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나도 그중 한 명이다) 해피엔드를 싫어한다. 우리는 속았다고 느낀다. 가해가 규범인데. 파탄의 길이 가로막히면 안 되는데, 산사태 때 산이 움츠린 마을을 불과 2, 3피트 남겨놓고 무너지기를 그만둔다면, 산의 행동은 비정상적일 뿐 아니라 비윤리적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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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는 날것이 전혀 없다. 익힘에 너무 가까운 언어. 말해진 것은 모두 익힌 것이다. 언어는 언제나 너무 늦게 우리에게 온다. 우리 안에는 선사시대, 즉 음악의 고어가 있다. 목소리보다 귀가 수개월 앞선다. 지저귐, 흥얼거림, 울음소리, 음성은 거의 분별 있게 분절된 언어보다 몇 달이나 몇 계절 앞서 우리에게 온다. 그것이 첫 번째 허물 벗기였다. - P26

매우 주의 깊게 기다림에 귀 기울이기. 주의 깊게 음악을 듣기. 그것은 긴 시간의 한순간을 운명의 은혜로 만드는 일이다. 일종의 시간 기다림을 통해 시간과 즐기는 일이다. 권태를 즐기는 일이다. - P68

그는 비파를 켜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노랫소리가 입술에서 잦아들 무렵 성련의 모습이 슬며시 물 위에 나타났다. 백아는 성련이 장대로 미는 배에 올라탔다. 백아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가 되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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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안에서 스스로를 포식자라고 최면을 거는 소녀와 포식자가 되는 것으로 생존하려는 소년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보호자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하므로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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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을 읽던 초기에는 작가의 인간으로서의 성과나 능력에 경외심이 들었었고, 나도 정신을 차리고 싶었지만 내 정신은 내 안에 있으니 내가 쉬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는 단지 관능인 삶 또는 관능이 이끄는 삶을 살면서도 스스로를 동물과는 분리된 인간 종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 근원적 오류였다는 자괴감에 괴롭기도 했었다. 그러고는 내 삶의 방식도 조금씩 바뀌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읽으면서는 작가님의 많은 글들을 통해 만났던 그 지점에 감격하기도 하고, 미쳐 닿지 못했던 곳으로 가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벅차기도 했다. 짧은 글들이지만 쉬이 읽을 수 없는, 멀리 뻗어나가 시공간이 가득히 경험되는 읽기였다. 삶을 마주하게 하는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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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을 읽던 초기에는 작가의 인간으로서의 성과나 능력에 경외심이 들었었고, 나도 정신을 차리고 싶었지만 내 정신은 내 안에 있으니 내가 쉬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는 단지 관능인 삶 또는 관능이 이끄는 삶을 살면서도 스스로를 동물과는 분리된 인간 종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오류였다는 생각에 몹시 괴롭기도 했다. 그러고는 내 삶의 방식도 조금씩 바뀌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렇게 읽어왔던 작가님의 많은 글들이 생각이 났다. 나를 살게 하는 글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일 년, 길게는 칠 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 P12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 P12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주는 거예요. 거울로 반사시켜서.

*

그렇게 내 정원에는 빛이 있다.
그 빛을 먹고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잎들이 투명하게 반짝이고 꽃들이 서서히 열린다. - P96

5월 1일

대문을 들어서면 라일락 향이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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