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그리면 좋을까? 국민서관 그림동화 308
다니엘 뒤파예 지음, 카티아 클레인 그림, 정화진 옮김 / 국민서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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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나는 새하얀 스케치북을 받으면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이곤 했다. 마음 가는 대로 그리기보다 책이나 친구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이 더 익숙했고, ‘자유롭게 그려 보라’는 말은 나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무엇을 그리면 좋을까?』의 주인공 벤포드도 새하얀 종이 앞에서 같은 고민을 한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 망설이던 벤포드는 조금씩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해 간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잘 그리는 일이 아니라, 나만의 시선과 생각을 믿고 시작하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아이들이 스스로 시작하고,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용기를 건네는 책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 새하얀 종이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다는 것은 아직 어떤 가능성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떤 색이든 담을 수 있고, 어떤 생각이든 펼칠 수 있으며, 나만의 방식으로 채워 갈 수 있는 공간이다. ‘텅 비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아이들과 교육을 하며 나는 늘 고민한다. 무엇을 알려주고, 무엇을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는가? 박물관에서는 역사적 사실과 유물에 담긴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와 동시에 그 사실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질문을 만들고,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 또한 교육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독서 활동에서도 책의 내용을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했는지를 확인하기보다, 책을 읽으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어떤 마음이 남았는지를 함께 나누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 책을 읽으며 ‘교육자는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고, 무엇을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아이들이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건네는 설명과 예시가 때로는 하나의 답처럼 받아들여져 상상력과 해석의 폭을 좁히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새하얀 종이는 더 이상 두려움의 공간이 아니라 가능성의 공간이다. 벤포드가 그랬듯, 무엇이든 시작해 볼 용기를 내는 순간 하얀 종이는 나만의 색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이 책이 어린이들에게는 자신만의 답을 찾아갈 용기를,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 주는 마음을 전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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