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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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여름 이 책을 손에 집어 들었을 땐, '꽤 독특한 책이구나.‘라는 느낌 이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책장을 휘리릭 넘기며 어떤 책인가 대강 눈대중으로만 파악하고서, 곧바로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이 책에 대해서 새까맣게 잊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책과의 인연이 여기서 그칠 운명은 아니었나보다. 우연찮게도 이번 설 연휴 기간동안 읽을 만한 책을 찾아 헤매던 나의 시야에 포착된 것이다. 그리고 책의 첫 장을 펼쳐들자마자 순식간에 책을 빠져들고 말았다.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끝까지 읽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이틀이었다.

 작년엔 그저 흘려봤던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동안 나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폭증한 데 있을 것이다. 사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나는 사회학을 나의 전공으로 선택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점점 역사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하더니, 전공으로 삼고자 했던 사회학을 대체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돌이켜보건대 나의 학문적 관심이 이토록 급선회한 데에는 사실 훈이 형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국문학과 임에도 끈질기게 역사 서적을 탐독하고 역사적 문제의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대관절 역사가 뭐길래 저러나.’라는 의구심어린 호기심을 자아냈던 것이 사실이고, 또 형 덕분에 읽기 시작했던 소설이 역사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케 해줬던 것 역시 역사에 대한 나의 짝사랑을 더욱 커다랗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동안 통사 중심의 역사만이 역사학의 전부인 것으로 생각했던 터무니없는 오해를 떨쳐 버리고, 정확한 개념은 알지 못하지만 사회사․문화사․미시사 등 다양한 갈래의 길이 모두 역사로 수렴하고 있음을 알게 된 후 역사가 내게 던지는 유혹의 눈길은 더욱 더 강렬해져 좀처럼 뿌리치기가 어렵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역사학 거장들의 걸작들을 읽을 일에 들떠 미묘한 흥분 속에 빠져 있다. 학문적 오르가즘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이제 초입에 불과하지만.

 역사학에 대한 지식을 글로 옮기면 A4용지 한 장도 채우기 힘들 정도로 역사학에 있어선 초보 중의 초보인지라 나의 판단이 얼마나 정확한지 결코 자신할 순 없으나, 이 책은 근래에 유래하는 문화사 연구 흐름에 편승한 결과물인 듯하다. 그리고 저자 자신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본격적인 연구의 결과물이 아니라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하는 연구를 위한 아이디어, 단상 수준에서 연구되고 쓰인 글이라 읽기에도 여간 수월하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내용의 참신함은 그 얕음을 메우고도 남을 정도이다. 그 동안 대부분의 역사 언어가 그러했듯이 우리 국사에 대한 서사 역시 정치․경제 중심의 거시적 사관에 의거해 쓰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것을 읽고 그것만이 국사의 전부인 것으로 파악했던 나 자신 역시 과거 선조들이 살았던 시대의 정치․경제에 대해서만 파악하고서 마치 우리나라의 과거사에 대해 충분한 소양을 획득한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거시적 서사가 외면하고 역사의 무덤에 매장해버렸던 분야와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때로는 이런 내용도 학문적인 성과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따라서 이 책은 급진적이다. 주변인에 불과했던 이들의 역사의 전면으로 불러냈다는 점에서. 또한 고요하고 평면적인 것으로만 알려졌던 우리 한반도의 과거 세계가 사실은 -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듯이 - 매우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세계였음을 폭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매우 진보적이다.

 수년이 지난 후에 오늘을 뒤돌아보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 당장은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행운이다. 역사의 또 다른 맛을 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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