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르테미시아 - 최초의 여성주의 화가
메리 D. 개러드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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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을 지키려 폭군 홀로페르네스를 죽인 영웅으로 성경에 등장한 유디트.

대부분의 미술 애호가들은 이 유디트를 구스타브 클림트의 작품 속 황금빛 눈부신 유디트로 기억하거나 카라바조의 유디트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작품 속 유디트를 접하며 나에게 가장 충격적이고 기억에 남게 된 유디트는 바로 성추행 저항운동 연대의 상징인 아르테미시아 젠틀레스키의 유디트였다.

잔뜩 겁에 질린 카라바조의 유디트와 달리, 화려함에 감춰진 유디트와 달리, 강인함으로 무장한 채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듯한 결연함은 그 어떤 유디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과감함 그 자체였고, 화풍과 배경, 섬세함까지도 냉정하고 단호한 살인만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 보였다.

하지만 이 독특하고 충격적인 유디트를 그린 아르테미시아 젠틀레스키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조차 없고 여성에게는 배움의 뜻이 있어도 교육의 기회조차 없던 시기 활약했다.

그는 이와 같이 동일한 주인공과 주제임에도 첨예하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들로 황당한 차별 사상들이 난무하는 혼돈의 시기에 교묘하면서도 영리하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나타냈다.

또한 철학은 배부른 자의 소유임을 강조하듯 페미니즘 역시 여성 인본주의자와 페미니스트 작가 대부분이 교육받은 집안 출신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강간의 피해자였으며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된 아르테미시아가 더욱 돋보였다고 보인다.

여성의 권위가 남성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낮았던 시기의 인물이기에 정확한 고증조차 남겨지지 않았으며 가족관계 및 생사 여부까지도 명확히 알려지지 않은 삶을 살다 떠났고, 작품의 발전 순서마저도 분명하지 않아 남성 후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연구와 추측에 의존해 그녀의 삶을 되짚어 탐구하는 방식으로 접근한 이번 도서는 오히려 이러한 이유들이 그녀의 작품과 표현기법을 추리해나가는 흥미요소를 배가시키며 매력을 더한다고 느껴졌다.

사소한 묘사들의 차이로 남다른 천재성과 뛰어난 표현력과 스스로를 드러내던 방식들은 여성으로 태어났음에도 성별에 가려질 수 없는 위대함으로 표출되었고 스스로를 위대한 인물들의 얼굴에 오마주 시키며 뛰어넘으려는 과감한 시도의 매력까지 아울러 시대의 아이콘으로 사료되었다.

책의 제목이며 그녀의 묘비명인 “여기, 아르테미시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평가에 현재와 상반된 시민의식 속에서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일찍이 확립하여 페미니즘의 기원으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그는 앞으로의 위상이 더욱 높아져 성추행 저항운동 연대의 상징인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품들이 주목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여 빛을 보기 어려운 삶을 살다 떠난 그의 일대기와 삽입된 작품들로 하여금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어 감사하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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