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중세 후기의 거인이자 르네상스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성프란체스코와 황제 프리드리히는 로마 교황이 생각하는 만큼 이질적인존재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 P47
역사는 그때그때 재해석되는 기쁨과 슬픔을 당당하게 받아 들여야한다
이위경(李卿)은 "인목대비는 저주 사건을 일으키고 역모에 연결되었으니 어머니로서의 도리가 끊어졌다. 전하는 비록 대비와 모자 관계이지만 인목대비에게 현저한 죄악이 있으니 종사(宗社)를 생각할 때 신하의 입장에서는 국모로서 대우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 P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