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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남친
아리카와 히로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봄이 오면서 왠지 분홍색 솜사탕 같은 이야기를 읽고 싶은 마음에 시작하게 된 책입니다.
‘아리카와 히로’라는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은 처음이지만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라는 책이 니노미야 카즈나리 주연의 ‘프리타 집을 사다’라는 드라마로 일본에서 방영되어 좋은 평을 얻었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기에 큰 걱정 없이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도 역시 보지는 못한 터라 이 작가가 어떤 분위기의 소설을 적는 것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어 불안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이 책을 간단히 평한다면 ‘분홍빛 라이트 노벨’이라고 적을 것 같습니다.
역자 후기에 적혀있듯 일본에는 ‘라이트 노벨’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주로 10대, 20대 연령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면서 판형이 작은 문고판에 만화풍의 일러스트를 곁들여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경향의 소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물론 고래 남친의 경우 하드커버에다 일러스트도 없고 30대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책이지만 작가의 말처럼 ‘어른을 위한 라이트 노벨’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어리거나 유치한 사랑이야기는 아닌 적당히 현실감 있고 30대쯤에 한번쯤은 해 보았을 연애 푸념을 적은 책이지만 확실히 일반 문학소설보다는 내용의 무거움이나 짜임새가 가볍고 달콤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책을 읽는 동안 책장을 다시 넘겨 앞부분의 내용을 확인하다던가 깊게 구절을 되풀이 한다던가 하는 신중한 기분보다는 가볍게 책장을 살랑살랑 넘기며 달짝지근한 이야기들을 친구의 수다를 듣듯 읽어 넘긴 것 같습니다.
책의 제목인 ‘고래남친’은 미팅에서 해상자위대인 잘 생긴 남자의 잠수함이야기를 듣고선 무심결에 ‘잠긴다’와 ‘고래’라고 표현한 그녀에게 센스 좋은 여자의 직격탄에 맞았다며 교제를 신청하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잠수함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반하게 되는 내용이 주가 아닌 그렇게 시작한 연애가 얼마나 고단한지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잠수함 승조원인 남자친구와 일정도 기밀이고 연락도 되지 않고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하는 연애는 아슬아슬하고도 달달하게 이어지는데 제목으로 내 세운 이야기인 만큼 달착지근한 연애이야기가 꽤 괜찮습니다. 그 후에도 ‘롤아웃’이나 ‘국방연애’, ‘여친은 유능해’, ‘탈책엘레지’, ‘파이터 파일럿 그대’까지 남자주인공이나 여자주인공 한 쪽이 자위대 이거나 등장하는 주인공 모두가 자위대인, 말 그대로 자위대 주인공의 사랑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군의 젊은 대원들을 다룬 사랑이야기는 많지 않아서 인지 왠지 낯설고 묘한 느낌 이였습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 모두가 작가 후기에 작가가 적었듯이 ‘나잇살 먹은 어른은 활자로 된 달착지근 러브로맨스를 좋아하면 뭐 안되나! - 활자로 된 달착지근 러브로맨스가 좋아 죽겠는 걸 어쩌냐고’라는 글처럼 정말 주인공들의 달착지근한 사랑이야기가 연속입니다.
하지만 저는 왠지 그 중에서도 가장 풋풋한 느낌을 주는 ‘탈책 엘레지’가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 이야기도 살짝 살짝 주인공인 키요타와 요시카와의 로맨스를 다루고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어리고 풋사랑의 연심에 어쩔 줄 몰라 할 위태위태한 나이의 어린 신입 대원들이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탈책하는 과정에서 미수로 붙잡혀 그런 시기를 거쳐 온 상급자의 씁쓸한 추억을 들으며 위로 받는 내용이 참 좋았습니다. 내 사랑이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운명처럼 느껴지는 풋풋한 시기를 지나 그 시기를 한참 내 달리고 있는 신입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마음을 추스르게 하고서는 자신의 추억에 다시 한 번 씁쓸한 웃음을 지을 때쯤 시작되는 차분한 로맨스도 이 이야기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봄이라 솜사탕 같은 이야기를 읽고 싶을 때, 친구의 수다처럼 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 좋은 책입니다. 가볍고 쉬운 말랑말랑한 이야기들이지만 때론 무거움보다 그저 달콤한 케이크 같은 책도 읽고 싶은 법이니까, 그럴 때 생각날 만한 책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