자쯤으로 평가했다는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1980년대 운동권 시인의 편협한 시각을 비판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그래서 여러운 일이다. 그 사건에 대한 여러 다른 시각도 함께 조사하고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대한 공정한 평가를 내리고 싶다면 내가 원하는 결과만 부각되도록 몰고 가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 저자도 밝혔듯이 고전이란 언제 읽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진다. 여러 번 읽고 사건의 주인공들과 대화를 하려고 시도하면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주변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던 저자의 노력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삼국사기]와 김부식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평가절하하려고 했던 세력에 대한 신랄한 평가 또한 매우 통괘하게 다가왔다.

해당 도서는 가디언 출판사의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