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주부 명랑제주 유배기
김보리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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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로 유배를 떠난다고? 그것도 나이 오십에 혼자서?
요즘 유행하는 한 달 살기 아닌가? 자기가 가고 싶어서 갔으면서 ‘유배’라는 말을 사용할 자격이 있는가?

사실 제목에 있는 ‘유배’라는 낱말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배’란 죄인을 귀양 보내는 일이다. 귀양은 죄인을 먼 시골이나 섬으로 일정 기간 보내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살게 하던 형벌이다. 따라서 즐겁게 놀러다니는 데 붙이는 말이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죄인을 제주도로 귀양을 보냈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자 여행지, 휴양지이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제주까지 귀양을 가는 험난한 일정 도중에 죽을 수도 있었고, 잘 도착했다 하더라도 외로움과 굶주림으로 또는 사약을 받아 죽기도 했다.


프롤로그에서는 습관이 나빠서 유배를 갔다고 했다. 남편을 잘못 키운 죄로 유배를 갔다고 했다. ‘열심히 일한 당신’은 아니었지만 그냥 떠나고 싶어서 갔다고 했다. 그건 그렇지,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고 떠날 자격까지 없는 건 아니니까!

이 책을 읽으며 제주를 이렇게 여행할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별 다섯 개 호텔부터 예약하고 렌터카 몰지 않고 갈 수도 있구나. 게스트하우스는 닷새에 85,000원이라고 했다.
이 게스트하우스에 저자의 언니들이 다녀갔고 또 친구들도 다녀갔다. 그 사이의 날, 그 소중한 조용한 저녁, 세 명의 여인네들이 새로 들어왔다.

‘나’를 보여주기 싫은 게 아니라 ‘나이’를 보여주기 싫은 마음, “제가 나이가 좀 많아서 …….”
(엇, 이거 나도 많이 애용하는 말인데?)
그렇게 그녀들은 마주앉아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를 나눈다. 독한 밤이었다.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 짧은 인생, 그러나 가혹한 인생.
나도 마치 그 자리에 같이 앉아 그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겹겹의 기억 속에서, 바다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는 나의 아픔도 꺼내 주었다.
낯선 곳, 낯선 이라서 가능했다.
낯설어야 무장 해제되는 여인들의 마음, 안쓰럽다.


점점 나는 그녀와 함께 제주 유배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국어 교과서에 추사 김정희와 소치 허련의 이야기가 나온다. 대정읍에 추사적거지와 추사관이 있다고 한다. 8년이 넘는 유배 기간 동안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를 그렸다고 한다. 모든 지위와 권력을 잃은 추사를 잊지 않고 귀한 책을 선물해 준 제자 이상적과의 우정이 마음을 울린다. 저자는 고결한 선비 정신이 부러워 왕비보다 선비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선비가 되고 싶진 않다. 허례허식에 빠지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선비도 많았다.


제주에 오기 전부터 그녀는 택시를 타지 않고 버스를 타거나 걷기로 작정했다. 이번 여행은 탄소 발자국을 가능한 적게 남기고 남의 살을 먹지 않는 여행이 되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밥, 특히 야채 김밥은 거의 매일 그녀의 주식이 되었다. 막걸리와 김밥, 분홍 띠 포장이 예쁜 제주 막걸리와 야채 김밥은 때로는 바다를 배경으로, 때로는 산을 배경으로 자리한다.

김밥에 막걸리를 먹으며 걷고 또 걷는 제주,
비가 와도 아름답고 맑아도 아름답다.
올레길을 걷고 또 걸으며 생각한다.
“나는 혼자 있을 때 가장 용감하고 자유롭다!”고.

알뜰하게 다녀온 여행, 이렇게 소박하게 제주를 걸으며 혼자이고 싶은 사람들에게, 혹 그녀들에게 매우 훌륭한 제주 여행 교과서가 될 책이다!

유배가 막바지에 이르자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저자가 ‘유배기’라고 했는지. 이제는 조금이나마 마음이 홀가분해졌기를 바란다. 그렇다, 때로는 그냥 묵묵히 보내야 할 때도 있다.

나도 저자처럼 오십에 훌훌 다 떼어놓고 떠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떠날 수는 있겠지만, 매일 김밥에 막걸리만 먹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떠랴! 나에게도 유배를 떠나지 못할 까닭이 없지 아니한가! 그것으로 족하다!


해당 도서는 푸른향기출판사 서포터즈 6기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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