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이지상 지음 / 삼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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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힘은 본문 사진에 달린 멜랑콜리한 캡션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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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톤 프로젝트 - 1집 유실물 보관소
에피톤 프로젝트 (Epitone Project) 노래 / 파스텔뮤직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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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을 키우고 이화동을 거닐고 제주도에 가고 싶어졌다. 이 앨범을 듣고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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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마종기 시작詩作 에세이
마종기 지음 / 비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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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가 없었다면 한국 시사(詩史)는 반쪽이 되었을 것이다! 행복한 앤솔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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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양장) - 故 김영갑 선생 2주기 추모 특별 애장판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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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산간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리게 하는 색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없다. 코를 막히게 하는 역겨운 냄새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중산간 초원과 오름을 사랑한다.

눈으로 보아도 보이지 않고, 귀로 들어도 들리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것. 형상도 없는데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그 무엇이 중산간 광활한 초원에 존재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것은,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그 무엇이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 나는 중산간을 떠나지 못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영원한 것을 이곳에서 깨달으려한다. 말할 수 없으나 느낄 수 있고, 보이지 않으나 느낄 수 있는,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신비로움을 찾으려 한다. 자연 속에 묻혀 지내며 마음을 씻고 닦아 모두를 사랑하려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영원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느끼고 확인하고 싶다.

안개가 일순간에 섬을 뒤 덮는다. 하늘도, 바다도, 오름도, 초원도 없어진다. 대지의 호흡을 느낀다. 풀꽃 향기에 가슴이 뛴다. 안개의 촉감을 느끼다 보면 숨이 가빠온다. 살아 있다는 기쁨에 감사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도, 끼니 걱정도 사라진다. 곰팡이 피어가는 필름 생각도, 홀로 지내는 외로움도 잊는다. 촉촉이 내 몸 속으로 안개가 녹아내린다. 숨이 꽉꽉 막히는 흥분에 가쁜 숨을 몰아쉰다. 자연에 묻혀 지내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이 기쁨, 그래서 나는 자연을 떠나지 못한다.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에서

 
   



 

▲잔뜩 흐린 바다 위로 내려오는 저 한줄기 햇살은 내 물음에 대한 당신의 대답이었을까.


해안도로는 햇빛이 쨍한데 산간도로를 타고 이곳으로 들어오니 참 이상하네요. 사방은 온통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로 가득합니다. 비도 조금씩 내리는 것 같네요. 당신이 책에서 말했던 중산간의 여우비라는 게 바로 이거였군요. 자욱한 안개 때문에 동서남북이 어딘지 방향감각도 없는 이곳, 파란 하늘이 드러나다가도 금세 안개가 몰려오는 곳, 그래서 토박이들도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들 하는 곳, 그래도 당신은 필름이 곰팡이 밥이 되어도 '내 영혼의 고향'이라고 하던 이곳, 여기는 바로 한라산 아래 해발 500미터 정도 되는 지역을 일컫는 제주 중산간 지대입니다.

당신이 좋아했던 바람과 초원과 오름이 있는 이곳. 저는 당신이 훔쳐보았다던 중산간의 황홀경을 보기위해 여기에 섰습니다. 오늘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성산에서 민박을 했던 주인집 아주머니가 위험하니 올라가지 말라고 했지만, 기어코 올라와 당신 사진에 담겨있던 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 영화 <이재수의 난>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아부오름, 그리고 당신이 살았던 구좌읍 대천동 중산간 마을까지 둘러보았습니다. 도로를 타고가다 마치 꿈처럼 나타나는 산속 작은 마을에서 발견한 '대천동'이라는 이정표에서 드디어 당신의 영혼에 제가 가까이 왔다고 느꼈다면 너무 과장일까요.


▲중산간 지대는 안개로 자욱했다.
분명 이 앞에 오름이 보여야 할 텐데 보이지 않으니 참 답답했다.
  

대천동 마을 주변에서는 사시사철 억새를 볼 수 있다고 책에 썼었지요? 8월이면 키가 2미터 가까이 자란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그것들을 볼 수가 없네요. 역시 안개 때문이죠. 사실 아까 이곳을 둘러보았다고 했는데, 사실은 보지 못했어요. 저 같은 이방인에게 중산간의 초원과 오름들은 쉽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20년간을 머물며 겨우 훔쳐본 이곳의 황홀경, 제주사람이 되기 위해 처음 5년간 하늘길이 아닌 바닷길로 육지를 오간 그 길을 시속 800km로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를 타고, 시속 60km로 내달리는 스쿠터를 타고 편히 달려온 제가 그 황홀경을 한 번에 보려 했다면 너무 과한 욕심이었겠지요.

올라서면 광활한 중산간의 동부 오름들과 멀리 성산일출봉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하여 '오름의 제왕'이라 불린다는 다랑쉬오름에 올랐습니다. 비자림에 들렀다가 주변에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한참동안 헤매다가 챙겨왔던 정밀지도를 보고 겨우 찾아낸 다랑쉬오름은 안개 때문에 위치를 찾아내고도 이게 오름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길을 따라 오르면서 점점 높아지는 오름의 등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지요. 오름도 작지만 화산이기 때문에 중간에 분화구가 있을 텐데, 정상에 올랐어도 전혀 아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계속 걸으면 원점으로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내가 지금 오름 정상에 올라 분화구 주위를 한 바퀴 돌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뿐이었죠. 당신도 이렇게 안개로 가득한 분화구 주위를 한 바퀴씩 돌곤 했었나요?

 

▲다랑쉬오름 오르는 길. 오름은 쉽게 자신의 등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랑쉬오름 정상. 올라도 보이는 것은 안개뿐이다.



▲다랑쉬오름 정상에 핀 야생화.

민박집에서 잠들기 전에 조금씩 다시 읽곤 했던 당신의 책을 김포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다시 펼쳐봅니다. 그 안에는 내가 그 땅에 서고도 보지 못했던 제주의 아름다움, 당신이 훔쳐본 그 원초의 신비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나가다 슬쩍 보는 여행자의 시선이 아닌, 무수히 많은 시간을 기다리면서 치열하게 그 속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했던 한 가난한 사진쟁이의 시선으로 본 세계였습니다. 당신이 어렵게 찾은 그 세계를 나는 너무도 쉽게 보려 했습니다. 병든 당신이 그 영원의 세계로 돌아가기 몇 해 전에 세운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두모악 갤러리에서 당신의 사진들을 보며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밥 굶어가며 산 필름으로, 형제자매와도 단절하고, 철저하게 혼자서 자신을 고독으로 몰아넣으며, 수도승처럼 그것도 20년간 안개 자욱한 중산간에서 당신이 찾아 헤맨 것은 무엇입니까. 그걸 찾았나요? 제주도는 당신에게 무엇이었나요?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 그가 죽기 몇 해 전에 손수 세운 전시장이다.
이곳은 원래 삼달초등학교로 폐교되면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갤러리로 꾸며졌다.

 

▲갤러리 내에 있는 김영갑의 자화상.
바로 저 뒤의 오름이 부드러운 곡선을 자랑하는 용눈이오름이다.



▲갤러리 내부. 여기에는 제주의 바람과 오름 중산간 초원이 펼쳐져 있다. 

 

   
 

당신이 쓴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옆구리에 끼고 훌쩍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당신의 사진 속에 담긴 제주 중산간 지대의 황홀경을 보기 위해서요. 방금 당신이 살았던 구좌읍 대천동 중산간 마을과 또, 당신의 사진 속에 담긴 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 아부오름을 둘러보고 오는 길입니다. 그런데 안개 때문에 제대로 봤다고는 못하겠네요. 하지만, 사방의 그 안개 속에서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여기' 있었겠지요? 이 섬에 당신이 있었고, 지금 그 섬에 내가 있습니다. -2009년 8월 7일 두모악에서.

 
   

 ▲두모악 갤러리 방명록에 남겨놓은 남긴 글. 그냥 떠나오기가 아쉬워 몇 자 적어 놓았다

 



▲두모악 갤러리에서 받은 김영갑이 찍은 사진이 들어간 엽서.
겨울 오름 위로 한줄기 햇살이 내려오고 있다. 

 

갤러리에서 표를 끊으니까 당신이 찍은 오름 사진이 박힌 그림엽서를 하나 선물로 주었습니다. 엽서 속의 오름은 눈 내린 겨울 오름이었는데, 그 오름 위로 잔뜩 흐린 하늘에서 햇살이 한줄기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두모악을 뒤로하고 표선 해안도로로 내려오면서 잔뜩 흐린 바다로 내려오는 한 줄기 햇살을 보았습니다. 마치 그것은 꼭 내가 두모악에서 당신에게 물었던 물음에 대한 어떤 답을 당신이 주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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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새들아 - 자기파괴적 녹색성장의 시대를 우려하는 진정한 녹색 신음소리
최성각 지음 / 산책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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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참으로 이상한 날이었다. 깊은 밤, 마당에서 난데없이 새소리가 들렸다. 아기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갸르릉, 갸르릉’ 하는 가느다란 소리였는데 너무나 애절하고, 안타깝고, 앙증맞고, 자지러질 것만 같은 소리였다.
손전등을 들고 마당에 나가 나는 소리가 나는 곳에 귀를 모았다. 나는 처음에 깊은 밤, 아주 작은 새 한 마리가 다쳐서 내는 신음소리인 줄 알았다.
손전등 불빛으로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더니, 그것은 다친 새도 아니었고, 도마뱀도 아니었고, 다람쥐는 더구나 아니었다. 그 소리는 두꺼비가 내는 소리였다.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불빛을 받고 놀란 수컷 두꺼비는 좀 겸연쩍고 당황스럽다는 자세로 뻘쭘하게 앉아 있는데, 그놈 아래 깔린 암컷은 사지를 길게 뻗고 아예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이놈들도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성각,《날아라 새들아》 <봄이 오니 마당의 짐승들도 바빠지네> 중에서.

 
   

 대학에서 적당히 폼도 좀 잡으면서 강의도 하고,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도 하며, 동네 문화센터에서 시 창작 강의니, 소설 창작 강의 같은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사람 참 미련하다. 아니 이 사람들 참 미련하다. 환경 운동한다고 시골에 풀꽃평화연구소인가 뭔가 차려놓고 앞마당에 거위를 키운다는 최성각 같은 사람 말이다. 이런 사람 또 있다. 강화도 동막리로 들어가 뱃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시인 함민복이나,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사는 이원규 시인 같은. 도시와는 다르게 밤이면 불빛 하나 없이 암흑이 되는 촌구석에서 그들은 지금 과연 무얼 하고 있을까. 그들 역시 위에서 인용한 글처럼 지금 밖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의 근원을 찾다가 바닥에 털썩, 하고 주저앉는 그런 이상한 밤을 보내고 있진 않을까.

 
▲왼쪽부터 최성각, 함민복, 이원규. 이들은 소설이나 시를 쓰는 등단한 '문인'이지만, 문창과에서 적당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겸임교수니, 전임강사니 하는 명함을 갖고 살 수 있었을 텐데도 각자 꿈을 품고 촌구석으로 들어가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다. 이들이 꿈꾸는 세상 역시 새들이 하늘을 날고 냇물이 물길을 따라 달리는 그런 소박한 세상일 것이다. 

 
최성각이 쓴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라는 소설을 기억한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소설인데, 동네 뒷산 약수터에 자물쇠를 채워놓고 물을 독점하는 사람들과 깨끗한 물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의 초상을 냉소적으로 비꼰 소설이다. 문학평론가 이남호는 이 소설을 환경소설로 분류했다. 우리 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환경문제를 다룬 점에서 크게 주목한 모양이다. 이전에도 김원일의 《도요새에 관한 명상》이나 한정희의 《불타는 폐선》같은 환경소설이 있었지만, 최성각은 소설에서 그치지 않고 그 판을 박차고나와 진짜 환경운동가가 된 특이한 경우다. 대부분 '나 환경소설 씁네' 하면서 폼 잡고 '문인'으로 잘 살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최성각은 작가로서 절박하다고 여기고 쓰는 모든 글을 '문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간 '문인'이라 불리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설, 희곡, 시 이외의 글쓰기는 대개 하찮게 여긴다. 가령 에세이 같은 장르는 '잡글'이라 평하며 문학으로 치지도 않는다. 최성각은 소설을 그만두고 환경 판에 나와 현실적인 환경 문제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에세이로 풀었는데, 문학기자 그 누구도 그의 첫 산문집 《달려라 냇물아》(녹색평론사)를 서평에 올려주지 않았다. 아직도 우리 문학판을 지배하는 것은 소설, 시 따위의 근엄한 문학 장르다. 최성각은 주변 문인들이 '소설이 안 되니까 환경운동하며 에세이를 쓰는 거 아니냐' 하며 비아냥거리는 것도 봤다고 한다. 그러나 최성각은 한국 소설은 김영현에서 이미 끝났다고 선언하며, 심하게 말해 지금 문인들은 근대 산업사회의 나팔수로 전락했다고까지 말한다. 또한, 장르에서 벗어나 논픽션 장르의 새로운 장을 연 레이첼 카슨이나 자연주의의 대부 헨리 데이빗 소로우, 《수탈된 대지》로 유명한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스스로 잡문가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은 루쉰, 멕시코 사파티스타의 부사령관 마르코스, 혁명가 체게바라, 우리나라의 권정생 선생 같은 분들이 위대한 작가라고 말한다.
 

▲유럽과 미국에 의해 수탈되어 온 라틴아메리카의 500년사를 기록한 《수탈된 대지》의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그 이전에 썼던 3부작 서사시《불의 기억》은 '따님'이라는 한 가난한 일인 출판사에 의해 출간 되었다. "나는 역사가가 아니지만, '작가'로써 빼앗긴 라틴아메리카의 기억과 그 땅과 이야기를 나누고 비밀을 공유하고 싶었다"라고 말하는 갈레아노는 스페인어나 영어권에서 이미 위대한 지성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등단한 작가가 아니고 더군다나 소설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면받은 진짜 '작가'중 한 사람이다.

 
자신이 키우던 거위들과 앞마당에서 장난을 치던 도중에 돌연 수컷이 암컷 거위에게 달려들어 교접을 시도하다 실패하는 장면을 멍하니 주저앉아 지켜보던 최성각은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때는 봄이 막 몰려오는 시절. 그날 밤, 밖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나가 보니 두꺼비 암놈과 수놈이 교접하고 있다. 아직 봄이 채 오지 않은 서늘한 봄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짐승들의 교접을 지켜보며 춘정(春情)에 젖는 이 사람, 참 매력 있다. 어떤 위대한 소설이나 시들에서 느끼지 못했던 전율이 이 장면에서 나에게 왔다. 환경운동을 하지만 차를 환장하게 좋아해 지프차를 몰고 다니고, 자판기 커피에 있는 대장균보다 위 속에 있는 위산을 더 신뢰할 정도로 '다방커피'를 좋아한다는 이 사람, 아파트 주차장에서 경비원이 비싼 외제차는 놔두고 좀 안 좋아 뵈는 차주에게 연락해서 차를 빼달라고 하자, 보통사람이 왜 보통사람을 차별하느냐며 아침부터 '지랄'을 해대는 이 사람이야말로 어깨에 잔뜩 힘주고 다니며 문학이 어떻고, 예술이 어떻고 떠드는 사람들보다 더 진실에 가깝게 있는 것 같다. 

 환경쟁이 최성각이 바라는 세상은 뭐 그리 거창한 세상이 아니다. 새들이 하늘을 날고 마음 놓고 냇물이 내달릴 수 있는 그런 세상, 이 책에는 최성각의 그런 소박한 희망이 오롯이 담겨있다. 퇴근길 버스에서 이 책을 읽었다. 100km로 질주하는 버스, 그것도 만원버스에서 서서가며 바라본 창밖 한강하구의 물은 자유로에서 달리는 버스와는 다르게 시원스레 달리지를 못했다. 버스는 일산대교를 지났고, 새로 건설된 일산대교로 서식지를 잃어버린 새들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날아라 새들아!' 어린이 날 노래에 나오는 이 순진한 말이 가슴깊이 와 닿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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