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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너에게
벌리 도허티 지음, 장영희 옮김 / 창비 / 2004년 10월
평점 :
나는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비단 교육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무엇보다 그들을 결정적으로 다르게 만드는 요인이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고.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결정적 요인을 짚어 낸다.
풋풋한 첫사랑이었어야 할 크리스와 헬렌의 관계는 단 한 번의 관계로 잉태된 새 생명에 의해 텁텁한 현실이 되고 만다. 이것을 부인하고자 하는 크리스는 유럽 여행을 떠나고,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헬렌은 '이름 없는 너에게'라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안으로의 도피를 떠난다.
여성은 몸 안에 아이를 담는 존재이기에, 훌쩍 떠날 수 있는 남성과 달리 24시간 아이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크리스는 훌쩍 떠나는 것도, 잊어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새로운 존재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것을 몸으로 체감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래서 머리로 아는 지식과 몸으로 체득하는 것은 효과가 다르다. 그리고 이것은 여성이 강한 어머니가 될 수밖에 없는 요인이기도 하다. 24시간을 9개월 동안 꼬박 몸 안에서 자라고 태동하는 존재임을 느끼기에.
여성의 생애 동안 그보다 다른 존재와 함께 더 강한 동거를 해본 적은 없으리라. 비단 가족이라 할지라도 아무것도 아닌 미약한 수정란에서 하나의 사람꼴을 갖춘 존재가 만들어지는 느낌은, 그것이 자신의 몸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실감하는 것은 오직 어머니와 자식의 유대에서만 가능한 체험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바로 성의 차이를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헬렌은 결국 크리스와의 이별 대신 '에이미'와의 평생을 택한다. 이제 그들에게는 어떤 앞날이 펼쳐질까. 가장 치열하게 본인을 키워나가야 할 20대에, 자신뿐만이 아닌 또 하나의 새로운 존재까지 키워나가야 할 헬렌에게 꼭 그만큼 두 배의 성장을 통한 멋진 홀로서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크리스는...아아 온갖 애증이 교차할 뿐이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듣는 순간부터 꼭 한번 읽고 싶었다. '이름 없는 너에게'라는 제목 자체의 매력 때문이다. 영문 제목인 'dear nobody'와 비교하면 한국어 제목은 그래서 더욱 빛난다. 책의 초반에서 사라져야할, 없애버리고 싶은 존재였을 때의 아무것도 아닌 새생명이 '에이미'라는 이름을 가진 축복받은 존재가 되기까지의 헬렌의 마음 변화를 담은 것은, 그리고 결국 헬렌이 가장 지키고 싶은 존재였음을 드러내는 따뜻함을 담아내는 것은 한국어 제목 쪽이 더 적합한 느낌이다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덮은 순간에도 한번쯤 읊조려보게 되는 이름 없는 너에게...결국 잘 만든 제목이 책 전체의 이미지마저 결정할 수 있다는 진리를 새삼 깨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