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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안셔스
연여름 지음 / 황금가지 / 2022년 3월
평점 :
과거를 다룬 이야기들은 주제나 결말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지만 미래를 그린 이야기는 온전히 작가가 펼치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향방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오롯이 저자가 그려낸 배경을 독자가 상상으로 그려낼 수밖에 없어 다양한 소재나 기발한 상상력으로 독자를 압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만나게 된 연여름작가의 아홉 편의 작품들은 이를 고스란히 반영해 흡인력 있는 유려한 문체와 독특한 설정들로 데뷔 단편집이라는 소개 글이 놀라우리만치 자연스럽고도 현실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상에 숲이 존재하지 않고, 기계화된 인간의 신체, 좀비가 활개치기도 하는 다양한 절망적인 미래의 세상을 제시하지만, 자살하는 이들의 안정시켜 홀로서기를 지원하거나, 사망한 사람들의 기억들을 업로드해 남은 이들을 위로하는 긍정적인 미래도 보여준다.
여기에 패스파인더를 통한 평행세계의 위기와 변화를 그린 “패스파인더”의 신박함에 놀라고, 마치 행운의 편지를 받은 듯, 친구에게 비밀을 듣게 되는 경험을 하는 듯 당신만 알고 있으라는 호기심을 이끄는 도입부와 기발한 상상력에 소름 돋는 반전의 매력을 갖춘 “오프더 레코드” 역시 이 작품을 마지막 단편으로 마무리 짓게끔 선정되었는지 독자가 적확하게 알아챌 수 있는 흥미롭고 매력 있는 작품이었다.
상실의 고통과 후유증을 여과 없이 그려내 쓸쓸함을 극대화시켜 한없이 침잠시키다가도 탈출구를 열어주는 저자의 이야기 진행 방식은 미래에 마냥 절망만이 기다리지는 않는다는 희망을 느끼게 해주어 인상 깊었다.
차별받는 소수자를 향한 작품들이 나열되었음에도 작품 속 소수자들은 타 작품들에서 지나친 특성의 극대화를 통해 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클리셰와 달리 아주 약간의 실마리만을 제공한 채 크게 드러나지 않게 심어두어 자연스레 융화된다는 부분도 가슴 깊이 와닿았다.
장애인, 성소수자, 안드로이드, 좀비, 귀신 등 이들로 하여금 더욱 짙은 인간성을 느끼게 하고 좀비나 귀신, 안드로이드를 대하는 인간을 대비시켜 누구도 기준을 정해놓지 않은 정상화라는 기준으로 인간성의 상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노출시킨다.
각기 다른 주제와 작중인물의 등장에도 공통적으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또렷이 드러나 앞으로 더 인상 깊고 위대한 작품으로 자주 마주할 작가를 새로 알게 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