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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비극의 땅, 잊혀진 영토
심상용 엮음 / 아우누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간도는 교과서에서 우리나라 근대사와 일제강점기에 자주 등장하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외에 간도에 대한 자료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교과서에는 간도라는 단어만 등장할 뿐 간도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어느 지역을 두고 말하는지 정확히 나타나 있지 않다.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비단 간도 뿐만 아니다. 불과 몇 십년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다른 입장들이 분분하여 어느 것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일정강점기에 간도에서 태어나 당시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생존해 있고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긴 것은 간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대단히 중요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간도는 우리나라 영토에 있어서 중요한 지역이다. 조선과 청, 양국 간에는 국경을 놓고 오랜 기간 갈등을 빚었는데 숙종 때 양국은 백두산 일대의 경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이 지방의 경계를 공동 심사하기로 했다. 국력이 강했던 청은 일방적으로 백두산 정점에서 동남으로 1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정계비를 세웠다. 그 정계비에는 압록강과 토문강을 조선과 청의 국경으로 하자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관료의 착취와 흉년이 더해져 살길을 찾아 접경지역으로 이주하는 농민이 많아졌다. 농민들은 그 지역을 간도라 칭했다.
책에 나와 있는 사진으로는 간도의 위치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 지리 지식이 짧아서 저자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날의 지도로 간도의 위치를 표시해주지 않은 저자의 정성이 조금 아쉬웠다.
간도 지역은 수백년 간 당연히 우리땅이라 여겨왔고 우리 농민들이 이주하여 수십만이 살았던 곳인데 청국은 양국의 경계는 원래 두만강이고 백두산정계비의 내용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국경선과 부합되지 않는다며 간도를 자기네 영토로 주장하였다. 약한 국력 때문에 청국의 어처구니 없는 주장에 제대로 반박도 못한 채 청일조약으로 간도는 청국으로 귀속되게 되었다.
탐관오리의 횡포와 대흉년으로 마지못해 선조들이 이주한 간도는 책제목처럼 비극의 땅이었다. 먹기 살 길이 없어 가진 것을 몽땅 털어 이주한 곳에서는 또 다른 차별과 억압이 기다리고 있었다. 약소국의 백성의 설움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정착 이주 과정, 중국관헌의 행패, 마적떼의 피해, 일본군의 만행을 읽으며 중국과 일본에 대한 분노가 일었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우리나라를 이토록 약하게 만든 조선의 관료들의 무능과 부패였다. 더구나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의 안위를 위해 나라를 그 지경까지 몰락하게 만든 이들의 자손이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의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허탈하다.
중국은 간도 지역을 두고 한국과 더 이상의 논쟁을 피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 사는 중국인들을 대거 간도로 이주시켰다. 게다가 간도에 우리 민족이 거주했다는 사실을 남기지 않기 위해 우리네 거주 양식을 모두 철거하고 풍습마저도 말살시켰다. 저자가 근래에 방문한 간도지역은 예전의 간도지역이 아니라고 한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일본과 중국에 비해 국력이 약하다. 그래서 그런지 외교적으로 분쟁이 있을 경우에는 너무나 소극적이고 저자세로 임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가 전에 비해 경제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전반적으로 강대국 이해에 따라 끌려다니고 있다. 비극을 비극으로 알지 못하고 과거를 지난 일로만 잊고 묻어버린다면 우리는 이런 슬픈 현실을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