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2 사이비 2
간호윤 지음 / 경진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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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가 많은 세상에서도 ‘우중산보’해보자

[리뷰] 『사이비2』(간호윤 저 | 경진출판 | 2019.04.30)


이 책 그리 간단한 책이 아니다.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까지, 국문학을 전공한 박사답게 우리나라 실학자부터 문학가까지 여러 문인들의 촌철살인을 담았다. 책의 부제는 ‘우리 사회의 양심을 묻다’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이비를 제외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라는 질문으로 세상을 들여다보았다고 저자는 밝혔다.


저자 간호윤 씨는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다. 손녀를 사랑하는 저자는 아무것도 물려줄 게 없다고 한다. 그저 세상을 버텨내는 게 다 일뿐. 저자 간호윤 박사는 자식에게 그랬듯이 손녀가 살아갈 세상이 그저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런 세상, 작은 글으로나마 남기고픈 게 저자의 마음이다.


간호윤 씨는 비를 좋아한다. 어느 날 ‘우중산보’라는 ‘프사(프로필 사진)’를 보게 된다. 그것도 저자의 프사이다. 비가 오는데 산책을 한다... 얼마나 운치 있는 일일까. 제자와 함께 선술집에서 소주 한 잔 한 그는 사는 게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걸 암암리 전했다. 그리고 제자의 ‘우중산보’에 눈길이 꽂혔다.




제자의 프로필 사진 ‘우중산보’


고전독작가인 간호윤 박사는 세상살이에 쓴소리도 거침 없다. 故 노회찬 국회의원의 자살 소식에 분개하는 그는 표창원 국회의원의 누드화 논란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예술의 취향이란 타인의 것이란 뜻이다. 그는 최순실, 박근혜 누드화 관련 중앙일보의 사설에 대해서 비판한다. 거리의 예술가와 국회의원의 전시는 그리 별반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다. 예술에 경계가 어디 있고, 편견이 어디 함부로 개입할 수 있겠는가. 중앙일보는 반성하라!


간호윤 박사의 글을 읽고 있다 보면 공부란 무엇인지, 학습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는 근원 김용준 선생의 글을 인용했다. 고독에 대한 내용인데, 물질보다 정신적 여유가 없을 때 사람은 고독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학문하는 사람의 열정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우리 문학, 우리 학자들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간호윤 박사는 오늘도 묵묵히 한국의 실학자들과 문학가와 대화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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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대신 욕망 - 욕망은 왜 평등해야 하는가
김원영 지음 / 푸른숲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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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두 봉지로 장애인 편견을 없애는 방법

[서평] 『희망 대신 욕망』(김원영 저, 푸른숲, 2019. 04.20)

 

아침부터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펜스 너머 잔디밭에 안내판....“휠체어 앉아 어떻게 보나요”> 안내판 각도가 너무 경사지고, 글자가 작고 빽빽하고, 보도와 분리된 잔디밭에 세워져 있어 휠체어에 앉아 보기가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그냥 지나쳤을 만한 기사였다. 하지만『희망 대신 욕망』이라는 책을 읽은 뒤라 장애인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다.

 

저자는 “장애를 이해하는 일이 외국어를 공부하는 일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하나의 외국어를 통해 그전까지 알지 못하던 세계에 눈을 뜨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표현이 다시 진리처럼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저자는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대놓고 차별하거나 비아냥거리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사람들이 대하곤 했기 때문이다. 줄을 선 경우 종종 누군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앞으로 새치기를 하는 순간에는 스스로가 마치 풍경과 같다고 느꼈다.

 


재활원에서의 소심했던 이들

 

어린 시절 저자는 스무 평 남짓한 시골집에서 두 팔로 기어 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외출이라고는 병원에 갈 때뿐이었다. 열다섯 살이 되어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리고 장애인 등록을 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특수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필요한 어쩔 수 없는 우울한 조치였다.”고 회상했다. 책은 저자의 재활원 생활에 대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재활원은 인간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그렇듯이 나름대로의 서열이 있었다. 발달장애가 없고, 상체의 기능이 원활하면 소위 상류층에 속하기 쉬웠고, 소아마비나 척수장애인 선배들은 끼리끼리 모여 다녔다.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신체장애가 중한 사람들은 주로 하류층에 속했다. 그곳은 사실 별 다를 바 없는, 구별 짓기를 좋아하는 바깥세상의 10대 청소년들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당시 저자는 매우 소심하고 예민했다. 외부에서 누군가를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들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헌신적이지만 자신이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들이라 여기며 거리를 두었다. 그저 잠시 자기 세계의 문제들을 미루어두고 새로운 공간의 정취를 즐길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자원봉사자들과 친해지는 일이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느껴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들과 친해지고 싶었고 연락처를 알고 싶었지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자원봉사자들이 자신의 연락을 진심으로 반기지 않을 거라 여겨 부담을 주기가 싫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저자는 자신의 신념을 깨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한 여자는 저자를 특별한 존재로 취급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저자는 진정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재활학교를 통해 새로이 공부를 시작했고, 우정을 배웠고, 무대 위에 섰고, 사랑을 경험했다. 그 모든 일이 단 3년 동안 일어났다. 이를 저자는 이렇게 회상했다. “집에서만 생활하던 내가 만약 재활원에서의 경험 없이 바로 세상으로 나갔다면, 그대로 절망해 주저앉았을지 모른다.” 재활원 생활은 그만큼 저자에게 중요한 준비 기간이었던 것이다.

 

장애를 대하는 사회적 개인적 노력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해서 교육하는 것은 장애아를 편안하고 전문화된 체계 속에서 성장할 수 있게 하고 때로 그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준다. 그러나 세상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저자는 이 껍질을 평생 안고 가느냐 깨고 나가느냐 선택을 해야 했다.

 

장애에 뒤따르는 어려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혼자의 노력뿐 아닌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공동의 노력이란 남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다닐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었어야 할 책임을 지는 것이다. 만약 장애인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건 사회가 미안해야 할 일이지 장애인이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여기서 혼자의 노력이란 반짝이는 기지를 발휘하는 것이다. 책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한테도 피해 안 주고 햄버거 사 먹는 법> = 패스트푸드점 앞에 차를 세운다. 그 옆에 귤을 파는 아저씨가 있다면 불러서 귤 2천 원어치를 사고는 가게 안의 점원을 불러 주라고 요구한다. 아저씨는 기분 좋게 가게로 들어간다. 그 사이 귤 한 봉지를 반으로 나누어 하나는 차에 두고 하나는 봉지 안에 그대로 넣어둔 채 다가오는 점원에게 건넨다. 그리고 햄버거 세트 두 개를 가져다 달라고 한다. 점원은 얼떨떨해 하면서도 햄버거 두 세트를 차까지 가져다주며 오히려 고맙다고 말한다. 누구에게도 부담 주지 않고 차 안에서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장애를 만드는 사회

 

장애인 스스로가 모욕을 견딜 수 있도록 강력한 정신력을 갖추어야 하는 사회가 되어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한국 사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운동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져왔다. 그 움직임이 가장 폭발적으로 나타난 것은 바로 지하철과 버스 점거로 상징되는 2001년의 장애인 이동권 운동이었다.

 

장애인 인권 운동은 사실 특정한 사회 집단의 인권에 대한 운동이라기보다는 취약한 몸, 불균형한 몸, 병약한 몸, 노화한 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일반적인 몸에 대한 새로운 권리를 확보하는 과정이다. 사람들은 이들을 이해하면서도 장인들이 그 권리를 위해 버스나 지하철을 멈췄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물러설 수 없었다. 그럴 경우 ‘수십 년씩’ 집구석에 처박혀야 하는 삶이 다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민불복종은 사회를 상대로 협상할 어떤 권력도 없는 집단이 선택하는 최후의 방식인 것이다. 지하철 선로에 누운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의 몸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

 

여전히 장애인을 무성적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성관계를 통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아이를 낳는다 해도 아이에게 장애가 유전되어 사회에 또 다른 부담을 지울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보호와 시혜라는 틀 안에서만 존재를 드러내왔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든 품을 수 있는 욕망, 욕심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로 인식된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통해 욕망을 품고 자라나는 한 인간을 보였다. 저자의 삶은 평범한 인간의 삶이었다. 그에게 가장 장애가 됐던 건 사회의 눈초리와 인프라였음을 책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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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기준은 사양하겠습니다 - 스펙제로 야간대생에서 글로벌 비즈니스 코디네이터까지
김나영 지음 / 와이즈맵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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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선원이 된 한 지방대 여학생의 분투기

[서평] 『당신들의 기준은 사양하겠습니다 (스펙제로 야간대생에서 글로벌 비즈니스 코디네이터까지)』(김나영 저, 와이즈맵, 2019. 04.25)

 

누군가의 삶 이야기를 듣는 건 유익하고 좋다. 그 삶이 어떠하건 우리는 한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흔한 말처럼 어떤 대상을 진심으로 알게 되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또 사랑하게 되고, 진실 된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현재 내가 가진 조건, 처한 환경, 상황 등을 이해하고 나아가 사랑하게 된다면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갈 지혜와 눈을 갖게 된다. 『당신들의 기준은 사양하겠습니다』의 저자는 그런 점에서 자신의 삶을 사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기억한다. 그 이유로 엄마의 노력을 꼽았다. 엄마를 보며 힘든 일을 이겨내고 세상사는 법을 배워 나갔던 것이다. 물론 학창시절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가난하고 불행하게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알게 된 값진 노동의 대가, 그리고 내 힘으로도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을 가지게 됐기에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시절, 그리고 특별했던 시절로 기억하였다.

 



중국어 공부를 통해 넓어진 기회의 순간

 

저자는 보충수업과 야자에서 탈출하려 외국어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매일 중국어 수업을 들을수록 그 언어의 특성에 매료되었다. 법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이후부터 나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강의시간을 제외하고는 쉴 틈 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저자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익혀 나갔다. 또한 그간 공부했던 중국어는 저자에게 여러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 어느 날 ‘제1회 북경외국어대학교 교환학생 선발’의 기회를 잡았다. 베이징에서 1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대학 입학 후 처음으로 아르바이트, 학비 걱정 없이 학생으로서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영어공부까지 흥미를 붙였다. 계속 도전하며 새로운 기회를 잡아나갔다. 그러한 기회 중 하나가 ‘제1회 전국 대학생 중국어 프레젠테이션 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저자는 ‘베이징 798예술구’를 주제로 발표 후 대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살다보면 좋아하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일들을 적지 않게 만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대한 즐기고 행복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고 말한다. 내가 처한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이 방법인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들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문구들이었다.

 

크루즈에서의 생활

 

베이징 유학 중 저자는 크루즈 세상을 처음 사진으로 접했다. 그 경험은 강렬했다. 저자는 한국에 돌아와서 크루즈 회사에 취업하고자 백방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승무원이 되어 크루즈 안에서 생활하며 세계를 여행하는 매일 꿈을 꾸면서 크루즈 회사, 크루즈 산업에 관련해 모을 수 있는 모든 지식과 정보를 수집해나갔다. 결과 한 회사에 합격했고 9개월이라는 지난한 기다림 끝에 2009년 10월 9일 승선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인생을 개척하는 인물의 표본을 보는 듯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 단계를 밟고 꿈을 생각하고 설계를 하는 모습은 여타 부모에 의지해 사회 속 단계를 밟아가는 젊은이들과 달랐다. 세상에는 아무런 인과관계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운이라는 것은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또 준비된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저자는 크루즈 승무원이 된 이후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 덕분인지 첫 번째 항해에서, 이제 막 3개월의 수습기간이 지난 시점에 부서 이동의 기회를 얻었다. 이 때 역시 오래 고민하지 않고 바로 기회를 잡았다.

 

일을 함에 있어서도 요가의 호흡처럼 천천히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마시고 내뱉는 과정이 필요하다. 잘하지 못하더라도 서두르지 않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면 같은 상황에 올랐을 때 지난번보다 조금은 발전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속도를 느끼고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어떻게 하면 승객들이 행복한 기억을 최대한 많이 사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크루즈에 대해 더 알아갈수록 그들의 여행 목적은 기항지가 아니라 크루즈, 일상에서 벗어나는 여유 그 자체라는 것까지 깨달았다.

 

세상을 배우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다

 

세상에 꼭 해야 하는 일이란 없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뿐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주어진 모든 일에 ‘네’라고 말하는 게 긍정적인 자세일 수 있지만, 기존 업무에 차질을 빚거나 과부하로 건강에 문제를 일으킨다면 결국 ‘과욕’일 수밖에 없다……. 내가 해낼 수 있는 선을 지키고, 과도한 요구에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진정한 용기이자 자신감이다.”라고 말했다.

 

저자의 남편은 삶을 행복해하는 아내를 응원했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행복해 보여서, 그런 여자가 자신의 아내라서 좋다고 흔쾌히 동의를 하며 오랜 기간 보지 못함에도 아내가 승무원 생활을 하도록 응원해주었다. 저자는 무언가를 결정할 때 머릿속에 늘 새겨두는 말이 있다고 한다. 바로 ‘모든 일에 정답은 없다’라는 것이다. 어떤 문제에서건 자신의 선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데, 내 선택을 정답으로 여기는 순간부터 작은 차이에도 후회와 자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정답보다는 가장 합리적이고 적당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책에 담긴 저자의 시각은 너무도 고차원적이고 또 세계적이었다. 아마 저자가 머무르는 물에 따라서 느끼는 바가 달라진 것이리라. 세상을 살다보면 나와는 다른 언어, 문화,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의 다름으로 인한 마찰이 생겨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마찰은 결코 감정적으로 다투거나 내 입장을 강변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그렇게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조직의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결과 그들은 기꺼이 저자를 받아들였다.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했던 저자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자신을 알아봐주고, 믿어주고, 기회를 주는 사람들과 만나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 가는 걸 느꼈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에 맞춰서 산다. 어떤 사람은 빠르게, 또 어떤 사람은 조금 느리게 산다. 중요한 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갇혀 나의 가능성까지 가둬두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또 그렇게 경력을 이어갈 수 있게 기업과 사회의 배려역시 필요하다. 크루즈를 타고 세상을 돌며 진정 세상을 느낀 저자가 매우 부러웠다. 그런 점에서 『당신들의 기준은 사양하겠습니다』은 가슴 뛰는 순간들을 독자가 함께 느끼게 하는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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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언어로 - 신동엽 평전
김응교 지음, 인병선 유물공개.고증 / 소명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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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의 시들회고주의가 아닌 내일을 위한 잠언

[서평] 좋은 언어로(신동엽 평전)(김응교, 인병선 저, 소명출판, 2019. 03.20)

 

누군가를 깊이 알면 사랑하게 된다. 사람 자체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언어로(신동엽 평전)는 시인 신동엽의 생애와 인간적인 면면을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책을 읽으며 시심을 키웠는지, 어떤 분들과 가깝게 지냈는지, 가족 관계는 어땠는지 등을 알 수 있다.

 

신동엽 문학상은 문인들이라며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원래는 신동엽 시인의 문학과 문학정신을 기리고, 역량 있는 문인을 지원하기 위해 유족과 창작과비평사가 1982년 공동으로 신동엽 창작 기금을 제정한 것이 시작이었다. 신동엽 시인은 식민지의 배고픔과 참담한 6.25전쟁 속에서 살아남았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시의 언어로 형상화하였다. 또한 짧은 시뿐 아니라 긴 서사시, 극시, 오페라까지 만든 실험적인 형식들을 여럿 선보였다.

 

  

시 창작에 영향을 준 어린 시절과 아내

 

신동엽의 시는 단지 과거로 돌아가자는 회고주의가 아니다. 내일을 위한 잠언이다. 어린 시절 신동엽은 성실한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병으로 결석이 잦았고 크게 건강하지도 않았다. 이는 훗날 신동엽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키는 하나의 원인이기도 했다. 당시 학생들은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매일 싸움을 했다. 이 사건은 신동엽이 체험한 최초의 분단이었는데 당시 신동엽은 중립을 바라며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어느 날 신동엽은 소집 영장을 쥔 채 국민방위군으로 대구에 수용 당하게 된다. 1951430일 국민방위군이 해체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집한 군인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낙동강변을 지나던 신동엽은 배고픔을 참다못해 딱딱한 게를 잡아 날로 먹고 말았다. 그런데 이는 신동엽의 건강을 극도로 악화시키는 디스토마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봄이 지나고 여름도 거의 지날 무렵이 되어서야 신동엽은 겨우 기력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전쟁은 신동엽에게 평생 떼어놓을 수 없는 현실적인 태도를 가르쳐 주었다. 한국전쟁 시기 그가 썼던 메모와 일기문, 습작시를 볼 때, 그의 역사의식은 이미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즈음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던 그에게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 여인은 훗날 아내가 되고 이후 그의 작품 해석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두 사람 사랑은 개인적인 사랑을 넘어 인류애에 이르렀다. 신동엽은 인병선에게 편지뿐 아니라 시를 써서 보내기도 했으며, 군에 가서도 틈만 나면 편지를 보냈고 부대 밖으로 나와서도 항상 인병선을 찾았다.

 

28세가 되던 1957년 신동엽은 인병선과 결혼을 한다. 그리고 29세가 되던 1958년 가을에 충청남도 보령에 있는 주산 농업고등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했던 그는 1년 이상 교사생활을 하지 못하였다. 막 안정된 생활을 하려 할 즈음 그에게 병환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신동엽에게 깊은 시를 쓰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신동엽은 한 달 이상 정성을 다해 시를 썼고 30세가 되던 195913일 드디어 지면에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으로 그의 장시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신춘문예 입선 작품으로 실리게 되었다.

 

껍데기는 가라그리고 한민족의금강

 

신동엽의 시에는 6.25 때 일어난 슬픈 장면이 많았다. 그의 시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2화를 보면 <내 동리 불사른 사람들의 훈장(勳章)을 용서하기 위하여. 코스모스 뒤안길 보리사발 안은 채 죽어 있던 누나의 사람을 위하여.>는 구절이 있다. 어느 동네에서 벌어진 비참한 광경을 묘사한 내용이었다. 시에는 동네를 불사르고 사람들을 죽인 사람이 훈장을 받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이야기가 담겼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 무서워 깊은 산으로 도망갔다가 추위에 얼어 죽은 사람들의 모습도 담겨있었다. 시는 코스모스 길에서 죽어 있던 나무처럼, 전쟁 때 죽어간 동네 사람들을 위로하는 슬픈 노래였던 것이다.

19604.19혁명이 일어났다. 신동엽은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의 아픔을 더는 속으로만 담아둘 수 없었다. 그래서 문학 작품을 모아 책으로 냈다. 19607, 신동엽은 4.19 혁명을 노래한 학생과 시민, 작가들이 쓴 시를 모아 엮은학생혁명시집을 펴냈다. 이후 수많은 작품 활동을 했는데껍데기는 가라를 통해 그는 관념의 절정을 밟았고, 196712월부터는 전주사범 시절부터 거의 20년 동안 구상해 온 이야기인금강을 쓰기 시작했다.

 

신동엽의 독서 노트와 일기장을 보면 그는 엄청난 양의 세계문학 작품을 두루 읽고 받아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집필을 위하여 방학 때면 호남을 여러 번 답사했고 설악산과 속리산 등을 찾아가 동학의 유적을 추적했다. 온 정신을 기울여, 밥 먹을 시간도 잊고 원고지에 쓴 글을 읽으며 방안을 왔다 갔다 했다. 나중에는 아예 여관방을 하나 빌려서 원고지와 씨름했다. 그렇게 하여 1968년 초 장편서사시금강을 발표했다. 모두 26장으로 이루어진 4,800행의 대작이었다.

 

옛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이 시에 담겨있었다. 과거 이야기를 재구성함으로써, 과거는 미래를 위한 거울이라는 사실을 그는 사람들에게 알렸다. 하지만금강을 쓸 때 잠도 안자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은 탓인지 그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임진강을 쓰기 위해 문산 지역을 취재하다가 수상한 사람으로 오인 받아 군부대에 잡혀 하룻밤을 지내고 온 후 그의 병은 더욱 나빠졌고 결국 간암 판정을 받았다. 196947일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서 향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생전 신동엽은 주말마다 산행을 즐겼다. 산봉우리를 디디고 지팡이를 짚은 채 먼 곳을 바라보는 사진이 많았다. 신동엽은 떠오르는 해를 보며 내일을 상상하고, 산 아래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삶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신동엽은 한국 현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정부의 인정을 받은 상태다. 그는 시작을 위해 뼈를 깎는 산고 과정을 겪었고 그러면서 치밀하게 자료를 모았다. 그리고 그의 정신은 오늘날 시에 담겨 전해지고 있다.

 

신동엽 시인의 가족들을 보면 고진감래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부인 인병선은 남편과 사별한 뒤 출판사 일과 번역 일을 하는 등 어려운 살림을 일으켰고, 자식들도 모두 대학을 나와 평안하게 살고 있다. 자식세대로 이어진 아버지의 정신과 노력 덕분이었다. 이는 신동엽이 살았던 이후의 모든 자식세대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 현대인들에게까지 적용되는 사실일 것이다. 한 사람의 위대한 정신이 보인 오늘날 모습은 감히 고개가 수그러질 정도이다. 그러한 정신을 알기 위해 우리는 한민족을 일으킨 시인 신동엽의 삶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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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D] 과학기술혁신정책에 대하여
이영훈 지음 / 부크크(bookk)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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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변칙을 넘어 과학혁명이 정상과학이 되려면

[리뷰] 『과학기술혁신정책에 대하여』(이영훈, BOOKK(부크크), 2019.03.04.)

 

과학이라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과학은 무언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건 언제나 비판을 수용해야 하고,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천동성이 지동설로 바뀌었듯이, 과학은 다른 과학의 허용 가능성을 품고 잇다.

 

과학혁명의 구조에 따르면, ▷ 패러다임 이전의 시기 ▷ 정상 과학 ▷ 변칙 현상 ▷ 위기 ▷ 혁명을 거쳐, 패러다임의 대체와 새로운 정상과학의 시작이 이뤄진다. 패러다임이란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과학기술혁신정책은 너무나 중요해지고 있다. 소위 4차산업혁명 시대라는 요새 어떻게 하면 과학기술혁신을 이뤄낼 수 있을까?

 

저자인 이영훈 박사는 혁신이라는 단어에 주목한다. 혁신이라는 것이 국가에서 개입이 주도적으로 뭔가를 바꿔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독점이라는 것이 반드시, 시장 경제체제에서 답보 상태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라고도 주장했다. 아무튼 이영훈 저자는 "과학기술에 혁신이라는 단어를 넣는 것이 국가의 인위적 개입으로 과학의 자연스러운 발전 흐름을 저해한다는 것은 혁신이라는 단어에 대한 과학기술인들의 오해이다."면서 "여기서의 혁신은 과학기술의 과정을 인위적으로 뜯어고치는 개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주체 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창출된 지식이 가치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선형적인 발전이 아니라 상호 교환에 따른 네트워크 구조가 핵심이라는 뜻이다.

 

이영훈 저자의 이 책 『과학기술혁신정책에 대하여』은 마치 한 학기 혹은 두 학기 수업을 듣듯이, 생각해보기부터 여러 학술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과학기술학과 기술사회학, 과학기술정책학과 과학기술혁신정책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이라면 정말 적합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혁신주체 간의 정보와 의미는 어떻게 전달되고 내재화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나온 니클라스 루만의 내용이었다. 예전에 공부할 때 살짝 접한 적도 있었던 니클라스 루만은 독일의 사회학자로서 체계이론을 정립한 사람이다. 루만은 하위 체제들 속에서 소휘 '자가 생산'이 이뤄진다고 서술했다. 루만은 커뮤니케이션을 정보와 전달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이고, 이해되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트슨이라는 학자는 "다름을 만드는 차이가 정보다"라고 밝혔다.

 

갈수록 과학기술과 이에 대한 혁신정책이 중요하다. 이 책은 매우 학술적인 접근으로, 좀 더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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