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가 울다
박현주 지음 / 씨엘비북스(CLB BOOKS)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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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철저히 인간을 위해 살아가는 저승사자의 전례가 있었을까?

기실 저승사자라 함은 인간의 이름을 세 번 부른 후, 인간을 삶의 저편으로 데려가는 두려운 존재로 알려져 있다.

하여 삶의 종착점에 인접해있는 연령대의 인간들은 대부분 그들이 보이거나, 눈만 마주쳐도 지레 겁을 먹거나 삶의 끝을 직감한 후 체념하곤 한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에서는 독특하게도 사자들이 인간의 자살을 막고, 인간의 편에 서며 이해하고 마음을 헤아려 도움을 행하는 심성 고운 이들로 그려졌다.

또한 여기에 작중인물은 사자를 볼 수 있으며 구태의연하게 그들과 시선까지 마주하는 인간과, 외려 본인들을 볼 수 있는 그를 보며 아연실색하는 사자이며 그들의 만남으로부터 전개되었다.

이 무슨 그로테스크한 조화란 말인가.

작품에서 사자를 볼 수 있는 이들은 삶이 얼마 남지 않거나 자살을 준비 중인 인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자살할 이유 따위는 전혀 없어 보이며 명부 또한 닫힌 정운은 대체 어떤 연유로 사자를 볼 수 있다는 의미일까.

게다가 사자가 보이는 정운은 과거 사자 현이 자살을 막아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었던 소년이었다.

전무후무할 소재와 세심하고 탄탄하게 짜인 설정의 까마귀가 울다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요소들을 지속적으로 노출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서 일어나는 유쾌한 이야기와 유머에 감동까지 선사하며 반전의 묘미 또한 놓치지 않은 작품이었다.

특히 이야기의 백미인 정운이 사자를 볼 수 있는 사유에 포커스를 맞추어 그의 삶까지 따라가 그를 엿보는 방식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인간의 숙명인 죽음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신비로운 소재들의 향연, 소름이 오소소 돋아오는 반전과 가슴 뭉클하고 눈시울이 붉어져 울컥하게 만드는 감동 포인트까지 한데 어우러져 작품은 작중인물들이 대부분 한기가 도는 사자들의 이야기임에도 그들의 배려와 따스함, 인간미, 정이 깊이 느껴져 친근함을 끌어냈고 몰입도까지 뛰어나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순식간에 완독하게 되었다.

하여 어딘가에 마음씨 곱고 인간을 배려해 주는 사자들이 실제로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마저 생겼다.

혹시 지금 내 곁에도 나를 위해 헌신하는 사자가 있을 거라는 상상도 잊지 않고 말이다.

작품을 읽고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흥미로울지도 모른다는 기시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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