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자본에도 국적은 있다'
'좋은 경제 정책을 세우는 데 좋은 경제학자가 필요한 건 아니다'

 위의 내용은 장하준 교수가 2010년에 출간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담긴 내용 중 일부입니다. 읽었을 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장하준 교수하면 떠오르는 책은 위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입니다(『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더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아마도 기존에 널리 알려졌거나, 우리가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명제 혹은 생각에 대해 비판 혹은 반대의 주장을 해왔던 장하준 교수를 가장 잘 보여준 책이기 때문일 거로 생각합니다. 가장 논쟁의 대상이 된 책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뿐만 아니라, 『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등 장하준 교수의 책을 계속 읽다 보면 자연스레 장하준 교수가 생각하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기존의 경제학 이론이나 명제들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경제학을 설명해 나가는 일종의 개론서 말이죠. 이 책이 그런 책이 되겠지요.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제목처럼 경제학 전반에 대해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책입니다. 경제사, 경제의 구성요소 등등. '경제학을 강의'하는 책이기 때문에 되도록 한쪽에 치우친 주장보다는 다양한 주장을 보여주려는 태도가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다 보면 장하준 교수가 그리는 경제학은 어떤 모습인지 알게 됩니다. 그중에서 몇 가지만 적어보면.

 신고전주의 학파는 개인주의적 관점을 강조하지만, 현실에서 경제의 중심은 개인이 아닌 조직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기업이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자(p.179)라는 것이죠. 이는 최근 화제가 되었던, 그리고 늘 논쟁을 가져오는 '법인세 인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기업이 가장 중요한 주체라면 이에 대한 법인세 역시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로 법인세 인상을 반대하는 입장은 a) 법인세를 인상하면 기업의 투자가 축소된다, b) 전 세계적으로 법인세를 낮추는 정책이 추진 중이다, c) 우리나라 전체 세수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크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법인세를 인상하자는 측에서는 a) 법인세를 낮춰도 기업의 투자가 크게 늘지 않았다, b) 우리나라의 경우, 법인세를 인상해도 미국과 같이 법인세를 낮추려는 국가들과 비교해 여전히 낮다, c) 그동안 경제성장의 혜택을 기업이 많이 가져갔다는 것 등을 주장합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 세수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주장입니다. 우리나라는 1년 동안 걷는 총 세금 중에서 법인세의 비중이 OECD 국가 중 5번째로 큰 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법인세율이 높아서가 아니라 GDP에서 법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법인소득의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법인세율이 높지 않아도 세수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것이죠. 그러면 이는 법인세 인상을 반대하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없게 됩니다.

 금융산업에 대한 장하준 교수의 시각도 인상적입니다. 사실 이전의 책들에서도 계속 해왔던 이야기지만, 이 책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지나치게' 복잡하고, '불균형적'으로 비대해졌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문제들이 과거의 금융위기를 불러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엄격하고,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요. 우리도 이미 경험해 알고 있습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던 것 중 하나가 금융규제인데, 과연 지금과 그때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의문입니다.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친금융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금융 부문이 너무 힘이 세지고, 그 종사자나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후한 보상을 안겨 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2008년 위기 이후 금융 산업 내 무능력, 무모함, 냉소주의가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대부분의 정치인과 규제 기관이 금융 규제 체제를 급진적으로 개혁하기를 꺼린 것은 단지 로비 때문만은 아니다. 금융 산업에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는 이데올로기적 확신도 큰 이유이다. (p.299)

 끝으로, 전 우리나라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금융이나 부동산 시장 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죠. 그런데 그에 비해 정치·경제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싫어하는 정치를 어려워하는 경제와 묶으니 당연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뻔한 얘기가 결론입니다. 경제는 정치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고, 이는 우리에게 너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시장은 '1원 1표' 원칙으로 움직이는 반면 민주 정치는 '1인 1표' 원칙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민주 사회에서 경제를 탈정치화하자는 것은, 결국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더 많이 주자는 반민주적인 주장이다. (p.381)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경제학적 논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특정 경제 상황과 특정 도덕적 가치 및 정치적 목표하에서는 어떤 경제학적 시각이 가장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경제학을 배우는 일이다.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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