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노인 그럼프 그럼프 시리즈
투오마스 퀴뢰 지음, 이지영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짧은 길이의 챕터로 이루어진, 매우 직설적이고 고리타분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북유럽 소설들의 재미에 폭 빠진 나는 한동안 북유럽 소설이라면 무조건 믿고 구매해서 읽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오베라는 남자><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핀란드 국민소설이라는 이 <괴짜 노인 그럼프>는 책콩 서평단을 통해 읽게 되었는데, 두께가 100세 노인이나 오베보다 반이나 얇음에도 불구하고 읽는데 속도감이 붙지 않아 고전했다. 오베보다 훨씬 더 고리타분한 할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어찌나 정신산만하게 말을 이어가는지, 어르신의 두서 없는 과거 이야기를 듣느라 자꾸 머릿속으로 딴짓하게 되고 앉아 있는 엉덩이가 저리고 다리에 쥐가 나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내의 곁으로 가기 위해 자살을 결심하는 오베와 치매에 걸린 아내를 보며 죽음을 준비하는 그럼프는 스토리상에서도 캐릭터 성격으로도 여러모로 비슷한 부분이 많은데, 오베가 과거와 현재가 파도처럼 밀려와 치는 바다 같은 책이라면 그럼프는 별 사건사고 없이 시간이 잔잔히 흘러가는 호수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럼프는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에 있는 아내를 돌보다가 모든 인간의 영원한 숙제,'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 아내는 지금 내가 돌봐주고 있지만, 내가 만약에 이런 상태가 된다면 내 아들녀석이 과연 나를 돌봐줄까? 나는 내가 어떤 장소에서,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지 결정할 권리가 있지 않나?' 이러한 생각을 통해 그럼프는 스스로, 미리 죽음을 준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유언장을 쓰고 자신이 눕게 될 관을 만들고, 자신의 장례식에 쓰일 추도문 등을 준비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홀로 있는 아버지를 걱정하며 집에 방문했던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에 크게 불안함을 느끼며 아버지의 유언장에 필요한 잉크를 사기 위해 동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유언장의 내용을 들으며 아버지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게 많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잉크를 사러 이동한 길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아들과 호텔에 머무르게 된 그럼프는 이 둘을 찾아 온 며느리가 갑자기 생긴 '셋째 아이'를 두고 싸우는 것을 듣는다. 그럼프는 아들과 며느리가 왜 자신이 준비하는 '죽음'과 하늘의 선물로 찾아온 손주의 '탄생'을 두고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아웅다웅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너희들이 아이를 낳으면 내가 그 아이를 돌봐주면 되지, 뭐. 그리고 내가 이렇게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나 편하고 너희 편하자고 하는 일인데, 이게 왜 싫은거냐. 나는 참 요즘 젊은 아이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새로운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편이라, 굉장히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편이다. 아직도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이 좋고, (비록 독서리뷰는 편의성과 시간적 경제성을 이유로 블로그에 기록하지만)필기구와 노트를 사서 일기를 쓰고 감상문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며, 찍은 사진은 꼭 인화를 해서 사진첩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옛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그럼프의 옛것을 우월하다고 여기고 이를 고집하는 그럼프의 사고방식은 조금 불편했다.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어르신에게 젊은 세대가 무조건 맞춰가는 내용인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건 어쩌면 내가 그럼프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지 못해서, 그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뚝심 있는 노력이 부족했던 탓일수도 있겠다. 정말이지 그럼프가 그의 이웃집 태국 출신의 부인과 그의 아들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그럼프를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포기하고 이 책을 중간에 접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흥미로웠던 점은 죽음을 준비하는 그의 태도다. 관, 묘비, 유언장, 장례식에 틀 음악과 춤까지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 챙기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도 내 삶을 낭비없이 더 알차게 살아가기 위해선 항상 죽음을 가까이 두려는 그의 자세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하지 않나 싶었다. 지금까지의 내 삶을 한 번 정리해본다면 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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