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 모두 편안히 자리를 잡고 주의 깊게 연설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자 메이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중략>

 “동무들. 우리 삶의 모든 불행이 인간의 횡포에서 생겨난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지 않소? 인간을 제거하기만 하면 우리의 노동 산물은 모두 우리 것이 될 것이오. 하룻밤 사이에 우리는 풍요롭고 자유로워지는 거요.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소? 인류를 전복시키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밤낮으로 노력하는 것. 그것뿐이오! ‘반란.’ <중략>

 그리고 동무들. 여러분의 결심이 절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여러분은 어떠한 논쟁에도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과 동물은 공동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느니. 한쪽의 번영이 곧 다른 한쪽의 번영이라느니 말해도 이에 절대 귀를 기울이지 마시오. 그건 허무맹랑한 거짓말이오. 인간이랑 자기 자신 외에는 다른 어떤 동물의 이익을 위해서도 봉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 동물들은 공고한 단결과 철저한 동지애를 가져야 하오. 모든 인간은 우리의 적이오. 그리고 모든 동물은 우리의 동지입니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中)

 

 위의 내용은 조지오웰이 1945년에 출간한 『동물농장』의 일부분입니다. 이 소설은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에 바탕을 둔 정치우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돼지 메이저는 마르크스 혹은 레닌을 비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어릴 적에 읽었던 『동물농장』으로 인해 칼 마르크스라는 인물은 저에게 이상주의자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1990년대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마르크스는 저에게 이상주의자 그리고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1945년에 출간된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초판과 한글 번역본>

 

 하지만 조금씩 마르크스에 대해서 알게 될수록 저의 생각과는 무척 다르다는 인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현실적인 사람이었으며,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던 사람이었죠. 어찌되었든 저는 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레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를 아는 것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한 사람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는 것이고,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의 저작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마르크스의 저작들은 어렵기로 유명합니다. 특히 『자본론』은 저자 이사야 벌린도 이야기하듯이 무척 어렵습니다.

 

 결국 차선으로 마르크스를 다룬 책을 통해서 마르크스을 알고자 했고, 그중 이사야 벌린이라는 대가가 쓴 『칼 마르크스』를 택했습니다. 사실 마르크스의 인생이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스티브 잡스처럼 극적인 인생을 살지도, 체 게바라처럼 영화 같은 인생을 살지도 않았습니다. 때문에 제가 이 책 『칼 마르크스』에서 알고 싶었던 것은 마르크스가 어떻게 자신의 사상을 구축하고, 어떤 인물과 어떤 사상의 영향을 받았는지, 이러한 것들 이었습니다.

 

 이 책 『칼 마르크스』는 이러한 저의 궁금증에 가장 가까이 있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평전다움’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제가 읽었거나 알고 있는 평전은 일반적인 전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시간과 사건별로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이야기하고 거기에 저자의 생각을 더하는 구성.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다릅니다. 사건과 인물의 행동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시기의 사회적, 역사적 배경이나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끼친 사상, 인물 등이 오히려 큰 비중을 차지하죠. 이 책의 2장인 ‘청소년기’만 보아도 마르크스의 성장과 사건들 보다는 당시의 사회적 배경, 그리고 아버지와 프라이헤르 루드비히 폰 베스트팔렌이 마르크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훨씬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무척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덕분에 저의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이 책의 3분의 1이나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느낀 점은 크게 세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우선 마르크스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대로 ‘실용’과 ‘실천’을 끊임없이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혁명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사상과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도 반드시 실천이 동반되어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실천이 없는 사상은 공허할 뿐이며,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실천이 있어야 서로 확인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필연’입니다. 이는 그의 신념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는 여러 집단의 상호작용에 의해 사회가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붕괴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자본가와 노동자 같은 계급간의 충돌은 ‘필연’적이며, 이러한 이유로 수많은 문제를 갖고 있는 자본주의의 몰락도 ‘필연’적임을 주장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당연한 것에 의문을 갖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너무나 당연시 여기고 있습니다. 감자를 구하러 가는 곳은 밭이나 농장이 아니라 마트에 갑니다. 다른 한 쪽에서는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팔기 위해, 그리고 이윤을 얻기 위해 상품을 생산합니다. 이를 외계인이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니 고대 사람들이 본다면 어떨까요?

 

<칼 마르크스와 『공산당 선언(1848)』, 『자본론(1867)』의 초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에 헤겔주의나 마르크스의 유물론과 같은 마르크스 사상의 세세한 부분은 제가 함부로 평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반드시 알아야 하며, 이사야 벌린의 이 책이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데 무척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는 마르크스에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습니다. 저는 마르크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지금까지 발전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자본주의는 지금보다 더욱 폭주했을 것이며, 지금보다 더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현대미술을 강의하면서 진중권 교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스 제들마이어는 현대미술을 매우 비판한 사람인데, 그럼에도 한스 제들마이어의 방법으로 현대미술을 설명하는 이유는 한스 제들마이어의 ‘부정적인 시각’이 오히려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데 훨씬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어떤 이유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비판했으며 왜 자본주의의 몰락이 필연적이라고 했는지 아는 것은 현재의 자본주의가 문제점을 수정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마르크스는 『진화론』을 저술한 찰스 다윈과 함께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이제는 마르크스를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서있는 빨간(?)인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과 국가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철학자이자 경제학자, 그리고 사상가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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