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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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를 처음 마주하게 된 것은 이 소설이 영화로 개봉되었을 때였다.

여성 안심 귀가 서비스까지 등장하는 요즈음, 거리 두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영화의 제목이 나에게 주는 이미지는 프레임에 갇혀 다소 낯설고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대체 어떤 내용이 숨어있기에 저런 제목이 탄생했을까 궁금해 호기심을 자극했다.

허나 평소 지론이 원작이 있는 작품은 영화가 그 맛을 순도 100%로 절대 살릴 수 없기에 원작을 먼저 읽고 감상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루틴이자 순리였기에 이 작품 역시 감상하고 싶은 욕심을 꾹꾹 눌러 참아내고 소설을 먼저 읽고 감상해야지 하며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몇 년이나 흘렀고 작품을 만날 기회가 닿지 않아 한참이나 미루고 미루어지던 찰나, 최근 감사한 기회로 원작 소설을 만나보게 되었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 보면 저자가 시간과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 다소 난잡한 글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천천히 톺아가며 음미하다 보면 신박하고 기기묘묘한 소재들이 한데 모인 후 그것이 하나의 하모니가 되어가는 아름답고 섬세한 일련의 작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작품을 읽는 동안 케텔비의 페르시안 마켓이라는 곡이 지속적으로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치 신기하고 휘황찬란하며 다양하게 묘사된 모든 것들이 그야말로 별천지의 총체랄까.

특히나 술과 밤이라는 조건들과 유교걸은 용납할 수 없는 성추행으로 볼 수밖에 없는 범법행위마저 가벼이 다루며 혼란스러운 등장인물들과 상황들의 반복은 독자를 딜레마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본문에 가벼움과 B급 유머만이 깃들어 있다면 이 작품이 올해의 책이나 수상의 기염을 토할 수 없을 터, 본문에는 거장의 도서들이 나열되며 헌 책방에서 펼쳐지는 독서에 관한 에피소드나 그와 그녀의 로맨스라는 장치로 하여금 진지하고 심오한 삶과 인생의 고찰도 언급하고 있다.

두 명의 화자가 교차되며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고 느낀 바를 묘사하고 내면을 드러내며 “제현들”이라는 다소 낯선 호칭으로 독자에게 주목을 요구하며 등장하는 화자와 제목에서 언급한 그 아가씨의 엇갈리고 엇갈리기만 하는, 그들의 쫓고 쫓기는 대치에 멀어지기만 하는 관계는 독자에게 안타까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또한 여기 이 작품이 타 로맨스 작품과의 차이이며 매력적인 소재로 돋보이는 점은 한쪽은 쫓기기는커녕 너무나 순수한 자세로 그들이 우연한 만남이라고 착각하며 순수하고 진지한 태도로 임한다는 점이다.

실로 실소를 머금고 통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순수함에 빠져들어 귀여운 그녀의 매력과 그런 그녀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그에게 더욱 몰입하며 독자는 긴장마저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2006년 당시 작가 당신이 젊은 패기로 상상력을 집대성한 결정체가 아닐까.

또한 심지어 이 작가가 펭귄 하이웨이의 작가였다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술 마시기 시합과 매운 음식 먹기, 사랑을 위해 속옷을 갈아입지 않는 인물, 코로나 사태와도 흡사한 감기의 대유행까지.

이 현실과 판타지적 경계에 걸쳐있는 요소를 저자가 아니라면 그 누가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여기에 친구 펀치나 가짜 전기부랑, 궤변 춤, 두 발 보행 로봇의 스텝, 코끼리 엉덩이, 축지법 고타츠, 달마 오뚝이 등의 처음 듣게 되면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생소하고 때론 일본색이 짙은 소재들의 대거 등장에 이를 처음 만난 독자들은 낯설고 당혹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책장을 넘겨 보면 당신도 이 작품의 오묘한 매력을 갖춘 유머러스함에 빠지고 “나무나무!”라고 기도하는 귀여운 그녀에게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조언하게 될 것이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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