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이펙트 - 인류 탄생의 과학적 분석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10 그레이트 이펙트 1
재닛 브라운 지음, 이한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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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BBC에서는 ‘지난 천년 최고의 사상가는?’ 이라는 네티즌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 조사에서 찰스 다윈은 카를 마르크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이작 뉴턴에 이어 4위에 올랐습니다.

 

- 미국의 네셔널지오그래픽이 2002년에 방영한 프로그램에서 1001년부터 2000년까지 1000년간 역사에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100명을 조사했습니다. 이 조사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석학들이 참여한 조사였는데, 여기서도 찰스 다윈은 구텐베르크, 아이작 뉴턴, 마틴 루터에 이어 4위에 올랐습니다.

 

- 1990년대 후반 미국에서 『1,000년, 1,000인(1,000 Years, 1,000 People)』이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지난 1000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누구인지 묻는 설문조사를 정리한 책인데, 여기서 다윈은 7위였습니다. (1위는 구텐베르크)

 

- 영국에서도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라는 조사를 토대로 『오! 이것이 아이디어다(The World's Greatest Idea)』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여기서 다윈의 진화론은 7위였습니다. (1위는 인터넷)

 

 이러한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인류 역사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책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과학자의 서재>, <다윈지능>, <통섭의 식탁> 등으로 잘 알려진 이화여대의 최재천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설문조사를 하면 다윈은 몇 등을 할까요? 장담하건대, 100위 안에도 못 듭니다. 한국은 다윈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중요성을 몰라요.”

 

 100위 안에도 못 든다는 말씀이 조금은 지나칠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제 생각에도 우리나라에서 설문조사를 한다면 위의 결과처럼 상위권에 다윈의 이름이 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다윈이 인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단지 그뿐이었죠. ‘진화론’을 주장한 사람.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과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 in the Struggle for Life)』>

 

 이처럼 다윈에 대해 막연한 생각뿐이었던 저에게 이 책 <종의 기원 이펙트>는 상당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분량에 다윈이 어떻게 <종의 기원>을 출간하게 되었는지, 다윈에게 영향을 끼친 것들은 무엇인지, 다윈이 주장한 것들은 무엇이며 무엇이 논란이 되었는지 등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진화론’에 관한 주장을 처음으로 한 사람이 다윈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형태이긴 하나 이미 당시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상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다윈이 1859년에 제시한 개념과 주제 중 많은 것들은 그 당시에도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또 그의 서술 방식은 극도로 온건했다. 그럼에도 『종의 기원』의 출간은 분명히 기원 문제에 관한 논의의 본질을 극적으로 바꾼 크나큰 사건이었다. (p.210)

 

 예를 들어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인 이래즈머스 다윈과 라마르크의 변형주의(transformism)는 이미 1820년대의 급진적인 사상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 학생들의 소모임인 ‘플리니 협회’에서 찰스 다윈과 만난 로버트 그랜트는 라마르크의 변형주의 이론을 토대로 해면동물이 근원 생물이며, 그로부터 다른 모든 생물이 진화하여 ‘진화의 가지들(evolutionary tree)’을 이루었다고 주장했습니다. 1844년에는 스코틀랜드의 언론인이었던 로버트 체임버스가 익명으로 진화에 관한 책 『창조의 자연사의 흔적들(Vestiges of the Natural History of Creation)』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비록 과학적인 내용이 전반적으로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진화에 관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명확했습니다. 그리고 1858년에는 자연학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다윈의 주장과 똑같은 내용의 논문으로 다윈을 무척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 논문에는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이 전개되어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다윈은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서둘러 자신의 논문과 월리스의 논문을 1858년 7월 1일, 영국의 자연사학회인 런던린네협회의 모임에서 함께 발표합니다.

 

 이처럼 다윈이 제시한 개념과 이론은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며,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뒤바꾼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윈의 이론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책의 내용으로 추측건대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시대적 흐름입니다. 다윈의 이론이 세상에 나올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중요했다는 것이지요. 종교의 권위는 예전만 못하고, 산업과 과학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자신감이 충만했던 시기였던 것입니다. 조금씩 사상적인 변화의 조짐도 보였고요.

 

 이렇듯 활력 넘치던 근대 사상가들은 유서 깊은 대학교들에 뿌리 깊이 박혀 있던 설명 체계인 자연신학을 거부하고, 신은 교회의 자질구레한 교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나서지 않고 뒷전에서 다스린다는 더 유연하고 개인적인 견해를 채택했다.

 1850년경 변형 이론은 이렇듯 진취적인 사상가들에게 덜 위협적으로 비추어진 듯하다. 빅토리아 시대 중반 산업과 상업 분야에서 나온 자신감은 1830~1840년대의 폭발할 것 같은 위험한 사회 분위기를 날려버렸다. 번영과 진보가 이 시대의 주제가 된 듯했다. - 중략- 손꼽히는 지식인들 중에 신앙과 불신의 경계를 반드시 뛰어넘은 것은 아닐지라도 자기계발, 경제 발전,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문명의 추진력’이라는 원리를 받아들인 사람이 꽤 많았으며,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처럼 덜 알려진 수많은 인물들이 세속적이면서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를 살펴보고 있었다. (p.97~98)

 

 이렇듯 시대적인 상황과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면서 다윈의 주장은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받아들여지게 되고, 논쟁의 대상이 된 듯싶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다윈의 지인들입니다. 다윈이 다운하우스라는 켄트 주(영국) 브럼리 인근의 시골 마을에서 편지로 세상과 소통한 대신, 찰스 라이엘을 비롯한 그의 친구들이 다윈의 주장을 지지하고, 논쟁을 더 확대하고 심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분야에서 인정받은 전문가였으니 영향력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이 네 사람은 다윈의 증거나 추론에 있는 결함을 지적하면서도 진심으로 다윈을 지지했다. 그들은 제자와 추종자들을 끌어모으고 다윈을 위해 각개전투를 벌이는 한편, 논쟁을 더 확대하고 심화시켰으며, 다른 사상가와 다른 주제와 다른 의미를 끌어들이면서 일심동체가 되었다. 그 점진적인 과정은 결국 문화적 태도와 과학 사유에 주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중략- 이 다윈 동맹의 존재는 아마 그 논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일 것이며, 궁극적으로 진화론이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핵심에는 찰스 라이엘, 조지프 후커, 아사 그레이, 토머스 헨리 헉슬리가 있었다. (p.129~130)

 

 이처럼 시대적 상황과 지인들의 힘, 저는 이 두 가지가 다윈의 이론이 그토록 큰 영향력을 갖게 한 원동력으로 보았습니다. 어쨌든 <종의 기원>은 1859년 11월에 출간되면서 논란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인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요. 자연과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등 수많은 과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다윈의 진화론이 인류역사에 미친 영향력을 생각할 때 반드시 시대의 흐름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진화론의 영향력은 과학과 종교의 범주를 넘어서게 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제레미 리프킨<엔트로피>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중세까지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를 쇠락의 역사로 보았다는 것이죠.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시오도스(Hesiodos)는 <신통계보학 (The Theogony)>에서 인류의 역사를 다섯 시기로 나누어 기술했습니다. 그 다섯 시기는 각각 황금시대, 은의 시대, 청동시대, 영웅의 시대, 철의 시대로 나뉘며, 각 시기는 이전보다 쇠퇴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던 황금시대의 인류는 신들처럼 늙지도 않고 피곤이나 고통도 몰랐으며, 대지는 풍요로워 일하지 않아도 언제나 먹을 것이 넘쳐났던 시대입니다. 반면 가장 쇠락한 시기이자 헤시오도스 자신이 속한 시대인 철의 시대는 낮이고 밤이고 불안하고 피곤할 뿐이며, 인류는 서로를 위하지 못하고 제 앞가림하기에 바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시대의 인류는 무법천지 속에서 불행과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세 시대의 기독교적 역사관(제레미 리프킨의 표현을 빌리자면)은 이 세상의 삶을 다음 생을 향해 가는 중간 과정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때의 세계관은 그리스적 순환 개념은 버렸지만, 마찬가지로 역사를 쇠락의 과정으로 인식했습니다. 모든 일은 전적으로 신의 뜻이라 여겼으며, 역사 또한 신이 만드는 것이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개인적인 목적은 ‘성취’가 아니라 ‘구원’이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18세기 즈음부터 변하기 시작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직선적으로 발전하며, 역사의 각 단계는 그 이전에 비해 진보한다는 사상이 자리 잡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과 세계관이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 더욱 심화되고요. 여기까지가 제레미 리프킨의 주장입니다. 즉 쇠락의 과정이었던 인류의 역사가 진보의 역사로 바뀌었는데, 다윈의 <종의 기원>이 그에 당위성을 부여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레미 리프킨은 이것이 다윈의 이론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에서 쇠락의 과정이었던 인류의 역사가 진보의 역사로 바뀌는 것을 다윈의 진화론이 심화시켰다고 보고 있습니다.>  

 

 19세기 후반기에 선진국들의 지배적인 경제 전략은 『종의 기원』의 영향을 받아 다듬어졌다. 그 책을 자유 기업적인 빅토리아 시대 자본주의에서 번성했던, 경쟁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는 일도 흔했다. -중략- 다윈의 사상은 산업계의 부호들과 공장주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또한, 19세기 말 북아메리카의 산업 발전을 주도하던 기업가, 자선사업가, 악덕 자본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J. D. 록펠러와 철도 소유주 제임스 J. 힐은 ‘적자생존’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p.151)

 

 이처럼 다윈의 진화론은 과학과 종교뿐만 아니라 경제와 인류의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엄청난 변혁을 일으켰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말이죠. 그리고 진화론에 관련된 새로운 학문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최재천 교수님 역시 앞으로는 공감의 시대가 될 것이며, 그 안에서는 다윈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도 하셨고요. 그러면 다윈과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무엇이 필요할까요? 저는 자연과학 기피 현상(대학에서), ‘진화론=다윈’이라는 암기 위주의 교육 방식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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