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뵘 - 요한 스트라우스 : 박쥐 - 한글자막 포함
칼 뵘 감독, 요한 슈트라우스, 빈 필하모닉 (Wiener Philharmoniker) 연 / 유니버설뮤직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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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레타의 역사는 20세기에 들어와 고전 영화의 역사가 되었다.

토오키가 개발되어 드디어 영화관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바로 영화로 각색된 오페레타였다.


오페레타가 곧 현대 대중음악의 직접 조상이라는 설명을 비너 블루트의 영상물을 리뷰하면서 한번 설명한 바 있으나 박쥐에 대한 설명,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 대한 설명에 이르러서는 아얘 대중문화 전반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다.

오늘날 국제 대중문화는 이른바 Mainstream이라고 불리는 주류 산업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주류산업을 지향하는 산업구조를 지녔다.

 

한류가 시끌시끌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런 국제 대중문화 산업구조가 사회적 관심사가 되었는데, 통상 라디오의 출현으로 매스 미디어와 만나므로서 거대 국제산업화되었다고 한국에서는 흔히 얘기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무리들이 주로 주워 듣거나 대중문화에 대한 전문적인 서적 한번 읽어보지 않고 흔히 떠벌리는 소리다.

듣기에만 그럴싸한 설명으로서 장삿꾼이 자기가 파는 물건을 모르는 증거일 뿐이다.

 

이미 국제 대중문화의 주류 산업계 (Mainstream Industry system)는 19세기 후반부터 출현했고, 19세기 말에는 대중문화 전체를 거대 산업화로 이끌어어가던 중이었다.

그리고 청일 전쟁이 나기도 전에 벌써 국제적인 대중문화 흥행산업의 기본 구조를 갖췄고, 20세기 초엽에는 현재와 같은 형태의 국제 대중문화 흥행산업이 완비되었다.

 

다른 점은 오직 전기신호 기술과의 만남이 이뤄지기 전이었다는 차이 뿐이다.

전기신호를 활용한 음반의 보편화와 라디오 방송의 시작 등이 이뤄지기 직전이었으며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가 이제 겨우 등장하여 기존의 공연장들이 영화관 역할을 겸하는 정도가, 매스 미디어의 여명기였던 당시의 풍경이었다.

이러다 보니 활자매체를 통한 언론 기사로만 세인들에게 홍보하고, 세인들의 관심을 끌어야 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장사 중 가장 비중이 큰 영업 형태가 공연 자체에만 전적으로 몰입하는 형태여야 했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다.

그러나 이 차이라는 것을 잘 보면 활용하는 매체가 활자에서 전기신호로, 전기신호에서 데이타로, 다만 매체의 전파 수단만 바뀌었다는 사실 외에는 결국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지금도 차이없는 국제 대중문화 산업구조는 바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에서부터 시작이 되었고, 20세기 이후 영화 제작을 통해 현대 대중문화의 국제시장이란, 무슨 물건을 잘 팔아야 그 중에서도 주류 업계에서 부와 명성을 누리며 장사를 하고, 그런 물건을 장사하자면 무슨 재주로 그런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도 이 박쥐를 통해 확립된 것이다.

 

마침내 토오키가 보급되자마자 독일어권 만이 아니라 구미의 모든 영화 제작자들은 당장 팔아먹기 쉬운 영화는 바로 음악영화임을 거의 본능에 가깝게 직감했다.

이 후 독일어권 만이 아니라 그 때부터 영화 좀 만든다는 유럽 국가들은 당대에도 여전히 인기를 구가하던 비엔나 오페레타들의 영상화 경쟁을 벌였고,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하다못해 유사품 영화라도 찍어내었으니 초창기 헐리우드 뮤지컬 영화는 그렇게 보드빌 영화로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2차 대전 이후 현재까지 세계 대중문화 산업에서 표준으로 통하는 것들이 나왔다.

 

우선 비엔나 오페레타의 영화화는 본격적인 현대 대중문화 산업 내에서도 주류 (Mainstream)가 되는 업계란 무엇을 사고 파는 업종인가 하는, 현재 상식적으로 한국 사회에도 알려진 표준을 제시했다.

 

화려한 관현악 사운드를 보다 잘 들려주자니 유서깊은 AV 업계의 브랜드들이 이 때 큰 혜택을 입었고, 영화 제작용 카메라 업체들이 이 때를 성장의 호기로 삼은 결과 ARRI 같은 회사는 현재도 전 세계의 영화 로케 현장에서 표준 장비로 군림하고 있다.

 

아울러 프랑스와 미국에서는 현대 코메디 영화, 헐리우드 뮤지컬의 모든 것들이 이 때 독자성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른 오늘날 우리가, 다소 터무니없더라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헐리우드 영화와 뮤지컬, 컨템포러리 팝이라고 부르는 음악들, 극 중 캐릭터들의 설정 방법,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제작진들과 제작진들의 직함 등도 모두 오페레타 박쥐의 제작, 초연, 수정 및 재상연 등의 과정을 통해 보급되었다.

 

심지어 대중음악의 흥행 장사에서 금기사항도 오페레타 박쥐가 가르쳐 주었다고 해도 좋다.

너무 진지하거나 심각한 내용, 다소 간이라도 복잡한 줄거리 전개, 관객들이 따라 부르기는 너무 어렵다거나, 편곡해서 춤추는데 옮기기 적합치 않은 음악, 특정한 문화권이나 사회여야 제대로 알 정도로 너무 강한 정체성 따위는, 적어도 주류  대중문화에서는 뭘 만들어도 자제해야 할 일 내지는 달리 다듬는 절차를 거쳐야 할 것들로 통한다.

 

이렇게 세계 대중음악사상 지금도 지속되는 그림자를 드리운 오페레타 박쥐가, 또한 워낙에 메가히트작이기도 하다 보니, 상영관 전용 영화로, TV 방송용 영화로 무수히 만들어지더니 마침내 1960년대와 70년대를 통해 더 이상 벨칸토 창법도 쓰지 않는 연출판도 나왔고, 제임스 라스트와 폴 모리아, 만토바니 등의 팝 오케스트라 편곡판까지 나왔다.

단순히 극 중 일부 곡들의 발췌 편곡이 아니라 오페레타 박쥐의 전곡이 모두 편곡되어 무대에도 올랐던 것이다.

이 지경이다 보니 과거의 우수한 영상물들이 얼마든지 많다.

그럼에도 유독 본 영상물을 강추하는 까닭은 현대적인 입체 음향과 영상 등을 즐길 수 있으면서 이 박쥐의 음악 만이 아니라 연출, 분장, 노래, 연기 등을 모두 조화시켜 캐릭터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보면 본 영상물은 오페레타 박쥐의 표준처럼 여겨도 좋을 정도여서다.

 

아이젠슈타인을 연기한 에버하르트 배흐터(Eberhard Wachter)는 전형적인 부유층 건달 노릇을 정확히 해석했다.

양반다우면서도 풍류와 여인을 쫓는 일에 관한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 군상이기도 하고 적당히 속물이면서도, 세인들이 결코 미워하지 않을 법한 캐릭터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웃겨야 연기가 되는가에 대해 거의 표준을 제시했다.

 

로잘린데를 연기한 군둘라 야노비츠(Gundula Janowitz)는 영상 중 특히 헝가리 백작부인으로 위장하고 부르는 노래는 실로 표준이라고 할 만하다.

다른 많은 영상물과 공연 사례 중 노래만 해도 군둘라 야노비츠에 비해 가창력이 부족치 않으면, 대개 약간 노래가 굼떠 장단감과 그 때문에 살아나는 박진감을 키운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런데 동시에 하는 연기에서조차 군둘라처럼 아무리 헝가리 백작부인으로 위장해도 자신의 정체가 억척 주부임을 미처 숨기지 못하는 코믹 연기를 효과적으로 한 사례가 많지 않으며 지금은 더욱 없다.

당장 본 영상물에서 보여주는 군둘라아의 연기는 차라리 한국의 드라마에 억척 아줌마로 나와도 모자람이 없을 지경이다.

그런 연기의 절정은 바로 아델라 역을 맡은 레나타 홀름(Renata Holm)이 자칭 헝가리 백작부인의 정체를 모른 채 아이젠슈타인에게 "꼬리 잘못 쳤다가" 로잘린데에게 호되게 당할 뻔하는 대목과 노래하는 동안 내내 계속된다.

 

그 아델라 역을 맡은 레나타 홀름(Renata Holm)의 연기 역시 만만치 않아서, 로잘린데에게 호되게 당한 직후 쩔쩔매는 연기는 한국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연기력이어서, 본 영상물을 보다보면 연기지도와 연출 등의 감독은 한국인이 하고 일부 배역들도 한국인 성악가 시켜도 오히려 비엔나에 역수출을 할만한 물건도 나오겠다 싶을 지경이다.

 

심지어 이 영상물은 오를로프스키 역까지도 남자인 볼프강 빈드가쎈(Wolfgang Windgassen)이 맡아 차별화시킴과 동시에 효과를 더 극대화시켰다.

통상 이 배역은 바지 역할이라고 하여, 여자 성악가가 남장하는 것이 관례인데, 놀랍게도 이 영상물에서는 그냥 남자도 아니고, 아얘 배나온 중노년으로 캐릭터를 재해석한 것이다.

그 결과 오히려 놀라운 효과가 나왔다.

약간 걸걸한 목소리로 연기하고 배 나온 중노년다운 오를로프스키 연기는 오페레타 박쥐는 일단 상류층을 웃음꺼리 삼는 재미가 있고나서 볼 물건임을 가장 강렬하게 각인시켜준 것이다.


칼 뵘이야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다만 아쉬운 것은 칼 뵘은 역시 이런 대중음악과 친하기에는 다소 무겁고 진지한 지휘자라는 사실이다.

그의 모차르트도 다소 무거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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