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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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새로운 천국'을 세워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세우기 위한 힘을 그 자신의 지옥 속에서 발견했다. (니체)

 

 철학자와 하녀라니! 제목을 보고 읽어볼 것을 결심했고, 저자를 보고 곧바로 실천했다. 이 책은 '수유너머'로 유명한 고병권 선생님이 쓴 마이너리티를 위한 철학책이다. 책은 안양 교도소에서 철학을 강의하던 첫날, 한 재소자가 던진 질문에서 시작한다. "왜 우리가 지금 여기서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까?" 그의 질문은 먹고 살기에만 급급하고 이미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과연 철학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저자는 이런 에피소드를 소개한 뒤 "철학은 지옥에서 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첫 장을 연다.

 그렇다면 철학이란 학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믿음으로 그의 글을 하나씩 따라 읽어갔다. "철학은 지옥에서 도망치지 않고 또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조건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려는 자의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지옥에서 함께 있어줄 철학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는 근대 사회를 목표로 삼게 됨으로써 근대 이전의 모든 사회를 '근대사회의 미숙아'로 바라보는 관점이나 저항을 위대하게 여기는 가치 등 색다른 시각의 이야기가 많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다. 서점가를 한바탕 뒤흔들었던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에 나오는 '정의'의 개념이 실은 무서운 것일 수도 있음을 지적하는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철학이란 이렇게 다르게 보는 힘을 의미하는 거라는 확신이 선다. 자유론에 기반한 공동체주의자의 대표주자인 샌델의 '정의' 개념은 내 가족, 내 동포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시민'은 '양성'해야 하는 것이며 국가가 시민의 삶에 더 관여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주장에서 싹튼 '정의'의 개념은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말한다. "네 이웃을 사랑하지 마라" 정의는 국경 안에 없으며, 그것은 국경 바깥, 야만인들에게서 온다. 끝없이 발생하는 국가 간 분쟁 또는 국가 내에서의 분쟁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의의 개념은 어쩌면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는 책의 말미에 좋은 말은 좋은 말일 뿐, 씹어서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의 글을 통해 다르게 보는 힘을 얻었다면 그것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아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무용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녀인 우리들에게, 지옥 같다고 느껴지는 지금 이 순간에 '철학'이 필요함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그 누구보다 지금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많은 '하녀'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지옥'에서 연대하고 '새로운 천국'을 세워나갈 힘을 함께 발견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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