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설을 읽던 초기에는 작가의 인간으로서의 성과나 능력에 경외심이 들었었고, 나도 정신을 차리고 싶었지만 내 정신은 내 안에 있으니 내가 쉬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는 단지 관능인 삶 또는 관능이 이끄는 삶을 살면서도 스스로를 동물과는 분리된 인간 종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오류였다는 생각에 몹시 괴롭기도 했다. 그러고는 내 삶의 방식도 조금씩 바뀌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렇게 읽어왔던 작가님의 많은 글들이 생각이 났다. 나를 살게 하는 글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일 년, 길게는 칠 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 P12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 P12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주는 거예요. 거울로 반사시켜서.

*

그렇게 내 정원에는 빛이 있다.
그 빛을 먹고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잎들이 투명하게 반짝이고 꽃들이 서서히 열린다. - P96

5월 1일

대문을 들어서면 라일락 향이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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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방이 네 개 있었다. 내 방, 동생 질의 방, 부모님 방, 그리고 시체들의 방.

벽에는 액자들이 걸려 있었는데 그 속에선 아버지가 사냥총을 들고 죽은 동물을 밟은 채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어머니의 주된 기능은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아메바답게 창의적이지도 않고 취향도 없었으며 마요네즈를 엄청 많이 쓰곤 했다.

나는 차마 질을 볼 수 없었다. 그 애와 눈이 마주치면, 온 힘을 다해 참고 있던 눈물이 흘러내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우는 모습을 질이 보지 않기를 바랐다. 내 비참함이 전염될까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 애의 머릿속에서 들끓고 있는 기생충이 내 눈물을 먹고 자랄까 두려웠던 것이다. - P82

나는 삶이 나에게 선사한 그 모든 경이로움을 보았다. 공포를 보았고,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리고 아름다움이 승리했다. 나는 약하지 않았다. 나는 질을 영원히 잃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약하지 않았다. 나는 먹잇감이 아니었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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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을 곳 없이 온전한 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이렇게 온전한 글이라니, 간직할 말을 따로 추릴 필요조차 없는 사유가 너무 좋다.


일거리가 없어도 채마밭이나 꽃밭에 퍼질러 앉아 몇 시간이고 이유 없이 보내곤 한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한다. 이름모를 두메산골의 촌부가 되어 묻혀 사는 것을. 그러나 일면 스스로 여유에서 온 사치이며 현실을 도피하려는 약자의 변이 아니냐고 비웃기도 한다. 도시의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확실히 피곤한 일이다. 상대방의 허식보다 나 자신의 허식을 감당하고 돌아오는 길은 자기 혐악의 고독에 가득 찬 시간이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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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로 쉰 살이 되었는데, 이를 기념하며 전집을간행하기로 했다. 마흔 살 쉰 살 이렇게 10년씩 생애를 구분 짓는 건 일종의 편의이자 감상이며, 대체로 인간의 태만한 습성에 불과해서, 내 정신의 진실로는 내키지 않지만, 이런 관습의 파도에라도 젖지 않으면 살아생전에 전집을 낼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으리라.

그중에서는 <독서>라는 제목의 7.5조 6행 시가 가장 오래되었으며, 1912년 1월에 썼다. 내가 마구잡이로 책을 사는 게 사람들은 쓸데없는 사치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다 가슴속에 희망과 비애가 있기 때문이라고 어린아이처럼 항의하는 시였다. 당시 나는 열네 살이었다.

인간은 태어난 후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혹은 태어나기 전, 말하자면 유전으로 자기도 모르게 자신에게 물든 것을 스스로 씻어 내고, 거기에서 도망쳐, 어떤 지점까지 되돌아오지 않으면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도 모르게 자신에게 물든 것을 가령 오모토교에서 알기 쉽게 악령이라고 부른다면, 진혼귀신도 필요 없으리라.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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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줄어들거나 줄이고는 있지만 더이상 무엇을 하겠다고, 얼마나 나아지거나 혹은 그럴만한 사람이 되겠다고 인문학을 중간중간이라도 읽는 것에서 안정감이나 쾌를 느끼는 것이 나의 자본주의적 습인가 하는 의심이 짙었는데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문학이 낭비된 시간이며,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도덕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저 지극히 심오한 시간 낭비일 뿐이다.
나는 모든 방면에서 그 모험을 샅샅이 탐구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모험을."

"나는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만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만큼 완전히 시간을 낭비했다. 그 낭비는 어떤 틀 같은 것, 상 같은 것이었다. 성취였다. 문학은 당연히 낭비다. 그러나 상이란 그저 시간 그 자체였다."

더 심오한 시간 낭비, 내가 하고자 하는 것. - P30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베껴서, 내가 그 구멍을 빠져나올 수 있게, 저녁식사 자리에서 고주망태가 되어 자기 작품 이야기를 떠들어대던 그 작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말이다. - P64

나는 이 이야기를 꽤 산뜻하게 해내면서도, 그 어떤 것의 반영도 아닌 그 자체로서 거의 낙서에 가까운 스타일로 존재에 접근하는 삶과 글쓰기의 경험을 전달하려 애쓰고 있다. 모든 것은 어떻게 보면 공공장소의 벽이고, 심지어 가장 사적인 표현도 이따금 가시성으로 달아오른다. 너무 추상적인가? 내 말은, 중요한 건 지나치게 긴 삶을 대비하며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느릿느릿 영원을 향해 다가간다는 점이다. 속절없이. - P86

나는 지금까지 쓴 모든 시를 기억한다. 
암송할 수는 없지만 
그것들은 파도처럼 돌아온다. 
모두 내 뇌의 일부니까. 
그것들이 내 뇌를 이룬다. 
내 뇌는 안팎이 뒤집혀 있다. 
시가 나를 증명한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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