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마이 페어 레이디 : 50주년 기념판
조지 쿠커 감독, 오드리 헵번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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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비엔나 오페레타 몇 편의 리뷰를 하면서 그 종착지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무대로, 헐리우드의 스크린 속이었음을 반복 확인해왔다.

그간 미국 대중문화의 발생 경로를 그렇게 추적해왔다면 이제는 그 결과를 확인해보는 셈이 된다.

물론 그렇게 따지면 이미 리뷰를 했던 뮤지컬들만 해도,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 남태평양 등으로 확인되지만, 마이 페어 레이디도 만만치는 않은 편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그 흔적을 굳이 찾자면,  버나드 쇼의 희곡 중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스토리를 지닌 피그말리온을 각색했다는 사실

비엔나 오페레타들의 가장 큰 재미는 터무니 없거나 복잡한 남녀관계 끝에 다 좋게 끝나버리는 점이다.

즉 시종일관 어쨌건 터무니가 있어서는 재미가 없는 셈이다.

그 점에서 피그말리온을 선택했음은 영어권 국가가 비엔나 오페레타와 같은 것을 나름대로 만들 좋은 근거였겠다.

 

또 한가지 흔적은 바로 희대의 비엔나 오페레타였던, 레하르 작곡의 Merry Widow가 남긴 영향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점이다.

시대 배경도 메리 위도우와 동일한 시대였던 20세기 초엽으로 설정되므로서, 자연히 그 시대 의상들로 구성된 패션쇼를 겸하게 되어버렸다.

20세기 초엽 메리 위도우가 그 시대 여성 패션과 소품들의 대유행을 일으켰던 것과는 반대로 마이 페어 레이디는 그 시대 여성 패션과 소품들의 패션쇼를 스크린을 통해 상기시켜 영화를 히트시켰던 것이다.

 

이런 증거는 하나가 더 있다.

바로 메리 위도우가 20세기 초엽 당시 세계에서 가장 히트쳤던 나라가 바로 영국과 미국이었다.

영국에서는 길버트와 설리번 콤비의 속칭, 사보이 오페라들이 연쇄 부도가 날 지경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생기기 전에 이미 브로드웨이를 초토화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무성영화시절부터 세계에서 가장 먼저 영화로 각색되었던 나라와 가장 많이 영화로 리메이크했던 나라가 미국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당대 최고 인기 배우들만 출연했다.

1925년에는 메 머레이가, 이어 1934년에는 세계 영화배우 역사의 조상님으로 평가받는 모리스 슈발리에와 자넷 맥도날드가 출연하였고, 1952년에는 라나 터너가 출연했다.

 

세월이 흘러 현대 미디어의 핵심이었던 영화가 발전하자 영어권의 대중문화 관계자들과 제작자들은 메리 위도우의 런던 폭격과 뉴욕 폭격을 아마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이 페어 레이디는 그런 것들을 알고 비엔나 오페레타들의 영상물들을 본 후에 보면, 진정 아는 만큼 보여준다.

사운드 오브 뮤직도 마찬가지이고 다른 브로드웨이 고전 뮤지컬들도 마찬가지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 비엔나 오페레타 새장사에 알프스와 오스트리아에 대한 미국인들의 여러 환상을 마음껏 섞어 연출되었다면, 마이 페어 레이디는 딱 레하르의 메리 위도우를 모델로 연출되었다.


마이 페어 레이디는 그 점에서 세기 초 비엔나 오페레타의 영향이 적잖이 노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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