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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머리 앤 ㅣ 특서 청소년문학 10
고정욱 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월
평점 :
성불평등에 속수무책인 여성들…‘빡빡머리 앤’
[서평] 『빡빡머리 앤』(고정욱(작가), 김선영(소설가), 박상률(작가) 외 3명, 특별한서재, 2020.01.02.)
성불평등에 대한 문제는 오래전부터 우리 호모사피엔스가 안고 있는 어두운 그늘이었다. 『빡빡머리 앤』은 우리 일상 속에 만연한 성불평등에 대한 자잘한 비늘 같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는 측면에서 기획됐다.
6편의 단편이 실렸으며 하나하나가 사회 기사에서 충분히 들어봤을 내용들이다. 책은 이를 집중적으로 조망하여 디테일하게 그렸다. <빡빡머리앤>은 조앤이라는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물론 1인칭이 아닌 3인칭 시점에서 관찰되는 인물이지만 주요 인물로 나온다. 치마를 입은 채로 드리블을 하는데, 놀라운 건 어렵다는 드리블에 가운데 발바닥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어느 날 조앤은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채 나타났다. 왜냐하면 예쁜 여자애가 될 수도 없고, 축구도 맘대로 할 수 없고, 공부도 잘 못하는 자신에 화가나 그랬다고 한다.
<언니가 죽었다>는 로마행 비행기표를 끊어 놓고 죽은 언니 이야기가 나온다. 이 역시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인물이다. 언니는 오십이 되기 전 자궁암에 걸려 죽었다. 언니는 고1이던 때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예뻤다. 그래서인지 남자들로부터 관심을 많이 받았는데, 어머니는 그런 언니 뒤를 따라오는 남자들을 쫓는 역할을 도맡아야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이름 모를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말았다.
사고 후유증으로 언니는 약혼과 파혼, 몇 번의 자살시도를 인생 내내 진행했다. 그런데 문제는 언니가 범행을 당한 날 엄마가 언니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한 부분이었다. 언니 역시 이를 숨겼지만 소문은 아주 빠르게 퍼졌고 괴이하게 자라나기까지 했다.
“그 소문은 꼿꼿했던 어머니의 자존심에 무수한 스크래치를 냈고 그곳에서 도저히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이삿짐을 꾸렸고 우리는 그 구질구질했던 산동네를 떠났다.”-62p
불편한 책이지만 웃고 있는 표지 여성
소설 속 이야기들은 가슴 시원히 해결된 채 끝나지 않곤 했다. 중요한 독자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 얼마만큼 마음의 동요가 이는 가였을 것이다. 남녀 간의 문제가 생겼을 때 질타의 손가락은 거의가 여성에게 향하곤 하는데, 과연 그 손가락을 너무도 당연시 여기며 살아오진 않았나 생각을 하게 한다.
<분장>에는 딸을 공부시키는데 혈안이 된 어머니가 나온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공부예찬론자가 된 이유는 그저 자신의 못 다 이룬 꿈 때문이 아니었다. 공부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신념을 가진 것은 딸이 의사로부터 나쁜 짓을 당한 뒤였다. 그래서 세상을 흔들 수 있는 위치에 올라야만 딸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고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억울함을 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치마를 길게 입는다고 해서, 다리를 감춘다고 해서 그날 받았던 그 느낌이 사라지는 거는 아니었어. 그리고 어느 순간 치마가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 내 잘못도 아니야.”-126p
<마카롱 굽는 시간> 주인공 여자는 고민이 있다. 항상 누군가의 언저리를 배회하며 살고, 인생의 주인은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삶을 결정을 하지 못하는 엄마가 걱정이었다. 문제는 더 있었다. 할머니 집에 간 주인공 여자와 그의 여동생은 자신들 이름의 충격적인 유래를 알고 말았다. 자신의 이름 ‘준성’이가 아들 낳기 위한 이름이었으며, 여동생 ‘준영’이는 딸인 걸 알고 뱃속에서 지워질 뻔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우라고 했던 할머니의 말이 너무 무서웠다.
이외 다른 소설들 역시 불편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올바르지 않은 사회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피해 여성들의 삶에 공감이 가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쓴 작가들 역시 작품을 쓰며 부끄러웠다고 한다. 책은 잔잔하게 음미할 거리는 되지 않고, 청소년 소설과 같이 전개가 빠르고, 문장들은 요란한 소음과 같은 느낌이 든다. 사회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이기만 하는 작품은 때로는 읽기에 너무 힘이 든다. 그러나 우리 머리에 전통적으로 뿌리 박혀있는 성차별이나 인식이 여전히 낡은 채로 남아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기에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