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리 편지 창비아동문고 229
배유안 지음, 홍선주 그림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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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참말로 힘든 고비가 한 번은 있다고 했어. 그것만 잘 견디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어머니가 그러셨다. 그 힘든 고비가 지금인가 봐. 장운아, 우리 잘 견디자.”(42~43쪽)

재작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내 맘에 들어온 한 줄이다. 그 때는 남편이 명퇴를 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때였다. 그래서였을까? 수 많은 구절 중 가슴에 남는 한 줄, 그리고 내게 작은 위로가 되는 한 구절이었다.

그러나 사실 돌아보면 내게 ‘참말로 힘든 고비’는 그 때가 아니었다. IMF로 나라 경제가 휘청거렸던 1998년, 나 역시 학교를 졸업하고 백수로, 취업을 위한 시험 준비로, 오래 사귄 연인과의 삐걱거림으로 몸도, 마음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때가 생각났다. 돌아 보니 정말로 ‘잘 견디면 좋은 일’이 생겼고, 또 다른 고비를 넘길 힘도 생겨났다.

2년 만에 다시 읽으니 또 다른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누가 그랬는지 찾으려 하지 마라. 너를 해코지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네 책임이다. 미움을 못 풀어 준 건 너일 테니까.”(182쪽)

며칠 후면 결혼 14주년이다. 누군가의 며느리로 벌써 14년을 살았다. 강산이 한 번 반은 변하고도 남을 시간 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제법 들었어야 할 텐데, 결혼 초기와 비교해서 시어머니와 내 사이는 별로 변한 것이 없는 듯하다. 서로 미워하지도 해코지는 더더욱 하지 않지만 살갑지도 않은 사이. 결국 내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 않고, 한 발짝 더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일 테다.

아들이 있으니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될 게다. 아직은 먼 미래라서 상상이 잘 되지 않지만 내 며느리는 어떤 사람이었으면 싶은지, 나와 내 며느리의 관계가 어떠했으면 싶은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겠다. 내가 며느리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그 모습을 지금의 내 시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다.

살면서 숱한 인간 관계를 맺지만 더러는 이유 없이 싫고, 미워지는 사람이 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였을 게다. 그런데 사람은 이기적 동물이라서 관계가 틀어졌을 때 상대 탓을 하기가 쉽다. 읽었던 책을 또 다시 집어 들며 새로운 감동과 새로운 깨달음을 얻듯, 누군가를 탓하기에 앞서 끊임없이 나를 돌아 보고 반성해 보며 인간 관계의 고비를 넘겨야겠다. 그 고비만 넘기면 악연도 인연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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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9 1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니님, 안녕하세요?

저도 <초정리 편지>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아주 잘 쓴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나이니님께서 솔직하고 꼼꼼하게 작성하신 글을 읽으며

<초정리 편지.만큼이나 잔잔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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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책’ 또는 ‘독서’, ‘도서관’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거나, 표지에 책이나 서재, 도서관 그림이나 사진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집어 드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대개는 내 취향에 맞지만 가끔은 낚였다는 느낌을 받는 책도 있다. 작년 여름 도서관 서가에서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은은한 불빛이 비치는 조선 시대 어느 서가 앞에서 책 한 권을 들고 서 있는 아이의 모습 옆으로 ‘책과 노니는 집’이란 제목이 주는 끌림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얼른 그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첫 눈에 반한 그 아이는 끝까지 내 마음을 엇나가지 않았다.

좋은 책은 두고두고 읽어야 한다는데 읽고 싶은 책도 많고 읽은 척, 아는 척 하고 싶은 책도 많아서 좀처럼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지 못하는 나다. 특히 동화나 소설은 처음 읽을 때와는 달리 이미 결말을 알고 읽게 되므로 김빠진 맥주 같다고나 할까? 그래도 이 책만은 예외라고 해야겠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마음이 아리고, 눈물이 나고, 미소를 짓게 한다.

어린이 역사 동화책이 중년을 바라보는 어른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는 걸 보면 작가의 깊이가 남다른가 보다. 표지를 보니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란다. 가끔 이렇게 책에 붙은 타이틀이 상술의 하나가 아닐까 싶어 거북할 때가 있는데 그래도 문학상 대상 수상작은 그냥 뽑는 게 아닌가 보다. 초등 고학년 이상의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꼭 읽어주고 싶은 책이다.

조선후기 천주학을 필사했다는 이유로 모진 매를 맞고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필사쟁이가 되어가는 어린 ‘장이’의 이야기 속에 책을 사랑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평생 책 베끼는 일을 하며 책과 이야기 나누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다. 이렇게 호사스런 직업이 어디 있느냐? 앞으로도 장이 너와 작은 책방을 꾸려 이렇게 살고 싶다.”(77쪽)
“책을 읽는 재미도 좋지만, 모아 두고 아껴 두는 재미도 그만이다. 재미있다, 유익하다 주변에서 권해 주는 책을 한 권, 두 권 사 모아서 서가에 꽂아 놓으면 드나들 때마다 그 책들이 안부라도 건네는 양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지. 어느 책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는 것도 설레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 책이 궁금해 자꾸 마음이 그리 가는 것도 난 좋다. 다람쥐가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가을부터 준비하듯 나도 책을 차곡차곡 모아 놓으면 당장 다 읽을 수는 없어도 겨울 양식이라도 마련해 놓은 양 뿌듯하고 행복하다.”(78쪽)

책 속 등장인물의 마음이 어찌 이리도 내 맘과 닮았을까? 홍교리처럼 집 안에 근사한 서재를 갖는 게 꿈이었던 나는 요즘 서재에 대한, 책 모으기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이유는 집 앞 1분 거리에 근사한 어린이 도서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동네 마을 도서관이라 몇 분 안 계시는 사서 선생님들이 이용자들 얼굴을 다 기억해 주시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어떻게든 구해 주시려 노력하시는, 작지만 그 어떤 도서관보다 예쁘고 근사한, 내 집 거실보다 더 따뜻하고 편안한 도서관이 생겨 이제는 이사도 못 갈 것 같다.

남부럽지 않은 근사한 서재가 생긴 나는, 벌써 꿈을 이뤄 행복하다. 아버지와의 오랜 꿈이었던, 배오개 집에 ‘책과 노니는 집’이란 책방을 내게 된 장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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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양성평등 이야기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 시리즈
이해진.김영호 지음 / 파라주니어(=파라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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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보이지 않는 장벽, 유리천장의 실체를 느껴봤을 것이다. 해방 전후 세대였던 나의 부모님은 남아선호 사상과 함께 성역할 고정관념이 뿌리 박힌 분들이셨지만 내리 아들 둘에 막내로 딸을 얻으신 탓에 운 좋게도 나는 별다른 차별을 느끼지 못하고 자라왔다. 내가 처음으로 유리천장의 실체를 뼈저리게 실감한 건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면서부터였다.

당시 나의 직장은 회사 사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출산 휴가 3개월을 다녀오는 해와 승진 시기가 겹치면 암묵적인 승진 누락이 있었다. 나 역시 출산하던 해에 승진심사가 있었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 승진은 누락되었다. 병역을 마친 남성들은 입사 후 2년이면 승진하지만 여성들은 승진하려면 3년을 기다려야 하고, 출산으로 인해 또 1년의 누락까지, 어제의 신입사원 동기가 나보다 2년이나 먼저 승진 가도를 달리고, 햇병아리 시절 사수로서 가르쳤던 남성 후배가 나를 앞지르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좌절감과 패배감을 맛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직장에서만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맞벌이가 일반화되어 있고, 남성들도 양성평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인식은 있어서 가정에서의 역할 분담에도 적극적이지만 어디까지나 도와준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나의 경우엔 육아를 시작하면서 자녀 양육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있어서 남편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아쉬웠다. 분명 두 사람 모두의 아이이고, 둘 다 일을 하고 있는데, 아이의 예방 접종일을 챙긴다든가, 이유식의 시기를 가늠해 본다든가 등등의 결정권이 오직 나한테만 있는 듯이 행동하는 남편의 태도가 불만스러웠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보조자이며,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 적극 돕겠다는 뉘앙스는, 마치 내가 기업의 오너로서 월급 주며 일 시키는 직원에게 주인의식까지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는 15위인데, 정치, 교육, 고용, 보건 등 4개 분야에서 남녀 불평등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남녀격차지수’를 보면, 2010년 전 세계 134개국 중 104위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본문 104쪽에서 발췌)
진정한 양성 평등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는 일부터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이는 역시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읽기>교과서에 실린 『청소년을 위한 양성평등 이야기』의 어린이판인 이 책은 초등 고학년 어린이는 물론이고, 현재 딸을 둔 아버지와 아들을 둔 어머니 모두가 함께 읽어 딸을 둔 아버지는 현재의 양성평등을 위해, 아들을 둔 어머니는 미래의 주역이 될 남성들이 양성평등을 위해 앞장설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간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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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품은 영어 이야기 - 천부적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영어의 역사
필립 구든 지음, 서정아 옮김 / 허니와이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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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내게 열등감의 원천이다. 지방대를 나온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영문과 졸업이란 말은 절대 어디서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영어는 내게 마치지 못한 숙제 같은 존재요, 죽을 때까지라도 이루고 싶은 꿈의 하나다. 그런 내게 이 책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 영어 발달사 수업을 듣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실로 오랜만에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와 셰익스피어를 접한다. 워낙 공부와는 담 쌓고 산 탓에 대부분의 내용이 새롭게 다가온다. 만약 그 때 이 책을 접했더라면 영어 발달사 수업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다가왔을까?

인도-유럽어군에서 파생된 초기의 영어가 중세를 거쳐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이르러 활짝 꽃을 피우고, 근대에 이르러 미국의 독립과 함께 전 세계로 전파되는 영어의 역사를 듣다 보니 가장 먼저 부러움과 질투가 고개를 든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하다는 한글을 제치고 영어가 현재는 물론 미래에까지도 만국 공용어의 자리를 지켜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지금, 나는 물론이고 내 아이까지 영어에 허덕여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런데 자꾸만 의문이 든다. 로마인들이 ‘우리 바다’라고 부르던 지중해 세계에서는 천 년 넘게 로마 제국이 맹위를 떨치며 그들의 언어였던 라틴어 역시 현재 영어의 위상에 못지 않았는데 왜 제국의 멸망과 함께 사라져 버린 걸까? 물론 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와 같이 서유럽의 언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말이다.

서구 열강이 다스렸던 식민지들은 독립 이후에도 그들의 언어만은 남아 국가 공용어로 당당히 쓰이고 있는데, 일제 36년 간 민족 말살 정책에 따라 철저히 짓밟혔던 우리의 말과 글은 해방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이유는 뭘까? 우리의 한글이 그만큼 우수해서일까? 아니면 우리의 민족혼이 다른 나라보다 더 강해서일까? 우리가 영미의 지배를 받았다면 지금쯤 우리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영국이라는 섬 나라의 언어가 세계의 언어가 되기까지 영어의 역사를 읽다 보니 영어의 나라 영국이 궁금해진다. 현재의 영문학도들, 영어에 관심있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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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쟁이 엄마 쑥쑥문고 46
이태준 지음, 신가영 그림 / 우리교육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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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 년 전의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가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었다. 예스러운 말투와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표현들, 어려운 단어와 사투리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궁금해하면서.

『몰라쟁이 엄마』에는 총 12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린 수문장』, 『불쌍한 삼형제』, 『슬퍼하는 나무』처럼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다룬 이야기도 있고 『몰라쟁이 엄마』, 『엄마 마중』, 『꽃 장수』, 『물고기 이야기』처럼 지금의 아이들이 읽어도 절로 웃음이 피어나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지만 작가 이태준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쓸쓸한 밤길』과 『눈물의 입학』처럼 1920~30년대의 어려운 시대 상황을 보여주는 『슬픈 명일 추석』, 『외로운 아이』, 『불쌍한 소년 미술가』 등은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채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나 있었을 법한 이야기에 아이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걱정하다가 문득, 친부모의 학대에 신음하는 아이들, 굶주림이 일상이 된 북쪽의 아이들, 아직도 세계 곳곳 어딘가에서 전쟁으로 죽어가는 아이들까지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힘겹게 버티고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역사의 잔인한 수레바퀴가 우리 아이들만은 비켜가길 바라지만 세계인으로서, 인간으로서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손 내밀 줄 아는,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지켜나갈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책을 읽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6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9살에 어머니마저 잃은 작가가 남의 집살이하며 온갖 구박과 멸시에도 열심히 공부해서 당시 명문이었던 휘문고에 들어가고 나중엔 우리 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는 저자 약력이 눈에 띄었다. 그 모진 세월을 견디면서도 각박해지지 않고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세상의 모든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버리지 않고 작품에 녹여내 준 작가에게 더 없는 존경과 찬사를 보내고 싶다.

해방 후 고향이 있는 북쪽으로 돌아간 작가는 그 후 어떻게 살았을까? 불우한 시대에 태어나 불우한 삶을 살다간 작가가 『불쌍한 소년 미술가』에서 어린 미술가를 향해 던진 한 마디가 책을 덮은 지금도 메아리처럼 맴돈다.

‘저렇게 무서운 장사를 그린 그 약하디약한 어린 미술가가 지금은 어디서 울고 있을까! 문 밖에만 나가면 그를 당장 만날 것처럼 그리워서 잠이 오지 않습니다.
오~ 우리 불쌍한 어린 미술가여!’

행복하길,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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