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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바나나 - 기자의 눈으로 바라본 지구촌의 눈물과 희망 메시지
손은혜 지음 / 에이지21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예전에 서평을 했던 ‘Because I am a Girl’을 계기로 이 책을 서평 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전해 받았을 때 책보다도 먼저 출판사 소개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희는 세상에 모두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책을 만드시는 분들의 참 좋은 마음씨를 먼저 읽고 나니 이 한권의 책을 열심히, 좀 더 열심히 읽어나가야겠다는 결심부터 세우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로 가는 출근길에 쌀쌀함을 달래고자 ‘홍차’ 한잔을 사고 점심식사 후엔 심심한 입을 달래고자 ‘커피’ 한잔과 ‘초콜릿’ 하나를 구입합니다. 그리고 퇴근길에 쇼핑을 하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설탕’과 ‘티셔츠’ 한 벌, 그리고 내일 아침에 먹을 ‘바나나’를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와선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세계 소식들을 한귀로 흘려듣습니다. 이런 일상 속에서 우리가 모르는 지구 어딘가의, 누군가의 눈물과 가난이 담긴 무언가를 얼마나 소비하고 있는지, 얼마나 무관심하게 외면하는지를 우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홍차와 바나나’- 마치 요리책처럼 달달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은 바로 이렇게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혹은 외면하고 있었던 그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은 2011년 현재, 사회부 기자이며 2010년 당시 국제부 <특파원 현장보고> 프로그램 제작팀의 기자였던 지은이가 세 번의 출장길에서 적은 일기를 정리 보강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기자의 눈과 입을 빌려 듣게 되는 전쟁지역과 분쟁의 기록들은 얼마나 사실적이고 적나라할 것인지, 너무 지독한 사실들에 읽는다는 것조차 힘들지는 않을지 시작부터 조금의 걱정을 가지고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개인적인 여행을 시작하며 이 책을 읽게 된 터라 책 속의 여행을 같이 출발한 듯 한 묘한 설렘과 함께 기자의 하루가 지치고 고될수록 여유로운 여행 일정 속에서 내가 느끼는 고단함 들이 사치처럼 느껴져 묘한 죄책감도 들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덤덤하게 일상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주변에도 하루하루가 가난과 고단한 절망으로 뒤덮여 있는 이들이 있음을 분명 알면서도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자신의 생활을 ‘평균’으로 생각하고 이 ‘일상’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일상’이 ‘사치’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스리랑카와 파키스탄에서 시작됩니다. 스리랑카에서는 내전의 현실과 사르보다야 대안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홍차재배에 관한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작은 지식으로 대충 알고 있었기에 기자의 취재를 따라 읽으며 가까이서 이 비극을 들여다보는 일이 조금 더 서글프게 느껴졌습니다. 홍차의 재배를 위해 타밀족을 이주시킨 영국, 타밀족 탄압 정책을 내세운 싱할라족, 분리 독립을 외치며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타밀라족, 그리고 이 내전을 뒤에서 조장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도 등의 강대국. 책에 적혀있는 글귀처럼 내전은 끝을 알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져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은 체 지금껏 26년을 이어져 왔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힘겨운 난민캠프 취재를 끝으로 파키스탄에 이르면 탈레반 점령 지역의 목숨을 걸고 공부하는 앳된 소녀들을 만나게 됩니다. 탈레반 점령 기간 동안 주요 건물이 대부분 파괴되었고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탈레반은 여성 교육을 금지하고 텔레비전 시청을 금지하는 등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막았기 때문에 폭탄테러를 피하기 위해 많은 여학생들이 학교에 갈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딸에게 공부를 시키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있는 리사 어머니와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리사처럼 어떤 위험에도 숨지 않고 학교로 향하는 여자아이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슬람의 여성 억압적인 문화를 비판하는 사람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P.166 “당신은 이슬람교에 대해 잘못 알고 있어요. 이슬람교는 여성들을 억압하지 않아요. 이슬람교에서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탈레반은 그것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일 뿐이죠. 탈레반을 이슬람교도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우린 테러리스트가 아니에요. 우린 평화를 사랑해요. 우린 공부하고 싶고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능력 있는 여성이 되어서 외국에 가서 공부도 하고 이슬람권에 대한 편견도 깨고 싶어요.”
라는 여학생의 대답을 읽으며 ‘이슬람권에 대한 나의 여러 가지 편견을 거둬준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는 기자의 말처럼 저 또한 제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조금 내려놓았습니다.
그 후 방문한 장수 마을 훈자의 모습은 아마 이 책의 전체 여정 중에서 유일하게 쉬어가는 듯 한 기분을 주는 곳 이었습니다. 다른 곳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들의 고통과 시련에 쉴 새가 없었는데 이곳은 마치 산책을 하듯 편안한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p.148. 수십 년째 같은 장소에 같은 시간이 되면 같은 모습으로 풀을 먹이고 있다고 했다. 안 지겹냐고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하나도 안 지겨워요. 다른 삶을 살아본 적도 없고 상상해본 적도 없으니까요. 이게 우리의 삶인 걸요." 그의 대답을 들으며 무릎을 쳤다. 자족하는 삶이 이런 걸까. 삶의 다양한 모습을 알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을 많이 하며 사는 삶이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우리가 보기엔 한없이 단조롭고 지루한 삶이지만 그 속에 그들만의 행복이 있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이다. 나는 이런 삶을 택해 살고 있고,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의 삶을 존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들처럼 사는 삶을 선택하긴 어렵겠지만, 훈자 사람들의 순수함, 가진 것에 자족할 줄 아는 맘의 여유만큼은 배워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도 기자분의 이야기처럼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그들의 욕심을 내려둔 여유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훈자 마을의 전통은 바로 이곳에 온 사람, 자신과 인연이 된 사람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왠지 도시의 쓸쓸함에 익숙한 저이기에 자꾸만 부러운 부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후 민주콩고에서는 내전 이후 성폭행 피해 여성의 모습과 이 피해 여성들을 위해 세워진 무료 진료 병원인 힐아프리카 병원, 그리고 가해자였던 소년병과 민주콩고 감옥의 성폭행 현행범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혼란 그 자체인 민주콩고의 이야기는 읽는 것만으로도 분노하고 슬퍼하게 됩니다. 다만 이곳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아물게 하고자 봉사하고 있는 이들과 그래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보고 그 희망이 이어지기를 소망해봅니다. 그 다음 케냐에서는 아프리카 음악과 그것을 둘러싼 휴먼 스토리를 담으며 전쟁과 그 전쟁으로 상처 받은 여성과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싶다는 기자의 목표에 충실한 여정들이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는 바나나 농장에 사는 사람들, 에콰도르에 사는 인디오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으로 이곳에서는 ‘아크로페어’라는 공정무역 바나나에 관한 이야기와 대형 과일유통회사들의 거대 자본, 그리고 착한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기자 분은 과연 착한 자본주의는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스러워하고 이에 대한 해답은 핀란드에서 온 자원봉사자 파밀라의 소비자의 선택과 이 시작을 위해 이미 움직이고 있는 그녀와 촬영진들 로부터 가능성이 있다는 대답과 아그로페어의 총책임자 한스 윌리엄 씨로부터는 좀 더 자세한 가능성과 방향에 대해 듣게 됩니다.
P.331 아그로페어의 총책임자 한스 윌리엄 씨는 착한 자본주의에 대해 “공정한 가격을 매기고, 공정하게 판매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을 공정하게 나눈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공정무역이지요. 이익을 나눠가질 사람은 다양합니다. 생산자, 수입업자, 상점, 소비자 모두 공평하게 나눠가져야 합니다. 이익이 나지 않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지요. 이익을 남기고 물건을 팔되 그 과정에서 어느 하나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이익을 나눠 가질 수 있으면 됩니다. 공정무역의 취지가 그것이지요. 이것이 이상적으로 실현되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착한 자본주의를 실현한 사회일 겁니다.”라고 설명해 줍니다.
이를 마지막으로 위험하고 어려웠던 출장 일정을 모두 끝을 맺고 이 과정을 통해 기자분이 얻은 깨달음은 책에서 두 번에 거쳐 소개됩니다.
p.269 출장길에서 되돌아보며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정리해 본다.
1. 진심은 통한다.
2. 삶의 끝자락에도 희망은 있다.
3. 동료를 믿어야 한다.
4. 약자 편에서 소외된 사람의 편에서 세상을 전해야 한다.
5. 무엇보다도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스스로 행복해져야 한다.
p.276 이제까지의 출장길을 돌아보면 아주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은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보자면 크게 이 정도인 것 같다.
하나는 그리도 희망은 있다는 것.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을 것 같은 그곳에 바로 희망이 이었다.
두 번째 '그러니까' 사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
세 번째는 지극히 개인적인 깨달음이긴 하지만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인 듯 하다는 것.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제가 느낀 부부들을 적는 다면,
결국 모든 일들의 해결방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입니다. 다만 욕심에 그러지 않거나, 이득을 위해 그렇게 하거나,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자신의 식으로 해석하여 자신들만의 신념에 갇혀있거나,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들이 어느 순간 목적을 위해 이용하거나, 아니면 지극히 무심하거나…….
이 책을 평하지만 따뜻하고 뜨거운 책입니다. 사이사이 특색을 살린 인터뷰 형식의 내용도 이어지지만 전체적인 진행은 기자의 일기가 토대가 되고 있는 터라 읽다 보면 나 또한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 있는 듯, 기자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기자의 취재일정이라 사실과 기록의 구성은 괜찮은 편이나 일기형식인 터라 어떤 사건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분석은 사실, 저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또 약간 담담한 어투로 생각할 부분을 주는 책을 선호하는 저의 경우 뜨거운 이 책 보다는 짧은 문구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Because I am a Girl’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빈곤, 성, 소수민족, 공정무역 등 세계 곳곳에 감춰진 절망과 그 속에 남겨진 희망을 발견하는 따뜻한 시선의 책을 원하시는 분이라면 충분히 마음에 들어 하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