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다니엘 파울 슈레버 지음, 김남시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정신증의 증상 중 하나인 '망상'의 정신사회적 원인에 대한 고찰과정에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주는 텍스트의 하나로 유명하다. 나는 주로 프로이트가 분석한 내용으로-프로이트는 슈레버의 망상을 동성애적 소망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배웠는데, 이 책을 읽고 찾아보니 라캉, 멜라니 클라인은 물론 슬라보에 지젝까지 '정신분석'에 발 담근 사람들은  대부분 이 책에 대해 한 마디씩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선 원문이 최초로 번역된 모양이다. 타인의 해석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텍스르를 읽을 기회를 갖게 되어 좋았다. 나 자신이 나름대로 생각할 여지가 있으니까.

 이 책의 저자인 다니엘 파울 슈레버는 독일의 전형적인 엘리트 출신으로 드레스덴 고등법원장을 지내고 5개국어에 능통하며 다양한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사람이다. 그는 총 3번의 정신병원 입원을 경험했는데 이 책은 그 중 2번의 입원치료 과정을 기록한 회상록이다. 

 증상에 대한 정신사회적 고찰을 할 때 먼저 파악하는 것은 그의 성장과정, 무엇보다 부모와의 관계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슈레버의 아버지가 지나치게 엄격하고 강력한 아버지였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지나치게 강력한 아버지는 슈레버로 하여금 오이디푸스 컴프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여성화, 신적 존재에 대한 망상 등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슈레버 어머니에 대한 기록은 자세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슈레버의 형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다. 같은 정신질환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정신질환의 가족력은 병적인 가족관계나 성장과정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정신질환의 생물학적 배경을 나타내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정신의학의 흐름은 초창기의 생물학적 논의에서 프로이트를 기점으로 한 분석이론, 그리고 최근 정신약물의 발달과 뇌과학의 발전에 힘입은 생물학적 조류로 이어진다. 물론 원론적으로는 생물학과 정신사회적 배경을 모두 고려한 통합적 접근이 답이다. 슈레버는 생물학적 논의가 활발한 시기에 치료를 받았고, 프로이트를 위시한 여러 학자들의 분석이론으로 유명해졌다.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이 사람의 회상록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뭘까. 그저 한 정신증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흥미로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사실 흔한 경험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게 읽기엔 좀 재미가 없다. 정신증 환자 특유의 중언부언에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의 나열이라 집중이 잘 안된다.
또 하나는, '망상'이라는 것이 그저 정신증의 증상의 하나로 간주될 수도 있지만 '망상의 내용'은 그 사람의 성장 배경과 시대적 상황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그 시대와 그 시대 부르주아 계층에 대한 간접적 이해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 복잡한 망상 속에서 그것들을 꿰둟을 재간은 없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논문과 글들이 있어 참고해서 읽어보니 그럴 듯은 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그가 기술한 수많은 망상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그가 금치산판정을 철회하는 과정이었다.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결정하고 금치산판정을 내리고.. 말 그대로 한 사람의 자유와 존엄을 제한하는 조치가 얼마나 어렵고 신중한 과정을 거쳐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느끼고 생각했다. 환자의 판단 능력과 행위능력을 평가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을 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가서 사는 것을 보지도 않고 그 사람의 일상생활 능력이나 직업 능력을 판단할 수 있을까? 어려운 상황들이 참 많다. 그 때마다 전문가들과 협의하고 고민하는 것 외에는 지금 딱히 떠오르는 방법은 없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보면서 나 나름대로 생각한 바. 슈레버는 단순한 정신분열이라기 보다는 기분증상을 동반한 것 같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형으로 보아 기분 장애의 가족력이 의심되고 첫 번째 발병이 선거 낙방후임을 고려했을 때, 기분이 들떴을 때 선거에 출마하고 떨어지자 우울기가 온 것은 아닐까. 첫 번째 입원 중 극심한 기분 변화에 대한 기록이 있었고 그 때 망상은 심하지 않았다. 그 후 몇 년 동안은 문제가 될만한 사건은 없었으나 유추하건데 자잘한 기분 변화가 중간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 후 직업적으로 큰 부담에 직면한 상태에서 불안과 우울, 수면 장애가 시작되고 자살충동이 있었다. 증상 조절이 안되어 입원하고. 그 후 본격적으로 환청과 망상이 시작된다. 가족력, 좋은 병전 기능, 기분 변화의 증거들을 고려했을 때 기본적으로 조울성향의 기분증상에서 시작해서 정신증적 증상으로 간게 아닌가 싶다. 물론 망상이 너무 기괴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 부분에서 혹시 그 때 사용한 약물들로 인한 증상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브롬이나 아편은 섬망을 일으킬 수도 있다. 뭐 이건 사족이고.

 

하여간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