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놓친 것이 분명했다. 시간은 흐르지 않거나 반대 방향으로만 곤두박질쳤다. 나는 과거 속으로 기어들어가 무작정 기다렸다. 그것은 끝이 없거나 끝없이 되풀이되는 기다림이었다. 그때 나는 그것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차서 기다렸던 것이 틀림없다. 내가 놓쳤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므로.
흐르면서도 흐르지 않는 이상야릇한 시간 속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놓친 것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뿐이다.”라고 표지에서부터 외치고 있는 한 권의 책. 나는 여전히 사랑이 무엇인지, 심지어 그것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지만 ‘사랑’이라고 ‘믿는’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에 이끌리지 않을 자신은 없다.
모니카 마론의『슬픈 짐승』에는 갇혀버린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의 나이는 백 살쯤 되었다고 짐작할 뿐 확실치는 않다. 그녀의 시간은 비틀려있다. 은행에서 돈을 찾거나 생필품을 사기 위한 잠깐의 외출 외에 그녀가 하는 일은 모두 그녀 내부에서만 일어난다. 그녀는 과거에 갇힌 셈이지만 동시에 그녀 자신에게 갇혔다. 그녀가 하는 일은 프란츠를 생각하는 것이 전부다. 프란츠라는 이름 역시 확실치 않다. 그녀가 그를 생각할 때, 그녀가 알고 지내던 다른 사람의 이미지가 그녀의 상상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을 그에게 붙였을 뿐이다. 브라키오사우르스의 뼈대를 보고 그 동물과 1억 5천만 년 전의 시간을 상상하는 것처럼 그녀는 하루 종일 이야기를 꾸며내거나 지어내면서 과거를 여행하고 그를 다시 복원해낸다. 그 과정은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지거나 기이하게 비쳐질 수 있지만, 잠시라도 그 과정을 경험해 본 사람에게는 더없이 사실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 책의 문장은 경계에 서 있는 듯 불안하고 위태롭다. 사실과 망상의 경계에서, 실제 일어난 일과 상상만 했던 일의 사이에서 문장이 태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나이, 연인의 이름, 그녀의 남편과 딸이 떠나간 상황, 그녀가 프란츠의 아내에게 했던 행동 등 거의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모든 불확실한 문장들 속에서 사실로 떠올라 명징해진 하나의 문장은 이것이다.
나는 사랑이 유일한 것이라고 믿지만, 유일한 것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프란츠에게 두 번째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녀가 프란츠의 아내와 밤을 나눠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는 열두 시 반이 되면 정확히 일어나서 울부짖고 미친 듯 날뛰는 그녀를 뒤로한 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프란츠와 그의 아내가 함께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여행에서 있을 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그의 전화를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그들이 함께 지내기로 하고 프란츠의 책상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고민하며 가구를 이리저리 옮겨본 그 다음날, 프란츠는 떠났다. “내일 올게”라고 말하며 그가 희미한 미소를 지을 때, 그녀는 이미 그가 용서를 구하고 있음을, 돌아오지 않을 것을, 가구를 원래 상태로 되돌려놓아야 함을 알게 된다. 어쩌면 전날 밤, 프란츠가 반항적이면서 경견한 태도로 “아니면 내가 삶을 위해 잊었어야 하리.”라는 노래를 부를 때 알아차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금발의 아내를 버리고, 사랑스런 새들이 노래하는 공원 옆의 집을 버리고 그녀에게 오지 않을 거란 사실을.
이 소설은 ‘나와 프란츠’의 사랑이 주축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숨겨져 있다. 명예욕과 불멸을 위해 지빌레와의 사랑을 포기하는 에밀레, 생활을 위한 부부로서의 카린과 클라우스, 알리와 헤어진 후에 사랑은 진부하거나 비극적이거나 둘 중 하나뿐이라며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아테, 구원자를 섬기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기울어진 상태로 시작된 라이너와 앙케, 전쟁에서 살아 돌아와 루치에 빙클러와의 사랑을 이루고자 한 프란츠의 아버지까지. 그들이 각각 그려내는 조금씩 비틀리고 어긋난 ‘사랑’의 행위를 통해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것이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소설은 그들이 헤어지던 날, 프란츠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이 죽음 역시 모호하게 처리되고 있지만 우리는 그녀 역시 곧 죽음을 맞을 것이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녀를 깨어있도록 붙잡아둘 이미지도, 프란츠라는 실재하는 인물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녀의 기다림은 끝났다. 이제 그녀는 식육식물들 사이에서 잔잔하게 죽어갈 것이다.
소용돌이치는 욕망과 격렬하게 싸우다가 누워 있는 한 마리의 슬픈 짐승, 그녀는 더 이상 울부짖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는 사랑에 무능력하지 않았고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발버둥 쳤으니까. 확실히, 불가능을 향해 전력질주 하는 사람은 가능을 향해 전력질주 하는 사람보다 매력적이다.
지금도 여전히 내가 과거로만 치닫는 시간과 선명하고 화려한 고통을 즐기고 있다면 그건 순전히 이 책 덕분이다. 나는 여전히 당신을 기다리겠다.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가득차서,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