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2 - 박경리 대하소설, 3부 4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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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2권을 읽으며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이 소설은 줄거리로 요약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흔히 『토지』를 “한국 근현대사 대하소설”이라고 부르지만,
12권에 이르러서는 역사가 배경으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사람의 선택과 감정의 결이 차지한다.

선과 악, 옳고 그름, 충절과 배신 같은 이분법은
이 소설 안에서 자주 무너진다.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비겁해지고,
누군가는 신념 때문에 잔인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그 누구도 쉽게 단죄하지 않는다.

“검정과 흰빛으로 구별 지을 수 없는 것이 인간사”라는 문장이
12권을 관통하는 정서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늘 기기묘묘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그 기묘함 속에서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이 권에서 더욱 선명하게 확인하게 된다.

『토지』 12권은 이야기의 중반부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가장 깊이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읽을수록 서사가 아니라 인간을 기억하게 되는 소설.
그래서 이 작품은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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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답답할 땐 명리학
화탁지 지음 / 다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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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답답할 땐 명리학』은 인간관계를 운명처럼 단정하지 않고, “감정이 먼저 반응하는 이유”를 명리라는 언어로 설명해주는 책이다.
우리는 종종 “왜 하필 그 사람이었을까?”, “왜 그때였을까?” 같은 질문을 한다. 이 책은 그 질문을 단순 감상이 아니라 ‘나라는 시스템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끌어올린다.

특히 “감정은 상황보다 앞서고, 논리보다 빠르다. 감정은 기억을 호출하는 신호일 뿐이다.”라는 문장은 가장 깊게 남았다. 감정을 문제로 삼지 않고, 오히려 ‘이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탐구하게 만든다.

명리학을 점술이 아닌 정서적 안정과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도구로 제시하는 점이 인상 깊다. 관계 때문에 지치고, 반복되는 패턴을 끊고 싶고, 나 자신을 더 알고 싶은 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관계를 ‘맞다/틀리다’로 재단하기보다,
“나는 왜 이렇게 느끼는지”,
“이 시기는 어떤 의미였는지”,
그 구조를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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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라고 했지만 왜라고 했다 - 논술과 토론에 강해지는 바칼로레아 철학 토론서
배진시 지음 / 탐구당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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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라고 했지만 왜라고 했다』 — 배진시 지음

나는 이 책을 ‘암기와 답 맞추기’에 익숙했던 내 뇌를 한 번 흔들어 보기 위해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사유의 시작’이 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철학 입문서가 아니다. ‘모든 진리는 최종적인가?’, ‘기술은 우리를 자유롭게 할까?’, ‘예술은 규칙 없이 가능한가?’ 같은 질문들을 통해 우리가 세상과 자신, 타인과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근본부터 묻게 만든다.


목차만 봐도 — 진리와 인식, 자유, 노동과 기술, 예술, 도덕과 사회, 정치, 인간과 자아 —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이 철학적으로 소환된다.


저자는 일상에서 느꼈지만 그냥 지나쳤던 질문들을, 고리 하나 빠진 시계처럼 다시 맞춰준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시험 점수로 환원되지 않는 ‘나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읽는 동안 느꼈던 두려움과 불확실함 — “맞는 답이 없는데, 이렇게 말해도 될까?” — 는, 책을 덮을 즈음엔 졸업한 듯한 묘한 안도감과 나만의 언어로 세상을 말하고 싶은 욕구로 바뀌었다.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면 — 정답보다 질문을, 결과보다 사유를 그리고 싶었던 사람.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과 나 자신을 마주하고 싶은 사람.
돌아오는 세상에 대해 다시 묻고 싶은 사람.


이 책은 단순한 교재가 아닌, “생각하는 삶을 위한 첫걸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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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다는 말 - 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익숙한 세계
이수지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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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다”는 말처럼 일상적으로 쓰이면서도, 정작 그 의미를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는 단어가 또 있을까. 우리는 누군가의 행동, 성별, 역할, 그리고 사회적 갈등까지도 너무 쉽게 ‘자연’을 기준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이수지 박사의 『자연스럽다는 말』은 이 익숙한 언어가 얼마나 많은 편견과 권력을 숨기고 있는지를 치밀하게 파헤친다.


책은 자연을 둘러싼 우리의 믿음이 실제 자연의 복잡성과 무관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여자라서 그렇다,” “남자라서 그렇다,” “본능이라 어쩔 수 없다,”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않다”와 같은 문장들이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규범의 언어라는 점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저자는 자연을 사실의 영역으로, 윤리를 당연한 영역으로 묶어버리는 사고를 “자연주의 오류”라 지칭하며, 그 오류가 어떻게 성 역할, 모성 신화, 인구 담론, 저출산 문제, 사회적 갈등까지 다양한 분야에 스며들어 왔는지 추적한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모성 본능’에 대한 재해석이다. 인간이 높은 번식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친모의 본능이 아니라 여러 구성원이 함께 아이를 돌보는 협동 육아 구조 덕분이라는 진화 인류학적 통찰이다. 이 지점에서 “낳아 보지 않으면 모른다”라는 사회적 통념이 얼마나 비과학적인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성별과 본성을 자연에 끼워 넣어 설명하는 방식 또한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일 뿐, 자연은 고정된 역할을 명령하지 않는다는 점도 인상 깊다.


마지막 장에서 다윈의 사례를 소환하는 방식은 이 책의 핵심을 정교하게 마무리한다. 자연을 관찰한 위대한 과학자조차 자신의 시대적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은, 자연이 ‘정답’을 주지 않는다는 저자의 주장을 강한 설득력으로 끌어올린다. 자연은 침묵하고, 말하는 것은 해석하는 인간이라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남는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자연을 새롭게 배우는 책이 아니라, 자연을 근거로 삼던 우리의 사고를 다시 배우게 하는 책이다. 읽는 동안 불편해지는 순간이 많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사고의 출발점이 된다. 자연스러움이라는 단어에 기댄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제공하는 질문들 앞에서 한 번쯤 멈춰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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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인두투스 : 입는 인간 - 고대 가죽옷부터 조선의 갓까지, 트렌드로 읽는 인문학 이야기
이다소미 지음 / 해뜰서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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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인간을 ‘보여주는 언어’다 — 호모 인두투스가 들려주는 인류의 이야기”


'호모 인두투스: 입는 인간'은 인류가 왜, 어떻게 옷을 입기 시작했는지 묻는 것에서 출발한다. 

저자 이다소미는 옷을 단순한 생활 도구가 아닌, 인류가 생존과 욕망, 권력과 정체성을 표현해 온 매개로 본다. 이 관점을 바탕으로, 유목민족의 바지 발명부터 조선의 갓에 이르기까지 26가지 주요 복식 변화를 따라가며,

  • 옷이 어떻게 생존을 위한 보호막이었고,

  • 어떻게 사회적 계급과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으며,

  • 어떻게 문화적 정체성과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패션의 언어’가 되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은 패션 전문가 출신 저자의 시선으로 복식사를 풀면서도, 복잡한 이론이나 학문적 용어에 매몰되지 않고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썼다. 그림 크로키와 함께 읽으면, 과거의 사람들이 어떤 옷을 왜 입었는지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 인류의 문화와 역사를 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에게도 이 책은 훌륭한 입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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