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2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박형섭 옮김 / 민음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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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를 알레고리로만 읽는다면 유치한 한 편의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의 광기에 휩쓸린 사람들을 풍자하고, 휴머니즘적 저항을 옹호하는 표면적인 교훈극. 간단한 삼단논법으로 이를 증명해 보자.


코뿔소는 알레고리다.

알레고리는 유치하다.

코뿔소는 유치하다.

QED.


논증은 막강하다. 논증은 무적이다. 이 또한 간단한 삼단논법으로 증명해 보자.


펜이 총보다 강하다.

총이 코뿔소보다 강하다.

펜이 코뿔소보다 강하다.

QED.


이게 이오네스코가 하려는 것이다. 보여 주려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웃기려고? 어쩌면 물어보려는 것일 테다. 당신은 이런 헛소리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느냐고. 우습다고?


그래, 우리 모두 다 우습다.


이마에 뿔이 솟으려 한다.



*



이오네스코는 논리의 파산을 연출하는 극작가다. 그의 언어는 현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며 그 우스꽝스러움을 드러낸다. 네 발 달린 짐승은 모두 고양이이며, 모든 고양이는 죽으므로 소크라테스도 고양이라는 논리학의 극의. 헛웃음이 새어 나오게 만드는 황당한 농담들의 난장. 말이 되지 않는 말은 우습다. 말이 되는 말도 우습다.


이렇게 말을 비웃고 있으려니 내 처지가 옹색하다. 엉덩이가 간지럽고 뒷덜미가 따끔하다.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 우스운 말 없이는 도무지 살 수가 없질 않나. 나는 그런 인간 중에서도 말이 많은 편이고. 과묵한 사람들의 처지도 별반 다르진 않을 터. 인간은 말 없이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동물이니까. 말을 지어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고, 가끔 그냥 못 들은 척하고. 그러지 않고서 이 시끄러운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단 말이야?


그때, 멀리서부터 코뿔소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살다 보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가끔 덮치는 것이다. 실은 자주.



*



그러므로 『코뿔소』의 등장인물들을 어떤 전형으로 읽는다면, 그건 피상적인 정치적 태도—기회주의자라거나 보수주의자라거나—의 분류학에 그치기보다는, 경황없는 말이 가까스로 새어 나오는 입술 모양을 살피는 독순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턱은 완고하고, 어떤 입꼬리는 옹졸하며, 어떤 입술은 부루퉁하다. 어떤 입술은 촉촉하고, 어떤 치아는 가지런하며, 어떤 혓바닥은 유연하다. 어떤 이의 생각은 합리적이고, 어떤 이의 어조는 열광적이며, 어떤 이의 말은 상식적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일 뿐. 아랫입술과 윗입술이 뒤집어지고, 혓바닥이 비비 꼬이며, 코뿔소는 턱을 다물고 질주하듯 달아난다. 콧김을 씩씩 뿜으며. 그리고 우리 이마에선 뿔이 솟는다. 또는 입이 떨어져 나간 주둥이에서. 한 개 또는 두 개의 뿔이.


달리는 코뿔소의 이마에 솟아난 뿔피리는 얼마나 우스운가. 우리는 말이 안 되는 걸 말이 되게 만들고, 믿고 싶은 것을 말이 되게 만든다. 모든 건 말 만들기 나름. 언어란, 논리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닌가.


돌진하는 뿔 끝에 걸린 비극의 진실은, 우리가 이 헛소리를 웃어 넘길 수만 없다는 데 있다. 우리 이마는 늘 간지럽고, 피리 소리는 하염없이 머릿속을 울린다. 소음은 공기를 떠나지 않는다. 말은 공기에 형태를 만든다.


우리는 자기 말을 되새김질하면서 세상을 믿는다. 토사물을 보여 주면서 소통한다고 믿는다.


현실은 말 만들기 나름.



*



끝까지 인간으로 남아 있는 자가 현실에 닻을 내리지 못한 주정꾼 베랑제라는 사실은 그래서 별로 놀랍지 않다. 그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기존 세계의 질서도, 신 세계의 광풍도. 질주하는 코뿔소 무리가 일으키는 소음과 먼지 속에서 ‘최후의 인간’으로 남겠다는 베랑제의 외침은 그러므로 애달프면서 공허하다. 베랑제가 고수하려는 ‘인간’이 무엇인지 당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자신조차도.


이 극을 특정 이데올로기에 대한 휴머니즘적 저항으로 읽으려는 시도는 그것이 겨냥하는 이데올로기만큼 취약하고 순진하다. 베랑제의 외침이 단지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가 되지는 않겠다는 다짐이라면, 그 정도가 납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적 윤리이거나 미학일 것이다.


인간은 고독에 짓눌리면서, 사회에 짓밟히기도 한다. 고독과 사회를 동시에 버거워하는 건 모순이라는 장의 ‘타당한’ 비판과 달리, 여기에는 모순이 없다. 삶에는 배중률이 적용되지 않는다. 베랑제가 끝까지 남은 것은 그가 강한 신념과 명징한 정신으로 무장한 덕분이 아니다. 그저 믿을 수 없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코뿔소』에 대한 가장 나은 이해는, 베랑제가 시대의 발굽에 짓밟히고 낙오된 인간-고양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하고 끝나야 하지 않나. 우리처럼 찢기기 쉬운 피부를 지닌, 죽어야 하는 발 달린 짐승이라는 건조한 사실에서. 거기엔 도덕이 없다. 도덕은 그다음에.


일단 낙오가 먼저다.



나는 차마 후피동물이 못 되려나 보다. 아직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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