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Omer Z. 리반엘리 지음, 고영범 옮김 / 가쎄(GASSE)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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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막심 고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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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들판이 있다
모든 선과 악에 대한 생각들 너머에
거기서 그대를 만나리














내가 필요로 하는 건 지금의 이 ‘앤젤‘이 아니라,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다른 천사였다.

그 여자의 존재는 지금과 다른 삶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상징했다. 그 여자가 이들 가운데로 오는 것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희망 없음과 상처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일일뿐이었다. 그 여자가 자신의 개인 제트기를 타고 원래의 편안한 생활을 향해 떠날 때, 이곳의 난민들은 밤새 피워둔 난로에서 나온 유독가스에 질식해서 숨진 아이들을 땅에 묻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P98

이런 식의 은어적인 표현은 내 안에서 불안정함과 무지에 대한 감각을 일깨운다. 나로선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왜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손상시키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어찌 됐든 내 안에는 경멸만 가득 차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 P105

눈에 보이는 거라곤 사람처럼 보이는 어떤 생물 안에 들어앉아 있는 괴물밖에는 없는 거예요. - P131

동료 인간과 지구를 파괴하고 있는 인류는 이 지상에 살 권리가 없어, 나는 생각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각각 괴물이 살고 있는 거야. 또한 생각했다. 질란, 네르기스, 멜렉나즈를 비롯한 저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두 동물이었고 우리 또한 이 끔찍한 인간이라는 종이 아니었다면 그 사람들은 이런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됐을 거야. 우리는 우리가 다른 동물군이나 식물군에 비해 훨씬 더 진화되었다는 생각으로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높이 평가하고 있는 이런 식의 생각은 그러나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 - P135

질란과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로, 모든 것이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나는 항상 해오던 걸 한다. 걷고, 말하고, 먹고, 내가 해오던 모든 걸 한다. 그러나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나는 이 모든 걸 공허함을 느끼면서 한다. 저 안 깊은 곳에 텅 비어 있는 공간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함이다.  - P152

이건 내가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서다. 인간이라고 불리는 존재들 사이로 다시 돌아가 같이 살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인간을 장악하고 있는 하레세, 사막의 짐승한테 그랬듯이 우리의 입속을 피투성이로 만들고 있는 그것을 나 자신으로부터 제거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한때는, 나는 사람이었다!" 라고 중얼거리는 나 자신을 종종 발견한다. - P153

나는 변했다. 마르딘이 나를 변화시켰다. 나는 그곳의 사람들은 그토록 고통받고 있는데 여기 사람들은 이스탄불에서 제일 맛있는 스시를 먹을 수 있는 식당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쇼핑센터들로 몰려다니면서 소비와 서구화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 광분하는 도시형 인간들을 많이 목격하면 할수록, 내 눈에는 신자 산의 협곡에 버려진-이미 사체를 탐하는 동물들에 의해 갈가리 찢겼을-어린 소녀의 몸뚱이가 더 자주 떠올랐다. - P187

나는 동정을 원하지 않아요, 나는 다른 누군가가 나에 대해 미안하게 여기는 것 필요하지 않아요, 동정은 잔인함의 한 부분이에요, 나하고 내 아이는 그 대상에서 빼주세요. 동정은 잔인함으로 생긴 상처를 아물게 하지 못해요. - P195

어쩌면 내가 도와주고 싶은 대상은 당신보다 나 자신일지도 몰라요. 나는, 다시 한 번,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길 원해요. 난 네르기스가 치료를 받는 걸 원해요. 내 안에서는 아주 깊은 불안이 나를 흔들고있어요. 이 불안이 나를 서서히 죽이고 있어요. - P209

일곱째 날, 당신은 하려 했던 일을 모두 마치고 잠시 휴식에 들어갔어요. 어쩌면 그 일곱째 날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죄 없는 자들의 고통에 찬 비명이 당신한테 도달하지 못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이 좋았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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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를 일컬어 사막의 배라고 하지 않나? 이 축복받은 짐승은 워낙 강인해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몇 주 동안이고 사막을 걸어갈 수 있지. 그런데 이놈들은 모래 속에서 자라는 한 가지 특정한 종류의 엉겅퀴를 아주 좋아한다네. 그래서 이걸 만날 때면 걸음을 멈추고는 뜯어먹기 시작하는데, 그걸 씹는 동안 억센 가시가 입안을 온통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놓게 되지. 이때 입속에서 흐르는 피의 찝찔한 맛이 엉겅퀴의 맛과 섞이게 되는데, 낙타는 바로 이 맛을 너무나 좋아한다네. 그놈들은 씹으면서 피를 흘리고, 피를 흘리면서도 씹지. 낙타는 이거라면 한도끝도 없이 먹으려 들어 억지로 그만두게 하지 않는다면 아마 과다출혈로 죽을 때까지 계속 먹을 거야. 이게 바로 ‘하레세‘ 라네. 내가 이미 말했지만, 이게 바로 탐욕, 욕심, 게걸스러움을 일컫는 우리 말의 뿌리일세. 그리고 이게 바로, 젊은이, 중동이 걸어왔고 가고 있는 길일세. 우린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서로를 죽여왔네. 상대를 죽임으로써 자기 자신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로. 우린 우리 자신의 피에 취해 있는 걸세.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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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의 없음 (리마스터판)
배수아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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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


오늘 아침에 나는 이런 시를 읽었습니다.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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