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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물론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지만, 유독 제목의 의미가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나보다. 제목만 보고 추리하기에는 내 추리력이 아직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듯 하지만, 십자가라고 하니 교화 혹은 갱생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엄마가 잠깐 장을 보러 나간 사이, 아이가 죽임을 당한다. 엄마는 제 1발견자로 용의자로 의심되어 취조받았으나, 곧 혐의가 풀리고 얼마 안 있어 진범이 잡혔다. 살인죄로 복역을 하고 출소한 범인은 배가 고파 돌아다니던 중 마침 집을 나서는 여자를 발견하고 빈집이라 생각되어 돈을 훔쳐 달아나려고 했다. 막상 들어간 집에는 아이가 있었고, 자신의 얼굴을 본 아이를 살해하고 도주했다. 긴 재판끝에 범인은 사형을 받고, 아이의 부모는 이혼한다. 그리고 몇 년후, 예전 딸의 사건에서 얼굴을 익힌 형사가 남편을 찾아오는 것으로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된다.
처음의 프롤로그는 아무생각 없이 읽어내려가긴 했지만,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왜 있는건지. 그런데 책을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읽으니 그제서야 어떤 내용인지 이해가 갔다. 원래 책을 연달아 다시 읽지는 않는다. 첫 느낌을 오래 간직하고 싶기도 하고, 처음때보다 재미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아서이다. 그래서 한 번 책을 읽은 후, 오랜 후에 다시 읽는 편인데, 이번에는 한번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끝마치자마자 두 번째 읽은 책은 내용의 깊이기 더해지고, 오히려 더 집중되었다.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들고, 이야기의 구성이 돋보였다.
이야기는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서 시작되지만, 본격적인 내용은 아이를 잃은 아내가 몇 년 후, 살해 당하면서 전개된다. 나카하라는 아이를 잃고 이혼 후, 친척의 동물장례식장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어느날 딸의 사건에서 만났던 형사 사야마로부터 헤어진 아내 사요코가 살해 당했다는 말을 듣는다. 얼마 안있어 사야마는 나카하라를 만나러와 사건의 정황을 알려주고 자수했다는 범인의 사진을 보며주며 면식이 있는자인지 묻는데, 전혀 본 적 없는 노인이었다. 그가 범인임은 확실했으나, 어쩐지 그의 진술에서 단순한 강도 사건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요코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직장 동료로부터 사요코가 기사를 기재했음을 안다. 얼마 후 그녀가 보내준 사요코의 마지막 기사는 도벽에 관한 기사였다. 한편, 범인의 가족에게서 사죄의 편지가 온다. 사위로부터 온 편지는 무척 죄송하며 자신들에게도 책임이 있고, 직접 만나 사죄하고 싶다고 적혀있다. 사요코의 모친, 나카하라, 변호사 야마베는 만나서 재판이나 형량에 대해 이야기하며 모친은 절대로 사형을 양보하지 못한다는 단호함을 보인다. 장모는 사요코가 책을 내고 싶어했고, 완성될 원고를 찾지 못했다한다. 나카하라가 모친의 허락을 받아 찾은 사요코의 원고는 사형 폐지론을 반대하는 내용이 적힌 글이었다.
범인이 사형을 당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잃은 자의 참담함이나 허무함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죽은 자가 살아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없이 내 소중한 사람을 죽인 사람이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는 것. 그자체만으로도 용서할 수 없다. 감옥에 간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수감자가 출소 후 5년 안에 재 수감될 확률이 절반을 넘는다. 징역의 효과가 없는 것이다. 사형제도의 장점은 범인이 다시는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끝맺음하는 글. 그 책과 사요코의 최근 행적을 조사하면서 나카하라는 얽히고 설킨 진실에 다가간다.
유족에게 범인이 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 그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단순한 통과점에 불과하다.
- 본문 중에서
작품에 깔려있는 얘기는 죄와 벌이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사형을 받아야 한다. 생명을 앗은 것에 대한 책임을 마땅히 본인의 목숨으로 져야한다.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비인도적인 제도라해서 사형제의 폐지가 거론되고 있는 추세이다. 범인에게는 인권이 있다. 하지만 피해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보호단체가 범인에게도 인권이 있다며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권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기로 한 그때부터 그 사람은 인권을 포기했다고 본다. 타인을 죽임으로써 그의 인권을 빼았을때. 자신의 인권 또한 사라진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은 사형폐지제를 반대한다.
얼마 전 읽은 소설에서의 무기징역수가 오판으로 인해 누명을 쓰고 있어서일까. 마냥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확실한 범인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인간이 하는 일에 100%라는건 없으니 그런이들을 위한 몇 %의 인정은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그랬던 것같다 법에는 따뜻함도 있어야 한다고. 그 따뜻함이란 이런데서 나오는 융통성이 아닐까. '사건 저마다의 이야기는 다른데 결론은 사형 하나'라는 책 속 변호사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추억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 인간이라고 봐도 무방할텐데, 서로 다른 이야기의 결말은 달라야한다. 또한 타인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반성이나 후회, 죄책감 없이 그저 사형이라는 형벌로 범인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옳은 일일까. 평소에도 흉악범죄가 일어나면 형벌을 주의깊게 보는 편이지만 책은 그에대해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미스테리 안에 따뜻함이 있기 때문이다. 미스테리라는 장르는 좋아하지만 여기에는 필수 조건이 있다.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왜 죽여야 했느냐이고 안에 있는 사연이다. 그 사연을 인간미있게 풀어나가는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생각한다. 공허한 십자가는 미스테리적 요소만으로 보자면 이제껏 봐왔던 다른 작품들보다 부족하다. 뛰어난 트릭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사형제라는 무거운 주제를 던지면서도 속도감과 재미를 동시에 가지고 진실에 접근한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냄새가 난다.