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다 읽고 나서 제일 묘하게 다가온 건 8편의 단편에 녹아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의 존재였다.


솔직히 산책을 하거나 버스나 기차,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 중일 때나 다른 도시로 출장을 가거나 외국의 친구 집에 가거나 낯선 곳의 호텔에 묵거나 다른 도시에서 다른 사람의 집에 머물거나 기타 등등의 이런 저런 상황에서 나는 '사람들'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생각은 늘 나로 가득 차 있고 나는 항상 나만 생각한다. 가끔 애인과 가족, 친구들을 생각해도 그때 내 머릿속의 그들은 나의 부속물이거나 나에게 딸린(?) 존재라 그들을 생각하는 건 결국 조금 다른 방면에서 나를 생각하는 것에 가깝다.


그런데 《우리의 사람들》의 인물들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사람들'을 생각하는 인물이라는 것 자체가 내게는 독특하게 다가왔는데 이 인물들이 생각하는 '사람들' 자체가 또 신기하다. '나'에게만 갇힌 것도 아니고 흔히들 심심할 때 시간 죽이기로 하는 극적이고 화려한 망상도 아니다.


친구들이 숲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숲에서 차를 운전하고 대화를 나누고 누군가는 졸고 초콜릿과 빵 우유를 먹고 붉은 털의 짐승을 보고 사진을 찍는 친구들을 상상하는 식이다.


'내가 태어날 때쯤 죽은 1950~60년대 태생의 미인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가는 80년대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동면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거나 해변을 달리는 사람, 예전에 알았던 사람, 책을 통해 알게 된 사람,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 곁에 없는 사람, 죽은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끊임없이 생각하며 끊임없이 머릿속의 그들을 움직인다.


하지만 머릿속의 사람들은 영영 그곳에서 돌아오지 않고 걷고 또 걷고 있었다. 여러 개의 같은 장면들을 반복하면서 말이다. <우리의 사람들>


침대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다가 눈을 깜박이다가 나란히 누워 함께 동면하던 사람들을 그려보았다. 나와 손을 잡고 동면을 하던 사람들 메마른 입술을 하고 있던 사람들. 어느 날에는 지금의 나처럼 작은 방에 혼자 누워 있기도 했고 다람쥐와 다른 작은 동물들이 함께하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말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 말이 잘되지 않는 사람들 잠을 자면 오랜 시간 해야 할 말들이 자기들끼리 흩어져 스스로 산속에 가 묻히게 될 것이다. <건널목의 말>


고가도로와 그 밑을 지나는 택시와 지면과 차의 불빛과 닫힌 건물과 셔터를 내린 가게 안의 종업원과 그 사람의 이름도 생각했다. 어두운 건물 혼자 불을 밝힌 방에서 청소를 하고 또 하는 사람을 생각했다. 그 사람은 어디를 가려고 하고 있다. 어디를 어딘가를 어딘가만을 계속해서 가려고 계획하고 있다. 그 사람은 여기가 어디인지를 너무나 정확히 알아서 어딘가만을 계속해서 계획한다. <농구하는 사람>


보관실에 갇힌 사람은 죽지 않고 잘 살아가고 짝이 없는 사람은 벽에 대고 테니스를 치다 어느새 테니스장에서 가장 잘 치는 사람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쉬지 않습니다. 한복집에서 커피를 마시던 주인은 맞아 그래라고 생각하였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영원하지 않지만 때때로 놀랄 정도로 반복되는 일이야. 그리고 그 사람은 여전히 한복을 입고 있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


실제로 존재하건 실제 하지는 않건 어쩐지 약간 희박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계속 생각하는 사람이 나오는 소설집이다. 문장 자체도 대충 읽어도 되는 게 아니라 문장이 자아내는 리듬에 올라타야만 하는 식이라 그 리듬에 실려 희박한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여덟 편의 단편을 다 읽고 나자 살짝 다른 공기를 마시고 나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