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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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접할 때는 줄곧 전무한 스포일러는 물론이거니와 일말의 배경이나 정보도 허용치 않고 읽으며 걷혀지는 구름과 밝혀지는 실마리에 쾌감을 느끼던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반전의 연속이라는 소개 글과 이어진 저자에 관한 극찬의 향연마저 마주해 혹여나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다가가기 두려움도 서렸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기우도 잠시, 백광은 “범인의 정체에 놀라지 않았다면 전액 환불해드립니다” 라는 환불이벤트를 제시할 만큼 거창한 포부에 걸맞은 작품임이 드러났다.

여기에 렌조 미키히코의 걸출하고 유려한 문체 또한 함께해,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듯 문장 하나하나를 머금고 곱씹으며 작품에 빠지게 되었다.

몰입할수록 그 어딘가, 누군가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독특한 플롯과 끝을 알 수 없는 미로와 같은 결말에 흡인력이 남다른 작품이었고, 전지적 작가 시점이나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화자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여러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시점들이 교차되어 범인을 명확히 파악할 수가 없어 더욱 호기심을 자아냈다.

드러난 속내마저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반전을 거듭하기에 독자는 특정 인물을 뚜렷한 범인으로 추정키 어려워 난관에 봉착하게 되고, 오히려 용의자를 더욱 다양하게 추측하거나 한마디 한마디를 단서로 받아들여 헛물을 켜게 된다.

오리무중으로 뻗어나가는 관계들은 채플린의 말 그대로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의 전형적인 예시였고, 등장에서부터 기묘한 노인의 호접지몽과 같은 기이한 이 언행들은 점차 괴기스러워져 추측이 심화되도록 만드는 장치가 되어 종국에 반전의 늪이 양산되었다.

하여 혼란의 연속으로 달려온 백광은 전쟁이라는 비극과 무너진 신뢰가 융합해 방금 전, 한 여름 섬에서 일어난 피폐한 꿈을 꾼듯한 그로테스크함과 다채로운 감정이 뒤섞여 아름다운 혼돈의 마무리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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