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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위한 애도 수업
김현수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11월
평점 :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우리는 마치 죽음은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인 것처럼 하루를 살고 있다. 물론,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둔다면 현재의 삶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는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며 살아야겠지만, 우리는 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지난 해 친한 동료 선생님을 잃었다. 오랜 암투병으로 힘들게 삶을 이어 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몇 달째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병원에서 맞는 수액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죽음'을 예감했지만, 막상 그 선생님의 부고를 들었을 때 어쩔 줄 몰랐다.
힘들게 친한 동료 몇이 연락을 해서 장례식장에 갔다. 영정사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리고 그 선생님의 어린 아이를 보니 너무 슬펐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통곡은 나오지 않았다. 내 감정이지만, 무슨 감정인지 나 조차 잘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저 부자연스러웠고, 불편했다.
이 책을 읽으니 장례식의 의미를 알겠다. 단순히, 죽은 사람을 마지막으로 마주하는 장소라 생각했던 장례식장이, 고인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여 수용하는 공간이고, 생전에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인을 추모하며, 슬픔을 나누어 치유하는 기회의 공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 역시 장례식장에서 유족들로부터 고인이 돌아가시기 전에 모습이 어떠했는지 들을 수 있었으며,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나는 그 선생님을 매일 생각했다.
그 선생님과는 학번, 초임지, 발령과목이 모두 같았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 키웠고, 비슷한 시기에 암진단을 받았다. 그 선생님은 오랜 투병 끝에 하늘 나라로 갔지만, 나는 이렇게 수술을 하고, 내 몸의 일부를 떼어 낸 채 살면서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 선생님의 죽음 이후로 그 선생님을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지만, 우리는 누구나 죽을 수 있고,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며 살게 되었다.
거의 매일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며 살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도전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 두어야 겠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면, 굳이 하지 말자' 이런 몇 개의 다짐을 하게 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 그 선생님을 생각하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다. 시나브로 나도 모르게. 이 책을 읽다 보니 그 선생님이 다시 생각났는데 '아, 내가 그 아픔과 슬픔을 조금씩 잊어 가고 있구나. 애도의 기간이 끝났구나' 싶었다.
책을 읽다 보니 떠오른 또 한 명. 교무실에서 일을 하다 보면, 복도에서 늘 시끄럽게 큰소리를 내고 다니는 학생 A다. 여름방학이 지난 후에도 A는 여전히 큰소리로 웃고 떠들고 시끄럽게 했는데 옆자리에 앉은 A의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 방학 동안 A학생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거다. 장례식을 가야 되는데 언제 가면 좋을지, 부조금은 얼마나 하며,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좋은지 나에게 물어왔다.
평소와 다름 없이 너무 밝은 모습의 A라,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의아했다. 아버지를 잃어도 저렇게 평소와 같을 수 있나. 물론 슬픔의 표현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너무 의아했다. 내가 머리 속으로 알고 있는 것과 현실 상황에서 받아들이는 것에는 간극이 있구나 깨달았다.
하지만, 이 책 35페이지에도 보면 '애도와 슬픔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소리 내어 울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울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가 그 선생님의 장례식장에 갔을 때 내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것도 떠올랐다. 단순히 슬픔, 안타까움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좀 더 복합적인 감정이었고, 그 감정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아직도 적절한 말을 찾지 못했다.
지난 여름 우리 선생님들은 동료를 잃고, 거리로 나갔다. 학부모님의 악성 민원을 더이상 교사 개인이 감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올바른 교육적 목적을 갖고 지도를 해도 아동 학대로 고소 당할 수 있는 현실이 너무 절망스럽다고 그리고 교사의 꿈을 갖고 교단에 선 어린 선생님의 교실에서의 죽음이 너무나 비통하다고 전국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모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동료를 잃은 슬픔을 나누었고 어쩌다 이런 처지에 까지 내몰렸는지 분노를 표출했다.
자신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곳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린 선생님을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했다. 그리고 연이어 터져 나오는 기사들에서 교사의 죽음을, 학생의 죽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죽음은 어디에도 있고, 언제든 있다. 어떤 이유로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죽음 이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정을 어떻게 치유할지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