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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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을 좋아한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그의 데뷔작 <오베라는 남자>부터 시작해서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브릿마리 여기 있다>, <하루 하루가 이별의 날>까지 착실하게 읽어왔고, 소장하고 있다. 그의 작품엔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어느 한 곳에서 스토리가 꽉 막혀 있지 않고 개울물 흐르듯 빠르게 전진한다. 그래서 나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책을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는다. 책 어느 곳에도 손을 놓아도 좋을 만한 타이밍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레드릭 배크만은 내게 아무것도 묻고 따지지도 않고 책을 구입하게 만드는 작가 중 하나인데, 내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장편소설을 딱 한 작품 놓쳤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그 작품이 바로 이 책 <우리와 당신들>의 전작인 <베어타운>이다. 물론 전편을 보지 않은 관람객을 위한 속편 영화처럼, 이 책 역시도 전 작품을 읽지 않고도 스토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전작을 읽지 못한 나도 이 책에 폭 빠져 충분히 재밌게 읽었다.) 다만, 이 책에서 베어타운에 커다란 돌을 던진 케빈과 마야의 사건을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초반에 하키팀의 해체를 두고 어린 소녀에게 심한 2차 가해를 해대는 마을 사람들의 감정선을 따라잡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이 책의 메인 주제는 <하키>, 바로 팀 스포츠다. 슬램덩크 같은 스포츠 만화를 좋아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경기를 위한 최강의 한 팀이 구성되는 일도 만만치 않고, 또 그 팀이 성장하고 경기에서 승리하기까지 쉬운 과정 하나 없다는 걸 말이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눈이 뜨거워지는 순간이 파도처럼 계속해서 밀려들 것이란 것도.


최근에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책 속에서 정리된 문장으로 발견할 때가 있다. 이 책에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아서 상처 받은 감정을 표현한 문장들이 참 많다. 내가 나보다도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결국 모든 잘못을 나에게 묻고, 내가 나를 끔찍하게 미워할 때가 있었다. 갈 곳 없는 분노와 슬픔이 나를 멍들게 하는 순간들. 또 마야와 아나와 미라와 사켈, 모두 여자라서 겪어야만 했던 일들의 묘사에도 나는 가슴 깊이 공감했다. 그림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내게 그림을 잘 그리려면 이해와 관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씀한 적 있다. 글 쓰는 일도 그림 그리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둘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것을 남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정확히 '묘사'하는 일이니까. 좋은 묘사를 위해서는 눈으로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는 일과, 가슴 깊이 이를 공감하는 힘이 필요할 것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은 좋은 묘사력을 가진 작가다. 그는 최근 사회현상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참고로 이 책은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이다. 등장인물이 어찌나 우라지게 많은지! 이름 역시 우라지게 어렵다. <베어타운>부터 잘 따라왔으면 이 책의 조연으로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더 반가웠을 것 같단 아쉬움이 계속 남았다. 결론: 나는 <베어타운>을 구입해 읽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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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한 마을이 무너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우리 마을이 그랬다. 나중에 우리​는 이해 여름에 폭력 사태가 베어타운을 강타했다고 얘기하겠지만 그건 거짓말이 될 것이다. 폭력의 조짐은 그전부터 있었다. 왜냐하면 서로를 증오하는 것이 워낙 쉬운 일이 되어놔서 증오가 아닌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처사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p.13)


자동차 한 대가 너무 빠른 속도로 밤을 가를 것이다. 우리는 교통사고였다고 하겠지만 사고는 우연히 벌어지는 것이고 이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는 걸 우리는 알 것이다. 이건 누군가의 책임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가장 아름다운 나무 아래에 묻을 것이다. (p.15)


우리가 타인에 대해 아는 사실들 가운데 최악을 꼽으라면 우리의 삶이 그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 나머지 바보들의 경우에도 말이다. 내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 운전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 저질스러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식당에서 너무 시끄럽게 떠들며 유치원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노로바이러스를 옮기는 아이를 키우는 사람. 주차를 엉망으로 하고 우리 일자리를 가로채며 엉뚱한 정당에 투표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도 매 순간마다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아아,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미워하는가. (p.24)


페테르는 또다시 늦게 퇴근한다. 미라가 노트북을 펼쳐놓고 식탁에 앉아 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빨래와 청소를 하려고 오늘 일찍 퇴근했다. 이제 그녀는 다시 일을 하지만 상사들은 알지 못한다. 그녀는 다른 동료들보다 일하는 시간이 더 많지만 사무실에서는 조만간 항상 일찍 퇴근하는 여자로 찍힐 것이다. 엄마 노릇은 집의 토대를 굳히거나 지붕을 고치는 것과 같다.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완벽하게 끝내도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아무도 칭찬을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 야근을 하는 것은 예쁜 그림을 걸거나 전등을 바꾸는 것과 가다. 모두가 알아봐준다. (pp.299-300)


"나는 어렸을 때 공포 영화를 하도 많이 봐서 괴물은 항상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직전에 가장 무섭다는 걸 알아. 우리의 상상력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섬뜩하거든. 너도 그 일당을 똑같은 방식으로 구축했겠지. 너희들은 아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숫자가 적을 거야. 너는 사람들이 너희들을 실제보다 더 끔찍한 존재로 상상하도록 내버려두고 있어." (p.337)


팀 스포츠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단체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일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유가 단순하다. 또 하나의 가족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애초에 가족이 없었떤 사람에게는 팀이 가족일 수 있다. (p.472)


사람들에게 희망을 걸기는 쉽다. 세상이 하룻밤 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쉽다. 우리는 공격을 당하면 시위를 벌이고, 참사를 겪으면 기부를 하며, 인터넷에 심금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일보 전진할 때마다 거의 그와 비슷하게 일보 후퇴한다. 여러 차례 입증됐다시피 모든 변화는 이루어지고 있는 당시에는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속도가 더디다. (p.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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